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보안 재정비”…KT, 박윤영 대표 내정으로 체질 개선 나선다
30년 넘게 KT에서 커리어를 쌓아온 박윤영 전 기업부문장(사장)이 세 번째 도전 끝에 차기 KT 대표이사 최종 후보로 낙점되며 통신·AI·보안 전략 전면 재정비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해킹 사태 후폭풍이 이어지는 가운데, KT는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 사업을 다시 궤도에 올려야 하는 복합 과제에 직면해 있다. 업계는 박 내정자의 선임을 KT의 AI 체질 개선과 보안 투자 방향을 가를 ‘위기 관리형 리더십 시험대’로 보고 있다.
KT 이사회는 16일 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열고 3명의 후보를 대상으로 심층 면접을 실시한 뒤 박윤영 전 사장을 차기 대표이사 최종 후보로 확정했다. 후보군에는 주형철 전 SK커뮤니케이션즈 대표, 홍원표 전 SK쉴더스 대표가 포함됐지만, KT 내부 사정에 밝고 B2B와 DX(디지털 전환)에서 성과를 낸 인물로 평가받아 온 박 내정자가 최종 낙점됐다. 이사회는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박 내정자를 대표이사로 선임할 것을 주주에 추천하기로 결정했다.

1962년생인 박 내정자는 1992년 한국통신(현 KT)에 입사해 미래사업개발, 글로벌사업, 기업부문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정통 KT맨’이다. KT 융합기술원 미래사업개발그룹장, 미래융합사업추진실 미래사업개발단장을 거쳐 기업사업컨설팅 본부장, 기업사업부문장, 기업부문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클라우드산업협회와 한국공공안전통신협회 회장을 맡는 등 통신 인프라와 클라우드·공공안전 통신 영역에서 정책·산업 양측을 경험한 이력도 강점으로 꼽힌다.
대표 후보 선임 과정에서 박 내정자는 2020년과 2023년에 이어 세 번째로 최종 후보군에 포함됐다. 내년 3월 말 예정된 2026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선임안이 통과되면 3년 임기의 공식 대표이사로 KT를 이끌게 된다. 시장에서는 현재 지배구조와 표심 구도를 감안할 때 선임안 통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새 대표에게 주어진 최우선 과제는 KT 소액결제 해킹 사태의 수습이다. 지난해 9월 불거진 KT 해킹 이슈는 통신사의 보안 거버넌스와 내부 통제 시스템 전반에 대한 신뢰를 훼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도하는 민관합동조사단의 최종 조사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은 가운데, 김영섭 현 대표가 책임을 이유로 연임을 포기하면서 실질적인 수습 책임은 차기 경영진에게로 넘어가고 있다.
KT는 해킹 사태 이전, 향후 5년간 정보보호 분야에 1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박 내정자가 공식 취임하게 될 경우, 이 투자 계획을 실제 조직과 시스템 차원에서 어떻게 구체화할지가 관건이 된다. 결제·인증·고객데이터 보호 체계 강화를 위한 보안 아키텍처 재설계와 함께, 외부 보안 전문 기업과의 협력 구조, 클라우드·네트워크 인프라에 대한 선제적 보안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AI와 디지털 전환 전략의 재가동도 핵심 과제다. KT는 마이크로소프트와 협업해 5년간 2조4000억원을 투자하고, AX(AI 전환) 사업에서 4조6000억원 매출을 달성하겠다는 중장기 목표를 제시해 왔다. AI 전환은 기업이 기존 업무·서비스 전반을 인공지능 기반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뜻하며, 통신사는 네트워크와 클라우드 인프라를 기반으로 이를 B2B 고객에 제공하는 구조다. 박 내정자는 기업간 거래 중심의 B2B 사업 경험이 풍부해, 이 축을 다시 강화할 적임자로 평가된다.
그러나 최근 KT는 정부가 추진한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프로젝트에서 탈락하면서 통신 3사 가운데 AI 인프라 전략에서 한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쟁사들이 자체 초거대 언어 모델과 AI 서비스 플랫폼을 전면에 내세우는 동안, KT는 해킹 사태와 경영 리스크로 전략 추진 동력이 약해졌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업계에서는 박 내정자가 취임하면 자체 AI 역량을 얼마나 빠르게 복구하고, 외부 빅테크·클라우드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어떻게 구조화할지가 향후 3년의 성패를 가를 변수로 보고 있다.
통신·ICT 업계에서는 KT가 AI와 클라우드, 보안, 공공·기업 인프라를 묶어 ‘플랫폼형 B2B 사업자’로 재도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박 내정자가 과거 클라우드산업협회와 공공안전통신협회에서 쌓은 경험은 공공 클라우드, 긴급통신망, 스마트시티·스마트팩토리 같은 융합 사업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자산으로 거론된다. 특히 정부·공공기관이 추진하는 AI 기반 행정·치안·재난 대응 시스템에 통신 인프라와 클라우드, 보안 기술을 패키지로 공급하는 모델이 국내외에서 확대되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국내 통신 3사는 이미 AI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상태다. 각 사는 자체 AI 모델과 통신망 데이터, 고객 행동 데이터를 결합해 맞춤형 요금제, 네트워크 최적화, 콜센터 자동화, 미디어 추천 서비스 등을 강화하는 한편, 이를 기업 고객에게 AI 콜센터, AI 네트워크 관리, 데이터 분석 서비스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AT&T, 버라이즌 등 주요 통신사가 클라우드 사업자와 손잡고 AI·보안 통합 서비스를 확대하는 추세다. KT가 해킹 사태 이후 훼손된 이미지를 회복하지 못할 경우, AI 기반 B2B 시장에서의 입지 약화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KT 이사회는 박 내정자에 대해 KT 사업 전반에 대한 이해와 기술 기반 경영 역량을 바탕으로 DX와 B2B 분야에서 성과를 거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박 내정자는 심층 면접 과정에서 주주와 시장에 대한 약속을 지키겠다는 점을 강조하며, 해킹 사태 수습과 AI·보안·클라우드 재정비 등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사회는 그가 KT의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고, 대내외 신뢰를 회복할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김용헌 KT 이사회 의장은 박 내정자가 새로운 경영 비전 아래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고, 변화와 혁신을 주도해 대내외 신뢰를 조속히 회복하며 이해관계자와의 협력을 이끌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통신과 AI·보안이 결합된 인프라 산업의 경쟁이 거세지는 가운데, 산업계는 박윤영 체제의 KT가 보안 리스크를 털고 AI 중심의 디지털 전환 사업자로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