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공룡 발자국 따라 흐린 길을 걷는다”…고성에서 만나는 고대의 시간
라이프

“공룡 발자국 따라 흐린 길을 걷는다”…고성에서 만나는 고대의 시간

신민재 기자
입력

요즘 흐린 하늘 아래 고성의 해안을 따라 걷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바람이 스치는 공룡 발자국 곁,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그 길에서는 평소와는 조금 다른 기분이 든다. 예전엔 먼 탐험지로만 느껴졌던 곳이지만, 지금은 고요한 일상의 쉼표가 되는 여행지로 스며든다.

 

고성군을 찾는 이들의 발길은 공룡박물관에서 시작된다. 하이면 자란만로, 지하 1층과 지상 3층의 전시관에는 백악기 거대생물의 생생함이 서려 있다. 실제로 기자가 방문했을 때, 주말을 맞아 아이와 부모가 함께 전시실을 돌며 공룡의 뼈와 익룡 골격 앞에서 감탄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한 커뮤니티에서는 “3층에 전시된 발자국 화석을 보고 있으니 시계가 거꾸로 흐르는 기분”이라는 후기가 많다. 브라키오사우루스 형상의 공룡탑에 올라 주변 경관을 내려다보는 것도 인기다.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경남 고성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경남 고성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한국관광공사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해 고성공룡박물관 일평균 입장객은 점차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상족암군립공원이 속한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연평균 방문객 비중도 확대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과거 흔적이 남아 있는 자연 관광지가 심리적 리셋의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분석한다.

 

상족암 해안으로 발길을 옮기면, 1억 5천만 년 전 시간이 그대로 멈춘 듯하다. 파도가 깎아낸 해식애와 250여 개의 공룡 발자국이 이어진 파식대에서는 가족, 연인, 친구들이 사진을 남기며 천천히 걷는다. “조용한 바람 소리, 기암절벽과 어우러진 푸른 바다가 마음을 씻어준다”는 반응도 인상적이다. 산책로가 잘 다듬어져 있어 노약자도 걷기 쉬우며, 한쪽에는 잠시 앉아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벤치가 곳곳에 놓여 있다.

 

고성읍 송학리, 널찍한 잔디밭 위 가야시대 고분군은 말없이 과거를 보여준다. 여유롭게 산책하며 오래된 시간을 음미하는 방문객이 드물지 않다. “고요한 풍경 속에서 문득 나 또한 역사의 한 순간임을 느낀다”고 고백하는 이들도 있다. 붐비지 않아 사진을 남기기에도 좋고, 잔디에 앉아 잠시 머물다 가는 여행자가 많다.

 

전문가들은 이런 장소가 주는 차분한 매력을 도시 일상과의 훌륭한 균형점이라 말한다. 고성군 일대는 화려한 볼거리가 없어도, 오히려 소박함 속에서 위로를 찾게 하는 힘이 있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SNS에는 바다와 고분, 공룡 발자국 사진이 쏟아지고, 모두가 조금은 느긋해진 얼굴 같았다”는 평가다.

 

작고 사소한 산책이지만, 그 안에서 멀리 뛰어온 시간의 흔적과 쉼의 온기를 마주하게 된다. 고성에서 보내는 흐린 하루, 익숙지 않은 풍경이 삶의 속도를 천천히 되돌린다. 지금 이 변화는 누구나 겪고 있는 ‘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신민재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고성군#고성공룡박물관#상족암군립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