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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도체·K바이오·디지털헬스…정부, 초혁신경제 밀어붙인다

배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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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도체와 K바이오, K디지털헬스케어, K콘텐츠가 정부의 초혁신경제 전략 축으로 묶였다. 정부가 향후 5년을 우리 경제의 골든타임으로 규정하고, 이 네 분야에 재정과 세제, 금융, 인력, 규제완화까지 패키지로 투입해 글로벌 기술·시장 주도권을 노린다는 구상이다. 첨단소재에서 바이오·헬스, 디지털 콘텐츠에 이르는 IT·바이오 융합 산업 전반을 동시에 끌어올려 산업 구조 전환의 속도를 높이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초전도체 실용화와 K바이오 상업화, 디지털헬스 수출 전략이 향후 기술·규제 경쟁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 겸 성장전략 TF 회의를 열고 초혁신경제 15대 선도 프로젝트 가운데 네 번째 추진계획을 공개했다. 이번 계획에는 국가전략첨단소재·부품 분야의 초전도체 육성과 함께 K붐업 분야의 K바이오 글로벌 상업화 지원, K디지털헬스케어, K콘텐츠 등 4개 과제가 포함됐다. 이로써 15대 프로젝트에 포함된 20개 과제가 모두 윤곽을 드러냈다.

초전도체는 저항 없이 전기를 흐르게 하는 차세대 소재로, 전력 손실 최소화와 초강력 자기장 구현이 가능해 파워 반도체, 의료, 에너지, 항공우주 산업의 핵심 인프라로 꼽힌다. 정부는 이를 산업생태계의 게임체인저로 규정하고 고온초전도자석 원천기술 고도화를 정책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기존 저온 초전도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온도에서 작동하는 고온초전도체의 성능을 끌어올려 자석과 냉각장치 등 핵심 부품·장비를 소형화하고 고성능화하는 것이 목표다.

 

특히 의료용 암치료 가속기, 핵융합 에너지, 항공기 등 응용 분야를 중심으로 실용화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초전도 가속기는 정밀한 고에너지 빔 제어가 가능해 기존 방사선 치료보다 주변 조직 손상을 줄이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고, 핵융합 실증로와 상용로에는 초전도 자석이 필수 장치로 꼽힌다. 정부는 향후 5년 안에 응용 분야별 프로토타입을 단계적으로 구축해 국내 산업·기술 혁신을 견인하겠다는 구상이다.

 

K바이오 분야에서는 글로벌 임상과 상업화의 병목으로 지적돼 온 후반 단계 자금과 사업화 역량을 집중 지원한다. 지금까지는 국내에서 개발된 신약 후보나 의료기술이 다국적 제약사에 기술이전되는 구조가 주를 이뤘지만, 앞으로는 국내 기업이 직접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하는 사업 모델로 전환을 유도한다는 방향이다. 정부는 임상 3상 단계에서 상업화 가능성이 높은 파이프라인을 선별해 약 1500억원 규모의 임상3상 특화펀드를 조성한다.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고비용·고위험 단계인 후기 임상을 뒷받침하고, 동시에 각국 인허가 전략 컨설팅, 글로벌 마케팅, 전문 인력 양성까지 연계하는 전주기 패키지 지원을 가동할 계획이다.

 

이 같은 구조 전환이 현실화되면 신약 라이선스 아웃 위주의 수익 모델에서 탈피해, 기술 수출과 자체 브랜드 의약품 판매가 병행되는 다층적 수익 구조가 가능해질 수 있다. 다만 글로벌 빅파마와의 네트워크, 현지 보험·약가 제도 이해, 리얼월드데이터 활용 역량 등 추가적인 역량 확보가 관건으로 지적된다.

 

K디지털헬스케어는 병원정보시스템과 원격의료, 인공지능 진단 보조 시스템 등 ICT 기반 의료 서비스의 해외 수출을 전면에 내세운다. 국내 병원들이 축적한 전자의무기록 시스템과 처방전달시스템, 의료영상 저장전송시스템 등은 이미 고도화 단계에 들어섰지만, 해외 진출은 규제와 인증, 현지화 문제로 제한적이었다. 정부는 해외 인수 병원 등 글로벌 거점을 활용해 내년 1분기 안에 새로운 수출 모델을 설계하고, 이 거점을 중소·벤처 디지털헬스 기업의 테스트베드로 열어주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를 통해 의료기기와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건강관리 앱, 디지털치료제 등 다양한 서비스가 실제 임상 환경에서 시험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원격 모니터링, AI 영상 판독, 만성질환 관리 플랫폼 등은 인구 고령화와 의료 인력 부족을 겪는 신흥국과 선진국 모두에서 수요가 늘어날 여지가 있다. 다만 각국의 개인정보 보호 규제와 의료행위 정의, 책임 소재에 대한 법제 차이가 커, 수출 모델 설계 단계에서부터 법·제도 리스크 관리가 필수적 과제가 될 전망이다.

 

K콘텐츠 분야에서는 글로벌 플랫폼을 통한 한류 확산을 산업 매출로 전환하기 위한 지원이 강화된다. 정부는 내년 500억원 규모의 K콘텐츠 정책펀드를 조성해 영상, 음악, 게임, 웹툰 등에서 대형 지식재산 확보를 지원하고, 인공지능 기반 콘텐츠 제작 인프라도 확충한다. AI를 활용해 영상 편집과 자막·더빙, 캐릭터 디자인, 게임 밸런싱 등 제작 공정을 자동화하고, 소비자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기획 단계에서부터 흥행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의 투자가 검토되고 있다.

 

법·제도 측면에서는 영상·음악·게임 분야 관련 법규를 정비해 새로운 플랫폼 기반 비즈니스 모델을 뒷받침하고, 웹툰 콘텐츠 제작에 대해 소득세와 법인세 세액공제를 신설한다. 제작비의 일정 비율을 세금에서 공제해 창작사의 투자 여력을 키우고, 글로벌 직행 배급 구조를 갖춘 웹툰·웹소설 기업의 성장을 촉진하겠다는 의도다. 동시에 저작권 보호와 2차 저작물 활용 규율이 함께 다뤄져야 한다는 업계 요구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네 가지 과제는 각각 다른 산업군에 속하지만, 모두 데이터와 AI, 고급 인력이 결합된 IT·바이오 융합 분야라는 공통점이 있다. 초전도체 실용화에는 고정밀 시뮬레이션과 소재 설계 알고리즘이 활용되고, K바이오와 디지털헬스케어는 임상·헬스 데이터 기반의 AI 분석 역량이 필수다. K콘텐츠 역시 생성형 AI와 플랫폼 알고리즘이 핵심 경쟁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가 재정·세제·금융·인력·규제완화를 묶은 패키지 지원을 천명한 배경에는 복수의 과제를 동시에 추진해야만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는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민관 합동 추진단과 관계 부처 협업을 통해 초혁신경제 프로젝트의 실질적인 성과 창출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다만 대규모 공적 자금과 규제 완화가 투입되는 만큼 기술 실패와 시장 부진에 따른 리스크 관리, 성과의 민간 확산 구조 설계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된다. 산업계는 이번 지원책이 실제 투자와 수출, 일자리 증가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배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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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k바이오#k디지털헬스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