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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화한 바람, 천년의 시간”…가을 경주에서 만나는 일상의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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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화한 바람, 천년의 시간”…가을 경주에서 만나는 일상의 쉼표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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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을볕이 부드럽게 내려앉는 경주를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수학여행지로만 생각하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고요함을 만끽하고 싶은 이들에게 ‘일상 속 작은 여행’의 도시가 됐다.

 

구름이 흩어진 9월의 오후, 경주는 24.9도의 온화한 기온 덕분에 걷기에 딱 좋은 풍경을 선물한다. 바람은 생각보다 서늘하고, 천년 고도의 풍경은 여전히 변함없다. 분황로 한가운데 자리한 분황사 앞에서는 가족, 커플, 홀로 여행객까지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 신라 선덕여왕의 흔적을 품은 고찰 분황사에서는 국보인 모전석탑이 은은한 햇살을 머금고 있다. 세월의 결이 묻어난 당간지주와 고즈넉한 우물가에서는 작은 발걸음마다 역사가 쉼 없이 이어지는 느낌이 깊게 스민다.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경주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경주

숲길을 천천히 거닐다 보면 경북천년숲정원이 드넓게 펼쳐진다. 계절 따라 다른 색으로 물드는 나무와 꽃, 특별한 조경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이 공간은 아늑한 산책로와 전망 포인트가 여러 개다. 새소리가 귓가에 스며들고, 잠시 걸음을 멈추면 머릿속까지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SNS에는 ‘경주에서 제일 한적한 힐링스팟’이라는 경험담이 꾸준히 올라온다.

 

빠른 템포를 원한다면 경주루지월드가 제격이다. 카트를 타고 내려오는 코스에는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안전 장비를 꼼꼼히 갖추고 익숙지 않은 속도감을 즐기는 부모와 아이, 친구들까지 모두 잠시 일상에서 벗어난다. 체계적인 안전 설명과 쾌적하게 정비된 트랙 덕분에 초보자도 부담 없이 체험할 수 있다는 평이 많다. “생각보다 무섭지 않고 속이 뻥 뚫린다”는 이용객 후기처럼, 스릴 그 자체보다는 맑은 하늘 아래 신선한 바람이 더욱 인상적으로 남는다.

 

여행 트렌드 전문가들은 “경주에서의 소소한 일상 체험은 반복된 일상에 작은 쉼표가 된다”며 “역사 유산과 현대적인 액티비티가 자연스럽게 공존한다는 점이 MZ세대 방문객의 만족도를 높인다”고 전했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경주는 어릴 적의 추억을 소환하면서도, 이제는 ‘나만의 속도’로 머무를 수 있어서 더 소중하다”는 공감글이 이어진다. 누군가는 조용한 아침 분황사에서의 명상 사진을, 또 다른 이는 푸른 숲길을 친구들과 걷는 짧은 영상을 올렸다. 식지 않는 여행자의 열정보다는, 피곤한 하루에 잠시 머물러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찾는 모습이 많아졌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경주에서의 가을 산책은 달라진 여행의 감성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경험이자, 바쁜 일상 너머로 이어지는 또 다른 삶의 속도다.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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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분황사#경주루지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