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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전체계획 몰랐다"…내란 혐의 한덕수 피고인 신문, 1월 선고 갈림길

윤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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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혐의를 둘러싼 공방과 전·현직 고위 관료들의 법정 공세가 교차했다. 내란 방조 등 혐의로 기소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 대한 피고인 신문이 진행되는 가운데, 윤석열 전 대통령과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재판에서도 핵심 증인이 줄줄이 법정에 선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 이진관 부장판사는 24일 오전 10시 내란 우두머리 방조,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로 기소된 한 전 총리 사건의 속행 공판을 열고 피고인 신문에 들어갔다. 한 전 총리가 지난 8월 말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팀에 의해 불구속 기소된 지 약 3개월 만이다.

피고인 신문은 증거조사 종료 뒤 검찰과 변호인이 피고인의 공소사실과 양형 사유를 놓고 직접 신문하는 절차다. 한 전 총리는 그간 공판에서 자신은 비상계엄의 구체적 구상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반박해 왔다.

 

그는 앞선 재판에서 비상계엄 논의 경위를 묻는 질문에 "비상계엄의 전체적인 계획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고, 대통령 집무실에서 비상계엄이 경제나 대외신인도 등에 상당한 문제를 일으킬 것이기 때문에 반대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특검과 변호인단은 이날 신문을 통해 이 발언의 신빙성과 당시 상황 인식을 집중 검증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피고인 신문 이틀 뒤인 26일 결심 공판을 열어 특검팀의 구형과 한 전 총리의 최후 진술을 들은 뒤 심리를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선고 기일은 내년 1월 21일 또는 28일 중 하루로 검토되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내란 혐의로 기소된 국무위원 가운데 한 전 총리가 가장 먼저 법적 판단을 받게 된다.

 

특검은 한 전 총리가 국무총리로서 대통령의 권한 행사에 제동을 걸 책임이 있음에도 불법 비상계엄 선포를 막지 않고 방조했다고 보고 있다. 재판 도중 재판부 요구에 따라 공소장은 한 차례 보완됐다. 특검은 방조 혐의가 인정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도 함께 판단해 달라고 청구했다.

 

혐의에는 최초 계엄 선포문의 법률적 결함을 알고도 사후 선포문 작성·폐기에 관여했다는 주장이 포함돼 있다. 또 헌법재판소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 과정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계엄 선포문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대목을 두고 위증 혐의도 함께 다퉈지고 있다.

 

앞선 공판에서 공개된 12월 3일 대통령실 폐쇄회로TV 영상은 쟁점을 더욱 선명하게 했다. 영상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회의실에 모인 장면과 함께, 한 전 총리가 윤 전 대통령의 지시 사항으로 추정되는 문건을 꺼내 읽는 모습이 담겼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필요성을 설명하는 동안 한 전 총리가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도 포착돼 당시 반대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도 동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지귀연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10시 10분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등 혐의 사건 속행 공판을 열었다. 이 재판에는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여 전 사령관의 법정 출석은 계엄 직후 군과 정보기관의 역할을 둘러싼 공방과 맞닿아 있다. 앞서 13일과 20일 같은 재판에 증인으로 선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은 계엄 당일 여 전 사령관이 자신에게 "방첩사에서 체포 명단을 갖고 활용하는 데 지원을 요청한다"며 위치 추적을 부탁했다고 진술했다.

 

홍 전 차장의 증언에 대해 윤 전 대통령은 지난 기일에서 직접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위치 추적은 영장 없이는 안 된다"며 "여 전 사령관이 그 말을 할 때 '이 친구 완전히 뭘 모르는 애 아니냐'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느냐"고 되물으며 홍 전 차장과 공방을 벌였다. 이에 따라 여 전 사령관을 상대로 한 이날 신문에서는 체포 명단과 위치 추적 요청 경위, 실제 실행 여부를 둘러싼 구체적 진술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재판도 같은 날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 류경진 부장판사 심리로 속행 공판이 진행됐다. 이 전 장관은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날 재판에는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 전 청장은 계엄 선포 이후 경찰의 대응 지침과 단전·단수 등 강경 조치 포함 여부를 둘러싼 의사결정 과정이 무엇이었는지 설명할 핵심 인물로 꼽힌다. 그는 앞서 이달 10일 증인으로 소환됐으나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해 무산된 바 있다.

 

정치권에선 한 전 총리와 윤 전 대통령, 이 전 장관을 둘러싼 재판이 내년 초 본격화되면서 정국 전반에 적지 않은 파장을 낳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내란 혐의와 비상계엄 논란이 맞물린 만큼 헌정질서와 권력기관 통제 구조에 대한 사회적 논쟁도 재점화될 가능성이 크다.

 

법조계에서는 한 전 총리 선고가 다른 국무위원과 군·정보기관 관계자 재판의 사실상 기준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재판부가 어디까지를 내란 방조와 중요임무 종사로 볼지에 따라 향후 관련 사건 판단의 방향이 정해질 수 있어서다.

 

서울중앙지법 각 형사합의부는 남은 증인 신문과 결심 기일 일정을 조율해 내년 상반기까지 관련 사건 심리를 마무리한다는 방침을 세워 두고 있다. 정치권은 재판 결과를 둘러싸고 책임 공방을 예고한 가운데, 국회와 정부는 비상계엄 통제 장치 보완 여부를 놓고 추가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

윤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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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윤석열#이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