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종섭을 호주로 내보내자"…윤석열, 수사외압 정국 속 도피 지시 정황
수사외압 의혹을 둘러싼 정국 충돌과 윤석열 전 대통령을 겨냥한 해병특검 수사가 정면으로 맞붙었다. 피의자 신분이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과 출국 과정에 윤 전 대통령과 외교·법무 라인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공소장 내용이 드러나면서 정치권 파장이 커지고 있다.
29일 연합뉴스가 입수한 이명현 순직해병 특별검사팀 공소장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2023년 11월 19일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에게 이 전 장관의 해외 대사 파견을 직접 지시한 것으로 적시됐다. 당시 해병대 박정훈 대령 항명 혐의 재판을 통해 국방부의 해병 수사외압 정황이 드러나며 야당을 중심으로 이 전 장관 수사 요구가 거세지던 시점이었다.

공소장에는 윤 전 대통령이 조 전 실장에게 "이제 이종섭을 호주로 내보내자"고 말한 정황이 담겼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이 전 장관을 수사외압 의혹의 연결고리로 인식하고, 자신까지 수사 범위가 확대되는 것을 우려해 해외 대사 임명 형태의 도피를 추진한 것으로 판단했다.
윤 전 대통령의 이 전 장관 대사 기용 언급은 그보다 앞선 2023년 9월 12일에도 있었다. 이 전 장관이 수사외압 의혹이 불거진 뒤 사의를 표명한 날, 윤 전 대통령은 조 전 실장에게 "야당이 탄핵을 하겠다고 해서 본인이 사표를 쓰고 나간 상황이 됐는데, 적절한 시기에 대사라든지 일할 기회를 더 줘야 하지 않겠냐", "공관장을 어디로 보내면 좋을까?"라고 물은 것으로 조사됐다. 조 전 실장이 이때 호주대사직을 추천했고, 윤 전 대통령은 "적절한 시기에 기회를 주자"고 답한 것으로 공소장에 적시됐다.
사흘 뒤 대통령 관저에서 열린 퇴임 장관 만찬 자리에서도 윤 전 대통령은 이 전 장관에게 "앞으로 대사 또는 특사로 활용될 수 있다"고 언질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전임 호주대사의 임기가 2년 이상 남아 있었고, 호주대사의 경우 정년 초과 근무도 가능했던 만큼 통상적 인사 교체로 보기 어려운 시점이었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 의중에 따라 호주대사 교체는 신속하게 추진됐다고 특검팀은 판단했다.
정국이 더 가열된 2023년 11월, 윤 전 대통령의 지시는 한층 구체화됐다. 이 전 장관 측근인 박진희 전 국방부 군사보좌관이 김계환 전 해병대사령관에게 혐의자 축소 지침을 전달했다는 정황이 군사법원에서 공개되며 이 전 장관이 본격적인 수사 대상으로 떠오른 때였다.
윤 전 대통령은 11월 19일 조 전 안보실장에게 "이제 이종섭을 호주로 내보내자"고 지시했고, 조 전 실장은 곧바로 조구래 전 외교부 기획조정실장에게 "이제 이종섭을 보내야겠다. 인사 프로세스를 준비하자. 기왕이면 빨리 보내라"고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 전 기조실장은 외교부 인사 담당 실무자에게 전화를 걸어 "조태용 실장한테 전화가 왔는데 그 호주대사 이제 뺄 때가 됐다. 거기 후임은 저기래. 이종섭 국방부 장관. 3월까지 가기에는 대통령한테 좀 얘기가 그런…그렇다고 하더라고"라며 윤 전 대통령 뜻이 반영됐음을 언급했다.
조 전 기조실장은 또 이 전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을 최대한 신속하게 추진하되, 단독 인사로 눈에 띄지 않게 다른 공관장 인사와 묶어서 진행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조 전 안보실장은 12월 5일 장호진 전 외교부 차관에게도 이듬해 1월까지 이 전 장관을 호주대사로 부임시키기 위한 절차를 서두르라고 요구했다.
이에 따라 장 전 차관은 인사 담당자에게 "호주하고 모로코를 엮어서 빨리 진행하라. 이번 주 내라도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실에 상신하라", "1월 내에 부임할 수 있도록 진행하라"고 주문했다. 특검팀은 외교부 실무진이 호주대사 임기가 충분히 남아 있고 별도의 교체 사유도 없다는 점을 인지하면서도 대통령 지시를 이유로 공관장 자격심사를 진행한 것으로 파악했다.
심사 과정에서는 공관장 자격심사 운영세칙과 달리 이 전 장관의 외국어 능력 검정점수조차 제출받지 않았고, 심사위원 서명만 받는 식으로 형식적인 심사가 이뤄져 빠르게 '적격' 결론이 내려졌다. 윤 전 대통령 지시 아래 외교라인이 움직이면서 이 전 장관은 호주 정부로부터 아그레망을 신속하게 받고 2024년 3월 4일 호주대사로 임명됐다.
출국 과정에서도 대통령실과 법무부의 조력이 이어졌다는 것이 특검팀 시각이다. 윤 전 대통령은 이 전 장관을 호주대사로 임명한 뒤 그가 피의자 신분으로 출국금지 상태라는 보고를 받은 후 "부임 일정을 2주 연기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공소장에 기재됐다. 이 전 장관은 이후 법무부 협조를 받아 출국금지 이의신청서 양식을 전달받았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박성재 전 장관은 이재유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으로부터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 이의신청 사실을 보고받은 뒤 "개인적인 일로 나가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이 호주대사로 임명해서 나가는 것인데 법무부에서 출국금지를 걸어서 나가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 맞느냐", "이종섭 출국금지 풀어주면 되겠네"라며 출국금지 해제를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심우정 전 법무부 차관도 이 전 본부장으로부터 관련 보고를 받고 "대통령이 이종섭을 호주대사로 임명해서 나가는 것인데 이걸 출국금지 걸어서 못 나가게 하는 것이 맞습니까"라고 말하며 사실상 같은 취지의 지시를 했다고 특검팀은 밝혔다. 장·차관 지시를 받은 이 전 본부장은 실무 부서에 출국금지 해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보고서를 준비하도록 요구하는 등 출국금지 심의위원회에 대비했다. 이 단계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부터 출국금지 해제 요청에 대한 의견 회신도 받기 전이었다.
출국금지 심의위원회에 제출될 심사결정서 초안에는 "출국금지를 통해 달성할 수 있는 공익에 비해 신청인이 입게 될 불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되므로 이의신청을 ○○함"이라는 문구가 담겼다. 특검팀은 이 문구가 사실상 출국금지 해제를 전제로 한 사전 결론이라고 판단했다.
특검팀은 특히 2024년 3월 8일 출국금지 심의위가 열리던 날 아침, 박 전 장관이 출근길 발언에서 출국금지 해제에 동의하는 취지의 의견을 밝힌 점에 주목했다. 특검은 공소장에서 "법무부 장관이 심의 당일 공개적으로 해제 필요성을 언급한 행위는 심의위원들에게 압력을 행사한 것과 다름없다"고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병 수사외압과 이 전 장관 도피 의혹을 둘러싸고 야당은 윤 전 대통령과 당시 대통령실 핵심 참모들의 형사 책임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여당 일각에서는 특검 수사가 정치적 의도를 띤 것 아니냐는 반론도 나온다. 정치권 공방은 향후 국회 국방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특검 수사와 별개로 정부는 외교 채널과의 마찰, 공관 운영 차질 등 후폭풍 관리에도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국회는 향후 회기에서 해병 수사외압 진상 규명과 인사권 남용 방지 장치를 둘러싼 논의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