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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격차 줄일 해법은 연대”…아산상, 글로벌 헬스 인재 조명

한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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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국가 의료 인력과 인프라 부족 문제가 글로벌 헬스 분야의 핵심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장기 의료봉사와 교육으로 공공의료 공백을 메운 인물들이 상을 받았다. 국내 병원과 재단이 주도한 이들 활동은 단기 구호를 넘어, 현지 의료진 역량 강화와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저자원 국가의 보건체계를 뒷받침하는 모델로 평가받는다. 업계에서는 향후 디지털 헬스와 원격의료, 의료 AI 솔루션이 결합될 접점도 주목하고 있다.

 

아산사회복지재단은 25일 서울아산병원 아산생명과학연구원 강당에서 제37회 아산상 시상식을 열고,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지에서 장기간 의료·사회봉사를 펼쳐 온 개인과 단체 18명에게 총 10억 원의 상금을 수여했다고 밝혔다.

대상 격인 아산상은 25년간 아프리카 케냐와 말라위에서 의료봉사를 이어온 정춘실 성 데레사 진료소장에게 돌아갔다. 정 소장이 구축한 지역 진료소와 병원 네트워크를 통해 약 80만 명의 현지 주민이 의료 혜택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상금은 3억 원이다.

 

의료봉사상은 17개국 선천성 심장병 환아 844명을 무료 수술하고, 현지 의료진 3000여 명을 교육해 심장수술 역량을 전파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김웅한 교수가 수상했다. 사회봉사상은 노숙인 무료급식소 바하밥집과 고립·은둔 청년 회복기관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를 운영해온 김현일·김옥란 부부에게 돌아갔다. 두 상의 상금은 각각 2억 원이다.

 

이 밖에도 복지실천상, 자원봉사상, 효행·가족상 수상자 15명에게 각 2000만 원이 주어졌다. 제37회 수상자는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와 운영위원회 종합 심사를 거쳐 선정됐다.

 

정춘실 진료소장은 1995년 영국에서 수녀로 종신서원을 한 뒤, 의료 접근성이 극도로 낮은 지역에서 생명을 살리겠다는 목표로 1999년 간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2000년 아프리카로 향했다. 케냐에서는 의료 시설이 거의 없던 빈민 지역에 성 데레사 진료소 설립과 운영을 주도했고, 말라위에서는 음땡고 완탱가 병원 책임자로서 의료와 행정 체계를 정비해 기본 진료부터 입원, 분만, 예방의학까지 지역 기반 서비스를 확대했다.

 

정 소장은 현재 케냐 칸고야 농촌지역에 새 진료소를 짓는 프로젝트를 직접 이끌고 있다. 현지 의료 수요는 증가하고 있지만, 국제 후원과 공적개발원조 예산이 변동성을 보이면서 환율 상승과 자재비 급등 탓에 공사가 중단되는 상황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지역 기반 1차 진료 인프라는 감염병 대응과 만성질환 관리, 모자보건 등에서 필수적이기 때문에 완공을 위해 자금 조달과 설계, 공정 조율을 병행하고 있다.

 

김웅한 교수의 활동은 글로벌 헬스 분야에서 강조되는 ‘수술 접근성 확대와 로컬 역량 강화’ 전략과 맞닿아 있다. 그는 1999년 중국을 시작으로 몽골, 우즈베키스탄, 에티오피아 등 심장수술 인프라가 부족한 17개국을 돌며 선천성 심장병 아동 844명의 무료 수술을 집도했다. 단기간에 환자를 수술하는 구호 형태를 넘어서, 현지 의료진 3000명 이상을 교육해 수술팀을 키우는 ‘기술 이전’에 방점을 찍은 점이 특징이다.

 

국내에서는 의대 정규 교육과정에 국제보건, 즉 글로벌 의학 프로그램을 편입해 의료 인력이 사회적 책무와 국제 공공재로서의 보건의료 역할을 이해하도록 돕고 있다. 또 간호학, 공학, 보건학 전공자 등을 의학박사로 육성해 다학제 팀 기반 의료체계를 지향하고 있다. 이런 구조는 향후 의료 AI, 원격 모니터링 기기, 수술 로봇 등 IT바이오 기술이 저자원 국가에 도입될 때, 의사와 비의사 출신 전문가들이 함께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김 교수는 선천성 심장병 환아에 대한 사회적 편견 완화에도 나서고 있다. 2016년부터 수술을 받은 아이들과 산행을 이어왔고, 2024년에는 심장수술을 이겨낸 청소년들과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등정에 성공했다. 이는 생존 이후 삶의 질과 사회 복귀를 중시하는 최근 글로벌 헬스 패러다임과도 연결된다.

 

사회봉사상 수상자인 김현일·김옥란 부부의 활동은 도심 취약계층의 정신건강과 사회복귀 지원 측면에서 디지털 헬스케어와도 접점을 가진다. 두 사람은 1998년 인천 부평에서 신문보급소를 운영하며 거리 청소년들과 함께 생활한 것을 계기로, 27년간 노숙인과 고립·은둔 청년을 지원해왔다.

 

김현일 씨는 2009년 노숙인에게 컵라면을 나누는 활동을 시작해, 점차 많은 이들이 모이자 노숙인 무료급식소 바하밥집을 열었다. 김옥란 씨는 바하밥집을 찾는 청년들이 우울과 대인기피를 겪는 현실을 보며, 생계 지원만으로는 회복이 어렵다는 점에 주목했다. 2019년 개소한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는 은둔형 청년의 정서 회복과 사회 재진입을 돕는 공간으로, 향후 정신건강 디지털 치료제, 온라인 심리상담 플랫폼 등과 연계될 수 있는 실증 현장으로도 의미가 있다.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은 시상식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해 온 수상자들의 노력이 우리 사회를 더 따뜻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하며, 소외된 이웃이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모두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재단 역시 취약계층 지원과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민간 차원의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아산사회복지재단은 1989년 아산상을 제정한 이후, 의료·복지·효행 분야에서 헌신한 개인과 단체를 발굴해 지원해 왔다. 업계에서는 이번 수상 사례처럼 장기 현장 경험을 가진 인력과 국내 의료기관, 그리고 IT바이오 기업 간의 협력이 강화될 경우, 디지털 헬스, 원격의료, 공공의료 데이터 활용 등에서 보다 현실적인 글로벌 헬스 모델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계는 이런 민간 네트워크가 실제 기술과 제도가 결합해 지속 가능한 보건의료 생태계로 이어질지 주시하고 있다.

한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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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사회복지재단#정춘실#김웅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