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우두산출렁다리 위 가을”…거창, 걷고 맛보는 계절의 한가운데서
요즘은 계절을 찾아 산과 마을을 걷는 여행자가 부쩍 늘었다. 예전엔 먼 산골이라 여겨졌던 경남 거창이, 이맘때면 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일상의 여행지로 사랑받고 있다. 거창의 자연은 유유히 흐르는 시간과 한가로운 공기를 품으며, 여행의 목적이 단순한 ‘관광’을 넘어 자신을 비워내는 ‘쉼’이 돼간다.
거창별바람언덕에 오르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끝도 없이 펼쳐진 은빛 억새 물결이다. 햇살 속에서 반짝이는 언덕을 걸으면, 평소엔 무심코 지나쳤던 바람 한 점도 특별하게 느껴진다. SNS에는 “가을의 색과 냄새가 이런 곳에 모여 있었구나”라는 인증샷과 감상글이 쏟아진다. 그만큼 일상을 잠깐 뒤로 내던지고, 걷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공간이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코로나 이후 근교 자연명소 탐방이 늘었고, 한국관광공사 발표에서도 계절마다 거창을 찾는 이들이 꾸준히 증가세임을 알 수 있다. 특히 10~11월, 단풍 물든 우두산출렁다리를 건너는 경험은 ‘스릴’ 그 이상이다. 기암괴석에 둘러싸여 흔들다리 위를 조심스레 옮기는 발걸음, 바로 아래 깊은 계곡을 내려다보면 누구든 뒷짐 진 사색에 빠지게 된다.
여행지에서 마주하는 미식도 남다르다. 해플스 팜사이더리에서는 거창에서 자란 사과로 만든 상큼한 발효주와 이색적 디저트가 여행의 감각을 확장시킨다. 한 방문객은 “처음 마셔보는 애플사이더인데, 사과 향이 입안을 감싸 아늑했다”고 표현했다. 오래된 사과나무 숲길을 산책한 뒤 마시는 한 잔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각인된다.
여기에 플로라 거창의 엔틱 카페에서 차 한 잔의 여유를 더하는 이들도 많다. 모처럼 북적임과 분주함 대신, 디저트와 커피 향 속에서 천천히 시간을 되감는 느낌이다. 실제로 기자가 현장을 찾았을 때도 “요즘은 이렇게 조용한 분위기가 귀하다”며 독서와 대화를 나누는 이들이 많았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출렁다리에서 두근거림 반, 절경에 감탄 반이었다”, “가족, 연인 모두에게 꼭 한번 권하고 싶은 곳”, “가을이 다 내려앉은 언덕길에서 내 마음도 환해졌다” 등 각자의 방식으로 이 계절을 거창 안에서 움켜쥐려 한다.
거창의 가을은 대단할 것 없는 산책과 한 잔, 그리고 가만히 멈춰 선 풍경 속에서 완성된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