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충교역 없인 수주도 없다”…캐나다 잠수함 두고 한독 G2G 전면전
방산 수출을 둘러싼 절충교역 경쟁이 격화되면서 한국과 독일이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사업을 놓고 맞붙었다. 폴란드 사업에서 스웨덴의 G2G 협력 패키지에 밀려난 한국이 다시 한 번 전략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8일 조선·방산업계에 따르면 폴란드 정부는 3천t급 신형 잠수함 3척을 도입하는 오르카 프로젝트의 최종 사업자로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참여한 한국 원팀 대신 스웨덴 사브를 선정했다. 한국 측은 3천600t급 KSS-3 배치-Ⅱ 잠수함을 제안하고 우리 해군 첫 잠수함인 장보고함을 무상 양도했으나 수주에 실패했다.

폴란드 내부에서는 바이 유러피언 기조와 스웨덴의 G2G 패키지가 결과를 좌우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브와디스와프 코시니아크카미시 폴란드 부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스웨덴은 기준, 납품 기간, 특히 발트해에서의 운영 역량 측면에서 가장 좋은 제안을 제시했다"며 "스웨덴은 폴란드로부터 무기 일부를 구매하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무기 역수입 약속 등이 포함된 절충교역이 핵심 무기가 됐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절충교역은 해외 무기나 장비 도입 시 기술 이전, 부품 제작 수출, 역수출, 현지 투자 등 반대급부를 함께 설계하는 교역 방식을 말한다. 과거엔 기술이전 수준에 머물렀지만 최근에는 에너지·핵심광물·제조업 투자까지 아우르는 종합 산업 패키지로 확장되는 추세다.
이 같은 흐름은 캐나다 잠수함 프로젝트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캐나다는 2030년대 중반 도태 예정인 빅토리아급 잠수함 4척을 대체하기 위해 최대 12척의 디젤 잠수함을 도입하는 캐나다 초계 잠수함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잠수함 계약비용만 최대 20조원 규모이고, 향후 30년간 정비·MRO 비용까지 합산할 경우 사업 규모는 최대 60조원으로 추산된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으로 구성된 한국 원팀은 한화오션의 3천t급 장보고-Ⅲ 배치-Ⅱ를 제안해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과 함께 적격후보 명단에 올랐다. 캐나다 정부는 내년 3월 초까지 두 나라로부터 제안서를 접수한 뒤 5월 최종 사업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수주에 성공할 경우 단일 건으로는 한국 방산 수출 사상 최대 규모다.
초기에는 세계 최고 수준 군함 건조 능력을 가진 한국에 캐나다 정부가 호감을 드러내며 수주전이 유리하게 흘렀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지난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해 한화오션 거제조선소를 방문했고, 이어 지난달에는 멜라니 졸리 캐나다 산업부 장관도 같은 현장을 찾았다. 연쇄 방문은 한국 잠수함 기술력과 생산 능력에 대한 관심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독일이 절충교역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판세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독일 정부는 최근 자국 해군에 10억달러 규모의 캐나다산 전투관리체계 도입을 추진하며 캐나다와의 상호 무기 거래 구조를 만들고 있다. 양국은 이미 핵심광물, 액화천연가스, 수소 협력 등을 둘러싼 G2G 논의를 진행 중이며, 올해 8월에는 핵심 광물 협력에 관한 공동의향 합의서도 체결했다.
또 독일은 유럽 재무장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조성된 1천500억유로 규모 군사 조달 기금 중 일부를 절충교역에 활용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캐나다가 비유럽연합 국가로는 처음으로 유럽연합 무기 공동구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만큼, 독일이 유럽 안보 협력을 매개로 캐나다와의 방산·에너지·광물 패키지를 설계할 여지가 커진 셈이다.
양국은 잠수함 사업과 연계해 일정 수량 현지 생산, MRO 시설 확충, 북극 해군기지 현대화, 독일 정부 보증 금융 제공 등을 아우르는 초대형 G2G 패키지를 준비 중이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사실상 잠수함 계약을 매개로 장기 에너지 협력과 첨단 제조 투자까지 끌어들이는 구조다.
업계에 따르면 캐나다 측은 한국과 독일 모두에 절충교역 형식의 종합 협력 방안을 요구한 상태다. 캐나다 산업부는 수출국 정부와 직접 협상을 진행하며 ITB 정책을 충족할 수 있는 국가별 패키지 제안을 주문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ITB는 방산 도입 과정에서 자국 내 일자리 창출과 기술·산업 역량 강화에 실질적 기여를 요구하는 캐나다의 핵심 정책이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방한한 졸리 산업부 장관은 독일 폭스바겐의 캐나다 전기차 배터리공장 신설을 언급하며 한국 측에도 현지 생산시설 등 투자 의향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잠수함 계약을 받으려면 단순 방산 거래를 넘어 배터리, 소재, 에너지 등 첨단산업 동반 투자를 함께 가져와야 한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는 민관이 힘을 합친 총력 대응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실 안팎에서는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전략경제협력 특사 자격으로 캐나다에 파견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캐나다 정부와의 고위급 채널을 가동해 잠수함 사업과 연계한 광물·에너지·첨단 제조 협력 패키지를 마련하자는 취지다.
전문가들은 절충교역 경쟁에서 뒤처질 경우 폴란드 사례가 캐나다에서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장상국 조선대 군사학과 교수는 "상대국 입장에서는 무기만 사들이는 것이 아니라 반대급부를 통틀어 계산하기 때문에 절충 무역은 방산 수출에 상당히 유의미한 중요성을 갖는다"고 짚었다. 이어 "상대국과 주고받을 것을 잘 조율하면 협상력을 더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요즘은 군수 파트뿐 아니라 다른 산업으로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며 "민관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원팀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방산 계약을 계기로 배터리, 수소, 핵심광물, 조선·에너지 인프라까지 함께 묶는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캐나다는 내년 5월 최종 사업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정부는 캐나다 측 ITB 기준과 G2G 요구 사항을 반영한 투자·산업 협력 패키지를 마련하는 한편, 외교·산업·국방 라인을 총동원해 막판 수주전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정치권 역시 캐나다 잠수함 프로젝트를 둘러싼 글로벌 절충교역 경쟁을 주시하며 향후 관련 지원 논의를 이어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