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인 우려 분출"…1인 1표제 무산에 정청래 리더십 직격탄
당내 권력 재편을 겨냥한 선거제도 개편과 기존 조직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이 정면으로 맞붙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강하게 밀어붙인 1인 1표제 당헌 개정안과 지방선거 공천 룰 변경안이 중앙위원회에서 동시 부결되며 당내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은 5일 중앙위원회에서 1인 1표제 도입을 위한 당헌 개정안과 내년 지방선거 예비경선을 권리당원 100퍼센트 투표로 치르도록 한 공천 룰 변경안을 표결에 부쳤으나, 두 안건 모두 의결정족수 미달로 통과에 실패했다. 8월 2일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오른 뒤 4개월간 속도전 개혁을 내세워온 정 대표의 핵심 공약이 한꺼번에 좌초한 셈이다.

표결 결과만 놓고 보면 찬성 비율은 높았다. 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두 안건 모두 실제 투표에 참여한 중앙위원 가운데 70퍼센트 이상이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의결정족수가 재적 과반 찬성으로 엄격하게 설정된 만큼, 재적 중앙위원 596명 중 상당수가 표결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최종 부결로 귀결됐다.
정청래 대표 측은 재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근소한 표 차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다만 정치권과 당 안팎에서는 223명에 이르는 대규모 불참을 사실상 집단 기권, 나아가 정 대표 리더십에 대한 조직적 경고로 해석하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표면상 찬반 비율보다 투표에 나서지 않은 숫자가 더 중요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았다는 분석이다.
당내에서 상대적으로 이견이 적었던 지방선거 공천 룰 개정안까지 함께 부결된 점도 이런 해석에 무게를 싣는다. 이 안은 후보자 수가 많을 경우 권리당원 100퍼센트 투표로 예비경선을 진행하자는 내용으로, 권리당원 결집을 중시해온 정 대표 노선에 부합한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럼에도 중앙위원 상당수는 투표장 자체를 찾지 않았다.
서울 지역의 한 초선 의원은 통화에서 "개혁과제에 대한 공감대는 있지만 정 대표의 추진 방식 등에 대한 우려가 계속된 것도 사실"이라며 "그런 우려가 쌓여 이번에 아주 이례적인 부결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혁 방향과 별개로 리더십 스타일,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소통 부족에 내심 불만이 팽배했다고 전했다.
1인 1표제에 대한 구조적 반발도 부결 배경으로 지목된다. 대의원 제도를 사실상 폐지해 권리당원 영향력을 대폭 키우는 구상은 호남과 강성 당원 비중이 높은 지역에 힘을 싣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더불어 일부에서는 당헌 개정을 정청래 대표의 연임을 염두에 둔 장기 집권 장치로 보는 비판도 제기돼 왔다.
정 대표는 이런 비판에 대응해 영남 등 취약지역에 대한 보완책을 당헌 개정안에 포함하는 선에서 타협을 시도했다. 그러나 당 안팎에서 "보완책의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문제제기가 이어진 가운데, 정 대표가 표결 강행에 가까운 방식을 택했다는 인식이 퍼지며 역풍이 커졌다는 후문이다.
그 사이 내부 갈등은 공개 충돌 양상까지 번졌다. 현직 최고위원이 이례적으로 1인 1표제를 겨냥한 공개 비판에 나섰고, 친명계 의원 모임도 우려를 잇달아 제기했다. 강성 지지층 여론도 갈라지면서 일각에서는 사안을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대표 간 노선 차이로 해석하는 이른바 명청 갈등 구도까지 거론하고 있다.
또 다른 초선 의원은 "중앙위를 앞두고 전략 지역 배려를 어떻게 받는지도 모르는 보완책을 받으라는 것이냐는 당원들의 문자가 빗발쳤다"고 전했다. 개혁 방향에 공감하는 당원들 사이에서도 지역 불균형 가능성과 공천 불투명성을 우려하는 정서가 적지 않았다는 의미다.
중앙위원 구성의 특성도 이번 표결 향방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중앙위원 596명 가운데는 당 지도부와 소속 국회의원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장, 시도 의회 의장, 지역위원장, 시도당 사무처장, 상임고문 등 기존 당 조직을 대표하는 인사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정청래 대표는 8월 2일 전당대회에서 일반 당원 투표에 힘입어 압승했지만, 대의원과 조직표에서는 경쟁자 박찬대 후보에게 뒤졌다는 평가가 나온 바 있다.
이 같은 구조를 고려할 때, 조직 기반을 중시해온 중앙위원들이 대의원 제도 축소와 권리당원 중심 경선 강화에 본능적 방어에 나섰다는 해석도 뒤따른다. 개혁 기조에 반감을 가진 인사들이 직접 반대표를 던지기보다는 투표 불참이라는 방식으로 집단 의사 표시를 했다는 분석이다.
정 대표의 대표 공약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당내 정치 지형 변화 가능성도 커졌다. 당장 정 대표를 지지하는 강성 지지자들이 부결 책임론을 둘러싸고 공개 비판에 나섰던 인사들을 겨냥해 공세를 펼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당내 갈등이 지도부와 조직 세력, 그리고 지지층 간 충돌로 비화할 소지도 있다.
내년 초로 예상되는 최고위원 보궐선거 역시 친청과 비청, 나아가 친명 그룹 간 대결 구도를 한층 선명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최고위원 보궐선거가 정청래 리더십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을 띨 경우, 명청 갈등론이 재점화되면서 계파 구도가 재편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청래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원 주권 시대라는 간판 공약을 실제 제도 변화로 이어가야 하는 과제를 여전히 안고 있다. 동시에 중앙위 부결로 드러난 당내 피로감과 불만을 달래고, 개혁 속도와 절차적 정당성 사이 균형을 재조정해야 하는 숙제도 떠안게 됐다.
민주당은 우선 중앙위 표결 경위를 내부적으로 점검하면서 향후 당헌 개정과 공천 룰 논의를 재정비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지도부와 중앙위, 지지층 간 신뢰 회복 여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 전략은 물론 차기 지도부 구도까지 영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당 관계자들은 당이 조만간 추가 논의 기구를 가동하고, 차기 회기 중앙위와 전당원 의견 수렴 절차를 병행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