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내시경 데이터로 본 한국 위암 관리…AI 정밀검진 전환점
위암은 여전히 한국인에게 흔한 암이지만, 사망률은 이미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 차원의 위내시경 기반 조기검진 시스템과 학회 주도의 질 관리 체계가 맞물리면서 “많이 걸리지만 덜 죽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축적된 내시경 빅데이터와 표준화된 검사 품질은 향후 AI 기반 정밀검진으로 확장될 핵심 인프라로도 주목된다. 업계에서는 이를 디지털 헬스와 정밀의료 융합의 분기점으로 보는 시각이 커지고 있다.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는 28일 국가암검진사업의 위암검진 성과와 학회 차원의 질 관리 노력을 집대성한 국가암검진사업 위암검진 팩트시트 2025를 발표했다. 학회가 직접 제작한 첫 공식 종합 자료로, 위암검진의 효과와 향후 제도 개선 방향을 과학적 데이터로 정리했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위내시경 검진은 위암으로 인한 사망 위험을 49퍼센트 유의하게 감소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위암검진 수단인 위장조영검사가 5퍼센트 감소 효과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내시경 중심 체계의 효율성이 뚜렷하다. 한국은 2022년 기준 위암 발생률이 세계 3위로 여전히 높지만, 사망률은 10만명당 6점대 중반으로 주요 고위험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으로 보고됐다.
특히 이번 팩트시트는 위내시경 검사가 단순 검진 도구를 넘어, 조기발견율과 장기 생존율을 동시에 끌어올린 핵심 기술이라는 점을 정량적으로 제시했다. 2023년 국가 위암 검진 수검자 가운데 93점대 초반 비율이 내시경을 선택했다는 점은 내시경 중심 검진 구조가 이미 공고해졌음을 보여준다. 위암 진단 시 암이 위벽에만 국한된 단계에서 발견되는 비율도 약 70퍼센트에 육박해, 1990년대 초반과는 전혀 다른 위암 치료 지형이 형성됐다.
조기발견 성과는 생존율 통계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팩트시트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한국 위암 환자의 5년 상대 생존율이 78점대 초반으로 집계됐다고 제시했다. 1990년대 초반 40퍼센트대에 불과했던 수치와 비교하면 거의 두 배에 가까운 향상이다. 학회는 정기적인 위내시경 검진, 내시경 시술 기술 발전, 그리고 표준화된 검사 품질이 결합해 장기 생존 중심의 위암 관리 체계를 만들어냈다고 분석했다.
기술적 측면에서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는 내시경 질 관리의 구조화를 강조했다. 소화기내시경 세부전문의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검사자의 숙련도를 체계적으로 검증하고, 우수내시경실 인증제를 확대한 것이 대표적이다. 감염 방지와 진정(진정제 사용) 관리에 대한 표준 프로토콜도 마련해, 내시경 검사 과정의 안전성과 재현성을 높였다.
이 같은 표준화는 향후 디지털·AI 기술과의 융합에 필수 전제 조건으로 평가된다. 내시경 영상 데이터는 해상도가 높고 검사자마다 촬영 범위와 각도가 달라, AI 학습에 사용하려면 대규모 정제와 라벨링이 요구된다. 질 관리가 잘된 환경에서 축적된 국가 단위 검사 데이터는 AI 알고리즘이 병변을 자동 탐지하고 악성 여부를 분류하는 정밀검진 모델 개발에 유리한 토대가 된다.
시장과 임상 현장에서는 위내시경의 높은 선택률이 곧 디지털 헬스케어 전환 속도를 좌우하는 요소로도 해석된다. 국민 대다수가 2년 간격 국가검진을 통해 내시경을 반복 경험하고 있어, 향후 AI 보조 판독, 클라우드 기반 영상 보관, 원격 협진 등 새로운 서비스 도입에 대한 수용성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기 위암을 내시경 절제술로 치료하고 경과를 디지털로 추적하는 모델도 점차 확산될 여지가 있다.
글로벌 비교 시 한국의 위암 관리 전략은 독특한 구조를 띤다. 일본 역시 위암 발생률이 높은 국가로서 내시경 검진을 적극 활용하고 있지만, 국가 단위 암검진 프로그램과 내시경 질 관리 기준을 학회 차원에서 이렇게까지 상세한 팩트시트로 제시한 사례는 많지 않다. 미국과 유럽은 상대적으로 위암 발생률이 낮아 내시경 기반 대규모 위암검진보다는 대장암이나 폐암 스크리닝에 정책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책·제도 측면에서 국가암검진사업은 건강보험 재정을 바탕으로 일정 연령 이상의 국민에게 정기 위암검진을 제공하는 구조다. 복지부와 관련 기관이 검진 주기와 대상 연령을 설정하고, 학회는 검사 품질 기준을 제안하는 형태로 역할을 분담해 왔다. 이번 팩트시트는 검진 주기 조정, 고위험군에 대한 맞춤형 검진 간격 도입, 질 관리 지표의 법제화 등 후속 정책 논의를 뒷받침할 근거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다만 내시경 검사 확대로 인한 의료 인력 과부하, 지역 간 검사 접근성 격차, 고령층 진정 내시경 안전 문제 등 해결 과제도 남아 있다. 향후 AI 보조 판독 도입이 내시경 전문의의 부담을 줄이고, 지역 병원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진단 정확도를 확보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데이터 활용 과정에서 개인정보 보호와 의료정보 비식별화 기준을 어떻게 정교화할지도 정책적 쟁점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정성우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교수이자 국가암검진사업 위암검진 팩트시트 태스크포스 팀장은 팩트시트가 단순한 통계 모음이 아니라 학회가 책임지고 구축해 온 내시경 질 관리 체계와 국민 건강 향상을 위한 비전을 담은 자료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민이 안심하고 위내시경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이번 팩트시트가 보여준 데이터 기반 성과가 AI 기반 정밀검진, 디지털 치료, 예방 중심 위암 관리 생태계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