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국가대표 첫 평가전에 K AI 5파전
인공지능 파운데이션 모델 주도권 경쟁이 국가 대표 선발전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정부가 글로벌 AI 3강 도약을 내걸고 추진해온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의 첫 성과 발표에서 국내 주요 기술 기업들이 일제히 초거대 모델을 공개한다. 단순 데모 수준을 넘어 실제 성능 평가와 탈락 변수가 걸리면서, 한국형 소버린 AI 전략의 분수령이 될지 업계 시선이 쏠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서울 코엑스에서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1차 발표회를 열고 참여 기업들의 개발 성과를 점검한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SK텔레콤, 네이버클라우드, LG AI연구원, 업스테이지, NC AI 등 5개 팀이 참여하고 있다. 정부는 내년 1월 15일까지 이들 모델의 성능을 정량 평가해 최하위 1개 팀을 탈락시키고, 나머지 팀 중심으로 후속 지원을 집중하는 방식을 택했다.

특히 이번 평가에서 주목되는 지점은 한국어와 멀티모달 이해, 추론 능력, 에너지 효율성, 실제 서비스 적용 가능성 등 복합 지표가 함께 반영된다는 점이다. 단순한 파라미터 규모 경쟁을 넘어, 한국이 독자적인 AI 인프라를 구축하고 국가 차원의 디지털 주권을 확보할 수 있을지 가늠하는 첫 시험대로 평가된다.
SK텔레콤은 국내 최초로 매개변수 5000억개 규모의 초거대 AI 모델 A.X K1을 공개하며 승부수를 던진다. A.X K1은 총 5190억개의 매개변수로 설계돼 복잡한 수학적 추론과 다국어 이해에 강점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텔레콤은 실제 운용 시 사용자 요청에 따라 약 330억개 매개변수만 선택적으로 활성화하는 구조를 적용해, 대규모 학습 능력과 상대적으로 가벼운 실행 효율을 동시에 확보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번 모델의 핵심 포지셔닝은 교사 모델이다. 대형 모델이 축적한 지식을 소형·중형 모델에 전수해 다양한 산업·기관이 자체 특화 모델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AI 인프라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이다. SK텔레콤은 크래프톤, 리벨리온 등과 연합한 SKT 정예팀 체제를 바탕으로, AI 반도체부터 서비스까지 수직 통합한 풀스택 소버린 AI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다. 김태윤 SK텔레콤 파운데이션 모델 담당은 글로벌 경쟁 속에서 한국이 AI 3강으로 도약할 전환점을 만들었다고 평가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네이버클라우드는 네이티브 옴니모달 구조를 앞세워 차별화에 나선다. 텍스트, 이미지, 음성을 동시에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된 하이퍼클로바 X 시드 8B 옴니와, 고난도 추론에 특화된 하이퍼클로바 X 시드 32B 씽크를 전면에 내세운다. 옴니모달은 사람이 글, 그림, 음성을 종합해 상황을 파악하듯 복합 데이터를 한 번에 처리하는 구조를 뜻하며, 검색과 추천, 콘텐츠 이해 등 복합 서비스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네이버클라우드는 이 옴니모달 기반 하이퍼클로바X를 검색, 커머스, 콘텐츠 제작, 공공 행정, 제조·물류 등 산업 현장 전반으로 확장하는 AI 에이전트 전략을 추진 중이다. 사용자의 맥락을 이해하고 업무를 대신 수행하는 도메인 특화 에이전트를 대량 공급해 사실상 디지털 노동력을 만드는 방향이다. 성낙호 네이버클라우드 하이퍼스케일 AI 기술 총괄은 텍스트와 시각, 음성 등 감각 확장과 추론 능력 강화를 결합해 현실 문제 해결력을 끌어올렸다고 설명하고, 이를 토대로 산업과 공공 영역에서 실사용 가능한 AI 에이전트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추론 성능은 대학수학능력시험 결과로 간접 검증했다. 32B 씽크는 올해 수능 문제를 실제 시험지 이미지 형태로 입력받아 풀었고,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 등 핵심 과목에서 모두 1등급 수준의 성적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영어와 한국사 과목은 만점을 달성했다. 텍스트로 문제를 전사하지 않고 이미지 이해만으로 문제를 풀이했다는 점에서, 단순 문장 예측을 넘어 복합 독해·추론 능력을 갖췄다는 의미가 있다는 분석도 형성되고 있다.
