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반도체 의존 심화된다 산업연구원 수출전망은 엇갈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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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역폭메모리와 차세대 서버용 메모리 등 고부가 반도체 수요가 내년에도 늘면서 한국 수출에서 반도체 중심 구조가 더 뚜렷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올해 역대급 호황 이후 기저효과로 반도체 증가율은 한 자릿수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와 이차전지, 철강과 정유 같은 기존 주력 제조업은 현지 생산 확대와 관세 규제, 글로벌 수요 둔화에 막혀 수출 회복이 지연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편중이 심해지는 구조 속에서 다른 산업의 경쟁력 저하가 중장기 리스크로 떠오른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2026년 경제 산업 전망에 따르면 내년 13대 주력산업 수출은 올해보다 0.5퍼센트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메모리 가격 반등과 인공지능 인프라 투자 확대로 반도체가 전체 수출을 끌어올렸지만 내년에는 미국과 중국 간 통상 갈등, 미국의 품목별 관세 확대 움직임이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판단이다. 연구원은 반도체와 정보통신기기, 조선, 바이오헬스는 견조한 성장을 이어가되 자동차와 섬유는 정체, 철강과 석유화학, 정유는 침체가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이번 전망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반도체다. 산업연구원은 올해 반도체 수출이 16.6퍼센트 증가한 데 이어 내년에도 4.7퍼센트 추가 성장을 제시했다. 글로벌 인공지능 서비스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투자가 확대되고, 서버와 고성능 컴퓨팅용으로 쓰이는 HBM과 DDR5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는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본 것이다. 다만 메모리 가격 급등과 기저효과가 겹쳤던 올해만큼의 폭발적 성장세를 반복하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반도체 수입도 6.9퍼센트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 관세 부과를 예고하면서 통상 리스크가 부각됐지만 산업연구원은 실질 타격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한국 반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데다 첨단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에서 한국 업체를 즉시 대체할 공급처가 마땅치 않아 관세 인상분 상당 부분이 판매가격으로 전가될 여지가 있다고 본 것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올해 하반기 HBM과 DDR5, 레거시 반도체 가격이 예상보다 크게 올랐던 점을 언급하면서 이런 변동성을 감안해 내년 수출 전망을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를 포함한 정보기술 신산업군 전체 수출은 내년 4.2퍼센트 증가로 전망됐다. 생성형 인공지능 확산에 따라 데이터센터 증설과 클라우드 인프라 투자가 이어지고, 스마트폰과 PC 교체 수요와 함께 IT 기기용 고부가 부품 채택이 늘어나는 흐름이 배경이다. 정보통신기기 수출은 4.9퍼센트 증가가 예상됐다. 하드디스크드라이브에서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로의 전환이 빨라지고, 낸드플래시 가격 상승이 수출 단가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디스플레이 역시 IT용 기기에서 유기발광다이오드 채용이 확대되면서 수요 기반은 유지되지만 중국 패널 업체의 추격과 대미 통상 여건 악화로 내년 수출 증가율은 2.7퍼센트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바이오헬스는 글로벌 의약품 수요가 견조한 가운데 바이오시밀러 위탁생산과 주요 품목 수출이 확대되며 7.8퍼센트 성장 가능성이 제시됐다. 고부가 헬스케어 수요가 꾸준히 늘면서 생산과 수출 모두 중장기 성장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반면 이차전지 산업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역풍이 계속될 것으로 분석됐다. 에너지저장장치와 유럽 전기차 판매가 확대되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수요국에서 완성차 업체들이 현지 배터리 생산을 늘리고 있고, 글로벌 전기차 수요 증가율도 둔화되고 있어서다. 산업연구원은 이런 요인이 겹치면서 내년 이차전지 수출이 12퍼센트 감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배터리 업체 입장에서는 북미와 유럽 현지 공장 가동이 커질수록 한국에서의 생산과 수출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자동차 산업도 비슷한 고민에 직면했다. 완성차 수출 물량은 내년 0.3퍼센트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지만 부품까지 합한 전체 수출액은 0.6퍼센트 감소가 전망된다. 전기차 전환과 친환경 규제 확대로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미국과 유럽, 동남아에 현지 공장을 늘리면서 국내 생산과 수출이 줄어드는 가운데 부품 조달도 현지화 비중이 커지는 추세다. 미국의 15퍼센트 관세 부과 움직임 또한 가격 경쟁력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산업연구원은 예전처럼 해외 생산이 국내 부품 생태계와 긴밀히 연결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국내 생산 기반을 유지하려면 투자 환경과 기술 경쟁력 제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조선업은 내년 수출이 4퍼센트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최근 몇 년간 액화천연가스 운반선과 고부가 선박 수주에 힘입어 높은 수준의 수출이 이어졌지만 고가 해양플랜트 수출이 줄고 컨테이너선 인도 물량이 감소하면서 일시적인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다만 LNG 운반선과 관련 기자재 수출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봤다.

 

일반기계와 기계산업군 전반에는 미국 관세 정책과 중국 경기 둔화가 부담으로 작용한다. 산업연구원은 내년 일반기계 수출이 3.7퍼센트, 기계산업 전체는 2퍼센트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의 품목별 관세 확대 가능성과 글로벌 제조업 투자 둔화, 해외 생산 확대에 따른 현지 부품 조달 증가가 수요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소재 산업은 수출 감소폭이 더 클 것으로 분석됐다. 전체적으로 7.6퍼센트 수출 감소가 전망되는 가운데 섬유가 소폭 반등을 시도하겠지만 정유와 철강, 석유화학은 역성장이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철강의 경우 내년 미국의 관세 조치와 유럽연합의 수입 쿼터 규제가 본격화하면서 수출 물량이 6.4퍼센트 줄고 수출액도 5퍼센트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국내 건설과 제조 수요 부진에 수출 여건 악화까지 겹치면서 업황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정유 업종은 글로벌 공급 우위가 지속되는 가운데 국제유가가 배럴당 58.8달러 선으로 내려가면서 수출 단가 하락이 예상된다. 산업연구원은 내년 정유 수출액이 16.3퍼센트 줄어들 수 있다고 봤다. 석유화학 역시 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자급률이 오르고 미중 갈등과 관세 협상이 이어지면서 수입 수요가 줄어 전년 대비 2퍼센트 감소가 전망됐다. 반면 섬유는 미국의 중국산 고관세에 따른 반사이익, 주요국 금리 인하 기조, 중국의 내수 진작 정책, 첨단 기능성 소재 수요 확대, 한류 확산에 따른 한국 패션 수요 증가로 내년 수출이 0.9퍼센트 늘어나 소폭 회복할 것으로 분석됐다.

 

권남훈 산업연구원 원장은 반도체 의존 심화와 타 주력 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동시에 지적했다. 그는 반도체 중심 의존성이 강해지고 있고 다른 주력 산업의 경쟁력은 상당한 도전을 받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우려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2026년에는 거시 환경이 안정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있지만 그 시기를 산업 경쟁력 회복의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계는 고부가 IT와 반도체 호황이 한국 수출을 얼마나 오래 지탱할 수 있을지, 동시에 자동차와 소재 산업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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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연구원#반도체수출#자동차수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