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애플 실리콘 총괄 퇴사설…AI 시대 리더십 공백에 반도체 전략도 흔들리나

허예린 기자
입력

아이폰과 맥을 떠받쳐 온 애플의 자체 칩 전략이 리더십 변곡점을 맞고 있다. 아이폰과 맥에 탑재되는 애플 실리콘을 설계해 온 핵심 임원이 퇴사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미 AI 분야에서 후발주자로 평가받는 애플의 기술 로드맵과 인재 전략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AI 경쟁이 반도체 아키텍처 재편까지 이끄는 상황에서, 애플의 조직 안정성과 차세대 제품 경쟁력이 동시에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업계는 이번 사안을 애플 내부 리더십 승계 구도와 AI 중심 반도체 전략의 분기점으로 바라보고 있다.  

 

외신 폰아레나 등 보도에 따르면 조니 스루지 애플 하드웨어 기술 부문 수석 부사장은 최근 팀 쿡 최고경영자에게 퇴사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아이폰, 아이패드, 맥에 들어가는 시스템온칩 설계를 총괄해 온 인물로, 인텔 x86 중심이던 맥을 애플 실리콘 기반 구조로 전환하는 작업을 이끈 주역으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스루지의 팀이 도입한 고성능 저전력 아키텍처가 경쟁사 대비 CPU와 GPU 성능, 배터리 효율을 동시에 끌어올리며 모바일과 PC 시장에서 애플의 프리미엄 포지셔닝을 공고히 했다고 평가한다.  

스루지는 또 퀄컴 의존도가 높았던 통신 모뎀 영역에서 자체 칩 개발 전략을 주도했다. 이는 애플이 통신 칩까지 수직 계열화해 기판 면적과 전력 사용을 줄이고, 통합 AI 연산 유닛과 이미지 신호 프로세서 설계 자유도를 확보하려는 시도로 해석돼 왔다. 이미 애플 실리콘 내부에는 뉴럴 엔진과 같은 AI 전용 연산 블록이 내장돼 있고, 최근 아이폰과 맥에 추가되는 온디바이스 AI 기능을 효율적으로 구동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 수석 설계 책임자의 이탈은 장기적인 칩 로드맵과 공정 최적화 전략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보도에 따르면 스루지는 가까운 시일 내 퇴사를 검토 중이며, 애플을 떠난 뒤 다른 기업에 합류하는 시나리오를 염두에 둔 것으로 전해졌다. 팀 쿡 CEO는 고액 보상과 권한 확대를 제시하며 잔류 설득에 나섰고, 애플 내부에서는 스루지를 하드웨어 엔지니어링과 실리콘 개발 전반을 아우르는 최고기술책임자로 승진시키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기술책임자 신설 혹은 격상은 애플 실리콘과 차세대 하드웨어를 아우르는 통합 기술 컨트롤타워를 세우는 조치로, AI 시대 반도체 전략 강화를 위한 상징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문제는 이 구상이 애플 리더십 승계 구도와 얽혀 있다는 점이다. 현재 하드웨어 엔지니어링을 총괄하는 존 터너스 수석 부사장은 팀 쿡의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된다. 스루지가 최고기술책임자로 오르려면 터너스가 다음 단계 역할로 이동해야 하고, 그 직책으로는 CEO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사실상 팀 쿡의 퇴임과 차기 CEO 선임이 전제되는 셈인데, 애플은 아직 리더십 교체 시점이 무르익지 않았다는 내부 기조를 유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서는 설령 최고기술책임자 승진안이 공식 제안되더라도, 스루지가 새로운 CEO 아래에서 권한 조정이 이뤄지는 구조를 선호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스루지의 퇴사설은 애플에서 고위 임원과 핵심 실무 인력의 이탈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국면에서 제기돼 파장이 더욱 커지고 있다. 애플은 수년간 조직 안정성과 낮은 임원 교체율로 유명했지만, 최근 몇 달 사이에는 AI를 축으로 한 빅테크 경쟁 재편 흐름 속에서 상황이 뚜렷이 바뀌는 모습이다. 특히 메타와 오픈AI, 각종 AI 스타트업으로 애플 출신 인력이 대거 이동하고 있어, 회사가 AI 시대의 기술 비전 제시에서 뒤처졌다는 내부 평가가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인사 흐름을 보면 AI와 인터페이스 설계, 정책과 보안 등 전략 요충지를 담당했던 인물들의 이름이 줄줄이 등장한다. 애플에서 AI를 총괄하던 존 지아난드레아가 이달 초 회사를 떠났고,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 책임자였던 앨런 다이는 메타로 이직했다. 법무와 글로벌 보안을 맡았던 케이트 아담스, 환경과 정책 및 사회 이니셔티브를 담당한 리사 잭슨도 최근 퇴사 또는 퇴사 계획을 공개했다. 아이폰 에어 디자인을 담당하던 젊은 세대 디자이너 아비두르 초두리가 AI 스타트업으로 이동한 사례는, 애플 내부에서 AI 중심의 새로운 프로젝트보다 외부 창업 생태계를 더 매력적으로 보는 분위기를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된다.  

