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PLM까지 묶는다"…솔트룩스·케이이노텍, 제조 DX 본격화
인공지능과 디지털 엔지니어링의 결합이 제조업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시도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 AI 기업과 PLM 전문 기업이 손잡고 제품 수명 전 주기에 걸친 데이터를 AI로 통합 분석하는 모델을 내놓겠다고 나선 것이다. 제조업의 설계·개발·생산·품질·설비 전 과정을 하나의 지능형 플랫폼으로 연결하려는 움직임으로, 업계에서는 제조 DX와 AX 경쟁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솔트룩스는 PLM 전문기업 케이이노텍과 제조업 분야 AI 확산과 디지털 전환 사업 공동 추진을 위한 전략적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12일 밝혔다. 양사는 제조업 R&D, 생산, 품질, 설비 등 PLM 전 영역에서 AI와 데이터를 활용한 제조 혁신 모델을 공동 발굴하고 구축하는 한편, 국내 제조 산업 경쟁력 강화를 중장기 목표로 제시했다.

협약 내용에는 AI 및 데이터 기반 제조 혁신 솔루션 공동 기획과 개발, PLM 플랫폼과 AI 기술을 연계한 통합 솔루션 구축, 제조 현장 기반 오픈 이노베이션과 실증 프로젝트 추진, 국내외 시장 공동 진출과 영업·마케팅 협력이 포함됐다. 특히 실제 공장에서 바로 적용 가능한 형태의 통합 AI 제조 솔루션을 만들어, 도입과 검증, 고도화가 반복되는 단계적 DX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점이 강조됐다.
기술 측면에서 솔트룩스는 생성형 AI와 자체 거대언어모델 루시아를 중심으로 제조 데이터 분석과 지식 자동화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설계 문서, 공정 지침서, 품질 리포트, 설비 로그처럼 비정형과 정형 데이터가 혼재된 PLM 환경에 LLM을 적용해, 엔지니어의 질의응답 지원, 설계 변경 영향 분석, 불량 발생 패턴 추적 같은 고부가가치 기능을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기존 BI나 단순 통계 분석과 달리, 자연어 기반 설명과 추천까지 결합해 의사결정 시간을 줄이는 형태로 차별화를 노린다.
케이이노텍은 CATIA, SIMULIA, ENOVIA 등 글로벌 디지털 엔지니어링 솔루션과 MBSE 역량을 바탕으로, 실제 제조 프로세스를 PLM에 정교하게 모델링하고 시뮬레이션하는 역할을 맡는다. MBSE는 시스템을 수치·텍스트 중심이 아니라 모델 중심으로 설계하고 검증하는 방식으로, 설계 단계에서부터 요구사항, 구조, 기능, 테스트를 일관된 모델로 관리할 수 있게 한다. 여기에 AI를 접목하면 설계 오류 가능성을 조기에 찾아내고, 다양한 공정 시나리오를 가상으로 비교해 최적 조건을 도출하는 등 기존 대비 설계 품질과 속도를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이번 협력은 PLM과 AI, MBSE를 단일 산업군이 아닌 융합 플랫폼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세계 반도체와 자동차, 항공 산업에서는 이미 PLM 데이터와 시뮬레이션, 현장 센서 데이터를 통합 분석해 생산성과 품질을 높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내 제조 현장에서는 아직 설비별, 공정별로 데이터가 분절된 경우가 많아, PLM 관점에서 전 주기를 아우르는 통합 모델 구축이 제조 DX의 병목으로 지목돼 왔다. 양사는 통합 아키텍처와 표준 인터페이스를 확보해 이 간극을 줄이겠다는 전략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제조 DX를 둘러싼 경쟁이 이미 치열하다. 미국과 유럽의 주요 제조사는 클라우드 기반 PLM과 IoT 플랫폼, AI 분석을 통합한 스마트팩토리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디지털 트윈과 제너레이티브 설계를 결합해 설계와 생산 최적화를 자동화하는 단계까지 나아가고 있다. 솔트룩스와 케이이노텍의 협력은 국내 제조사가 이런 글로벌 흐름에 맞춰 자체 AI·PLM 융합 역량을 확보하도록 돕는 로컬형 대안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
규제나 정책 차원에서는 제조 AI가 상대적으로 의료나 금융보다 규제 강도가 낮지만, 데이터 표준과 보안, 산업 인프라 지원이 관건으로 꼽힌다. 공장 설비 데이터와 설계 정보가 대량으로 클라우드에 올라가는 만큼, 사이버 보안과 지식재산 보호, 해외 클라우드 사용 시 데이터 주권 이슈가 뒤따를 수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제조 데이터 표준화와 스마트제조 고도화 사업과 연계될 경우, PLM 기반 AI 솔루션 도입 장벽이 낮아질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협력이 제조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AX, DX 성과를 내느냐에 주목하고 있다. 단일 공정 자동화가 아니라, 제품 기획부터 설계, 양산, 서비스까지 전 단계 데이터를 연결해야만 생산성과 품질, 유지보수 효율이 동시에 개선되는 구조를 만들 수 있어서다. AI가 추천하는 최적 설계안과 공정 조건이 엔지니어의 경험과 결합될 경우, 기술 격차가 큰 글로벌 OEM과의 간극을 줄일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이경일 솔트룩스 대표는 제조업이 AI와 데이터 도입 효과가 가장 큰 산업이라고 강조하며, 케이이노텍과 협력을 통해 제조 전 주기 AI 적용 사례를 만들어 국내 제조업 지능형 전환과 경쟁력 강화를 이끌겠다고 말했다. 산업계는 이번 협력이 실제 상용 솔루션과 레퍼런스로 이어져, 국내 제조 DX의 속도를 높일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