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남북 대화 장기 교착 불가피"…국립외교원, 북미대화·중일갈등 내년 정세 진단

최하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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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구상과 현실 정치의 간극이 다시 드러났다. 정부가 내년 한반도 평화 공존 프로세스를 본격화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국책 외교 연구기관에서는 남북대화 재개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대신 북미관계와 중일갈등, 한중관계가 내년 동북아 정세의 핵심 변수로 부상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국립외교원은 16일 발간한 국립외교원 2026 국제정세전망에서 내년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를 종합 진단했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전봉근 국립외교원 명예교수와 이상숙 교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최근 행보를 근거로 남북대화 재개 전망을 어둡게 봤다.

전봉근 명예교수와 이상숙 교수는 보고서에서 "북한은 국내 정치에 집중하며 적대적 두 국가론을 지속하고 북러 관계를 강화하면서 남북대화를 외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9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 회의에서 미국에 대한 대화 여지는 남겨둔 반면 남북대화 가능성은 사실상 배제한 점에 주목한 것이다.

 

두 연구자는 이러한 정세를 토대로 "북미 대화 및 접촉이 재개되더라도 상당 기간 남북대화의 재개는 용이하지 않을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다시 말해 북미관계에서는 일정 부분 완화 국면이 조성되더라도, 남북관계는 별도 트랙에서 장기 교착 상태가 지속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보고서는 또 내년에도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이 진전을 보이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봉근 명예교수와 이상숙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실익이 크지 않다고 평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과 북미대화 재개가 맞물릴 경우 한국 정부의 남북대화 재개 시도는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북미 대화 국면 자체에 대해서는 재가동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국립외교원 민정훈 교수는 보고서에서 "한미 양국 협력을 토대로 북미 정상외교 재활성화 및 북미 관계 개선의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 추가 회동이 성사되지 못한 점을 아쉬운 대목으로 짚으면서도, 김 위원장이 회담 복귀 가능성을 언급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민 교수는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의지가 있으며, 대화에 나설 여건이 마련된다면 회담장에 복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미 양국이 김 위원장이 대화의 장으로 나올 수 있는 "구체적 여건"을 조성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며, 내년 4월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 전후를 북미 정상 회동 가능 시점으로 지목했다. 이 시기를 전후해 한미가 북미 정상 회동 성사를 위해 소통과 협력을 증대해 나갈 것으로 분석했다.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 외교적 인센티브와 관련해서는 비핵화 프로세스와 제재 완화가 핵심으로 제시됐다. 민 교수는 한미가 "북한을 대화로 이끌 수 있는 현실적인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를 마련하고, 북미가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비핵화 방안을 구체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상숙 교수는 특히 제재 문제를 북미대화 재개의 결정적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북한이 하노이 노딜 당시 요구한 것이 2016년 이후 다섯 가지 제재 해제였다"며 북한 내부 정치 상황을 고려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북한으로서는 "국내에 과시하기 위해 대북 제재 관련 성과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제재 완화 수준이 김정은 체제의 협상 참여 여부를 가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북한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제재 완화가 제시된다면 북미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제재 완화 범위와 속도를 둘러싼 미 의회와 국제사회의 반응이 관건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북미협상은 다층적 조율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 뒤따르는 대목이다.

 

보고서는 한반도 외곽으로 시야를 넓혀 중일갈등과 중국의 대외 전략도 함께 조명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대만 유사시 개입 가능성을 시사한 이후 표면화된 중일갈등은 내년에도 진정되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윤석정 교수는 "다카이치 총리가 대만 관련 발언을 철회할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며 "내년에도 중일갈등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일본 정부가 갈등 수위를 자신들의 경제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관리할 것이라는 전망도 곁들여졌다. 윤 교수는 "일본 정부가 중일갈등이 중국 희토류 수출 제한으로까지 악화하지는 않도록 관리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과거 희토류 수출 규제를 외교 카드로 활용한 전례가 있는 만큼, 일본이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하려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국의 한반도 및 동북아 전략과 관련해서는 균형 외교와 실리 추구가 병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시됐다. 김한권 교수는 "중국 입장에서는 한중, 일중, 한중일 협력을 통해 동북아 진영화 구조를 중화시켜야 하는데 현재 중일관계가 나쁘다 보니 중국이 쓸 수 있는 카드는 한중 협력 강화"라고 설명했다. 중일관계 악화가 오히려 한중협력 강화의 동인이 될 수 있다는 취지다.

 

김 교수는 특히 한중관계 재정립을 위한 실질 의제가 서해에서 등장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올해 한중관계 재정립이라는 명분도 있는 만큼 서해 경계획정 문제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논의를 시작하면 서해 구조물, 한국방공식별구역 KADIZ, 어업활동 등 다양한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서해 해양 경계, 군사 활동, 어업권 문제를 포괄하는 구조적 협의체가 구축될 필요성을 제기한 셈이다.

 

국립외교원의 이번 전망은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평화 공존 프로세스와 미국 대선 이후 정세 변화를 함께 고려한 분석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한미 공조를 토대로 북미 정상외교 재가동과 비핵화 로드맵을 모색하는 한편, 중일갈등 장기화 속에서 한중협력과 지역 다자협력을 병행하는 복합 전략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정부는 내년 북미·북중·북러 관계 변화와 중일관계 추이를 면밀히 주시하며, 남북 대화 채널 복원을 위한 창구를 다각도로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 역시 향후 대북 제재 완화 논의, 한반도 비핵화 방안, 한중 협력 의제 등을 놓고 논의를 이어갈 전망이다.

최하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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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외교원#북미대화#중일갈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