 

경영진 교체도 지속되고 있다. 오랜 기간 최고운영책임자를 맡으며 공급망과 생산 체계를 지휘해 온 제프 윌리엄스가 지난달 회사를 떠났고, 전 하드웨어 총책임자였던 댄 리치오가 지난해 가을 이탈한 뒤 빈자리를 완전히 메우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최고재무책임자 루카 마에스트리는 올해 초 역할이 축소되며 사실상 은퇴 수순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이런 변화는 공급망 관리, 하드웨어 포트폴리오 조정, 대규모 R&D 투자 등 장기 전략을 설계하던 핵심 축이 빠르게 바뀌고 있음을 시사한다.  

 

인사 문제는 고위 임원에 그치지 않는다. AI 연구원, 로봇 공학 소프트웨어 개발자, 하드웨어 디자이너 등 실무 개발 인력의 이탈도 이어지고 있다. AI 학습용 데이터 인프라, 온디바이스 AI 모델 최적화, 로봇 공학 응용 등은 차세대 애플 제품의 차별화 포인트로 꼽히지만, 해당 분야 전문가 상당수가 경쟁 스타트업과 타 빅테크로 옮겨가고 있다는 전언이다. 애플 입장에서는 젊은 고급 인력을 붙잡기 위한 보상과 성장 스토리 제시, 동시에 은퇴 시점을 앞둔 고위 임원 공백을 메우기 위한 리더십 재편까지 이중 과제를 떠안게 된 셈이다.  

 

그동안 애플은 장기적인 제품 로드맵과 느긋한 인사 운영으로 안정적인 성장 궤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AI를 필두로 IT 산업 전반의 기술 패러다임이 빠르게 바뀌는 시점에, 애플 내부 인력 구조가 흔들리면서 조직 문화와 혁신 모델도 조정이 불가피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외신들은 애플이 생성형 AI와 클라우드 기반 대규모 언어 모델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전략을 취해 온 점을 지적하며, 직원 입장에서는 혁신 프로젝트와 성장 스토리가 상대적으로 덜 매력적으로 비쳤을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번 인재 유출은 애플이 새로운 성장축을 마련해야 하는 시기와도 맞물린다. 현재 업계에서 거론되는 애플의 차기 승부처로는 폴더블 아이폰, 온디바이스 생성형 AI 기능을 전면에 내세운 차세대 아이폰과 맥, 웨어러블과 혼합현실 기기의 통합 생태계가 꼽힌다. 특히 폴더블 아이폰은 내년 하반기 출시 전망이, 확장된 AI 기능은 내년 초 공개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런 제품들은 모두 애플 실리콘의 연산 성능과 전력 효율, 통신 모뎀과 이미지 처리, 온디바이스 AI 최적화에 직결되며, 스루지와 같은 칩 설계 리더의 전략 방향이 핵심 변수로 작용해 왔다.  

 

업계 전문가들은 애플이 차세대 AI 반도체 전략에서 선택과 집중을 어떻게 할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본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은 이미 데이터센터용 AI 가속기 설계 또는 맞춤형 TPU 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클라우드와 디바이스를 잇는 통합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애플은 상대적으로 클라우드 AI보다는 기기 내 AI 연산에 방점을 찍어 왔지만, 고급 엔지니어 이탈이 심화될 경우 디바이스와 클라우드를 모두 아우르는 장기 로드맵 수립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다만 애플이 그간 축적해 온 반도체 설계 노하우와 에코시스템 결속력, 막대한 현금 보유고를 감안하면 조직 재편 이후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 경쟁력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존재한다. 신임 리더십이 AI와 반도체, 소프트웨어를 엮는 명확한 비전과 인센티브 구조를 제시할 경우, 외부 인재 영입과 내부 승진을 통해 공백을 메울 수 있다는 시각이다.  

 

결국 관건은 스루지를 포함한 핵심 인재 이탈이 일시적 조정 국면에 그칠지, 아니면 애플 실리콘 전략과 AI 전환을 늦추는 구조적 리스크로 이어질지에 달려 있다. 업계에서는 올내와 내년 예정된 AI 기능 강화 제품과 신규 하드웨어 발표에서 애플이 어느 수준의 기술 변화와 리더십 안정을 보여줄지에 주목하고 있다. 산업계는 애플이 이번 인력 변동을 계기로 조직과 전략을 재정비해 시장에 안착시킬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허예린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애플#조니스루지#팀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