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사망으로 추징금 채권 소멸”…867억원 미납금 환수 난항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867억여원을 둘러싼 환수 시도가 또 한 번 제동이 걸렸다. 전 전 대통령 사망으로 형사 판결에 따른 추징금 채권이 소멸됐다는 법원의 판단이 유지되면서, 연희동 자택을 통한 추가 환수는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6-3부(이경훈 박해빈 권순민 고법판사)는 검찰이 이순자 여사와 옛 비서관 이택수, 장남 전재국 등 연희동 주택 지분 소유주 11명을 상대로 제기한 연희동 자택 소유권 이전 등기 소송을 각하했다. 검찰은 해당 부동산이 실질적으로 전 전 대통령 소유의 차명재산이라고 보고, 소유권을 전 전 대통령 명의로 돌린 뒤 추징금을 집행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재판부는 “전두환의 사망에 따라 판결에 따른 추징금 채권은 소멸했다”라며 “형사사건의 각종 판결에 따른 채무는 원칙적으로 상속 대상이 되지 않는다”라고 판단했다. 형사재판에서 부과된 추징금은 피고인 개인에게 부과되는 제재인 만큼, 피고인이 사망하면 더 이상 강제 집행할 수 없다는 취지다.
이번 판단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동일하게 유지됐다. 앞서 지난 2월 1심 재판부는 “전두환의 사망에 따라 판결에 따른 추징금 채권은 소멸했다”며 “형사사건의 각종 판결에 따른 채무는 원칙적으로 상속 대상이 되지 않는다”라고 밝혔었다. 다만 당시 재판부는 “본채와 정원이 피고인(전두환)의 차명재산에 해당한다면, 국가가 채권자대위 소송을 내 피고인 앞으로 명의를 회복시킨 뒤 추징 판결을 집행할 수 있다”라고 단서를 단 바 있다.
검찰은 이 같은 1심 판단을 토대로 지난해 10월 연희동 자택 본채와 정원에 대해 전 전 대통령 앞으로 소유권을 이전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추징금 채권 자체가 사망과 함께 소멸된 만큼, 소유권 이전을 전제로 한 이번 민사 소송도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취지에서 각하 결정을 내린 것으로 해석된다. 각하는 소송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본안 판단 없이 재판을 끝내는 결정이다.
검찰은 판결 직후 “판결 내용을 면밀하게 검토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대법원 상고 여부와 상고심 판단에 따라 최종 결론이 정해질 전망이다. 다만 1·2심에서 동일한 법리가 확인된 만큼, 추징금의 상속 불가와 사망에 따른 채권 소멸이라는 기본 방향이 뒤집힐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97년 내란·뇌물수수 등 혐의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함께 추징금 2천205억원을 확정받았다. 이후 검찰과 국세청 등이 장기간에 걸쳐 재산 추적과 강제 집행을 진행했지만, 여전히 867억여원이 미납 상태로 남아 있다. 연희동 자택 관련 소송은 남은 추징금을 환수할 수 있는 핵심 수단 중 하나로 여겨져 왔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번 판결을 두고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중대 범죄로 부과된 대규모 추징금이 피고인 사망과 함께 사실상 사라지는 구조가 과연 적정한지, 고액 범죄자의 재산 은닉과 상속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충분한지에 대한 문제 제기다.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피고인 사망 후에도 불법 재산에 준하는 부분은 상속재산에서 회수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2심 각하 결정으로 연희동 자택을 둘러싼 미납 추징금 환수 절차는 중대한 변곡점을 맞게 됐다. 검찰이 상고를 통해 법리 재검토를 시도하더라도, 이미 확립된 형사 추징 채권의 성격과 상속 법리에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 전 대통령 사망 이후에도 남아 있는 867억여원의 미납 추징금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 남은 과제로, 책임과 환수 범위를 둘러싼 논쟁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