LG AI연구원은 고성능 오픈소스 모델 엑사원 3.0을 앞세워 전문 영역 경쟁력을 강조할 전망이다. 엑사원 3.0은 화학, 바이오 등 과학 기술 데이터에 특화된 학습을 진행해, 분자 구조 분석이나 신약 후보 탐색, 소재 개발 연구 등에 응용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글로벌 벤치마크에서도 상위권 성능을 기록해 연구용 전문가형 AI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를 국내 산업과 연구 현장에 폭넓게 제공해 AI 기반 R&D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업스테이지는 효율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운 솔라 모델로 승부한다. 솔라는 상대적으로 적은 매개변수로도 거대 언어 모델에 근접하는 성능을 내는 구조를 추구하며, 클라우드 비용 부담이 큰 기업 고객에게 적합한 모델로 인식돼 왔다. 온디바이스 AI 수요가 커지는 흐름도 업스테이지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단말기나 엣지 장비에서 직접 추론을 수행하려면 모델이 가벼우면서도 언어 이해와 도메인 적응력이 높아야 하기 때문이다. 업스테이지는 이러한 구조를 B2B 솔루션과 결합해 실질적인 비용 절감과 업무 자동화를 제공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해 왔다.
NC AI는 엔씨소프트의 게임 개발 역량을 결합한 바르코 모델로 차별화를 시도한다. 바르코는 한국어 처리 능력과 창의적 콘텐츠 생성에 강점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스토리 기획과 게임 시나리오 작성, 그래픽 콘셉트 구상 등 엔터테인먼트 제작 전반에 활용되고 있다. 특히 게임 도메인에서 반복적인 리소스 제작을 자동화하고, 새로운 세계관과 캐릭터를 제안하는 방식으로 개발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NC AI는 이러한 도메인 특화 경험을 기반으로 다양한 산업으로의 확장 가능성도 함께 제시할 것으로 관측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미국과 중국 빅테크를 중심으로 국가 단위 AI 파운데이션 모델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미국은 초거대 모델을 민간 기업이 주도하고, 국방과 의료 등 고위험 영역에서 정부 수요를 붙이는 방식으로 생태계를 키우는 중이다. 중국은 거대 언어 모델에 국가 차원의 인증 제도를 도입하며 통제와 육성을 병행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AI 법안을 통해 고위험 AI 규제를 강화하는 대신, 공공 데이터와 연구 인프라를 개방해 유럽판 신뢰 가능한 AI 구조를 지향하고 있다.
한국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는 이들 흐름 사이에서 기술 자립과 개방 생태계 구축을 동시에 꾀하는 실험에 가깝다. 정부 지원 아래 소수 정예 팀을 선발해 고도화를 돕되, 각 팀이 다시 오픈소스와 민간 수요를 활용해 확산을 유도하는 구조다. 다만 클라우드 인프라와 학습 데이터, 글로벌 인재 확보 면에서 미국과 중국에 비해 열세가 적지 않아,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집중할지가 핵심 변수로 지목된다.
이번 발표회 이후에는 모델 성능 검증과 함께 공공기관과 산업 현장에 실제 적용할 수 있는 파일럿 프로젝트도 순차적으로 연계될 전망이다. 의료, 제조, 교육, 행정 등 분야별로 AI 에이전트와 도메인 특화 모델을 시험 적용해, 독자 AI 인프라가 경제 전반의 생산성과 서비스 품질 향상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확인하는 과정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개인정보 보호와 알고리즘 편향, 저작권 문제 등 AI 윤리와 규제 이슈에 대한 정교한 가이드라인 마련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평가 결과가 한국형 소버린 AI 전략의 방향을 가늠하는 첫 신호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어느 팀이 최종 생존하느냐보다, 초거대 모델과 효율형 모델, 도메인 특화 모델이 어떤 조합으로 국가 AI 인프라를 구성할지가 더 중요하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산업계는 이번 프로젝트가 기술 시연을 넘어 실제 시장과 공공 서비스에 안착할 수 있을지, 그에 맞는 제도와 투자 구조가 뒤따를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