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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헬스로 병상 관리까지”…제약사, 의료기기 동맹 확대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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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헬스케어가 제약바이오 업계의 새로운 성장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전통 제약사는 강력한 병원 영업망과 보험 제도 이해도를 바탕으로 스타트업이 개발한 디지털 솔루션과 웨어러블 의료기기의 유통과 시장 안착을 담당하며 사업 외연을 넓히는 구조다. 기술 기반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초기 연구개발 비용으로 혁신 솔루션을 내놓을 수 있지만, 실제 의료 현장 도입과 매출 창출 단계에서는 규제 대응과 보험수가, 병원 네트워크가 핵심이어서 제약사와의 협업이 빠르게 확산되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이 흐름을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주도권을 둘러싼 제약사와 글로벌 빅테크 간 경쟁의 전초전으로 보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솔루션은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질병을 예방하고 관리하며 치료까지 지원하는 것이 특징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인공지능, 웨어러블 기기가 연동돼 환자의 행동 패턴과 생체 신호를 연속적으로 수집하고, 이를 분석해 맞춤형 치료 전략을 제안하는 구조다. 기존 화학생물학적 치료제처럼 투약 위주의 단일 처방이 아니라, 장기간 모니터링과 행동 중재가 결합된 복합 치료 모델로 진화하고 있어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에 대응하는 핵심 도구로 주목받는다.  

종근당의 행보는 이 같은 융합 전략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종근당은 최근 슬립테크 기업 에이슬립과 수면무호흡증 디지털 진단보조기기 앱노트랙의 국내 공동판매 계약을 체결하며 수면의료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앱노트랙은 스마트폰으로 기록한 수면 중 호흡 소리를 인공지능이 분석해 수면무호흡증 위험도를 조기에 선별하는 디지털 진단보조 의료기기다. 별도 장비 없이 자택에서 자체적으로 수면 검사를 수행한 뒤, 결과를 기반으로 병의원에서 고위험군 환자에 대한 후속 진단과 치료 여부를 신속하게 결정하는 방식이다. 에이슬립은 종근당의 전국 병원 영업망을 활용해 시장 침투 속도를 높이고, 종근당은 디지털 의료기기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상호 보완적 구조가 형성된 셈이다.  

 

대웅제약은 디지털 헬스케어를 미래 핵심 사업으로 설정하고 가장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초고령사회 진입에 따른 만성질환 관리 수요 확대를 겨냥해 원격 모니터링과 데이터 기반 치료 보조 솔루션을 다수 도입했다. 대웅제약의 디지털 헬스케어 부문 매출은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36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7퍼센트 증가했다. 환자가 증상이 악화된 뒤 병원을 찾던 기존 패턴에서 벗어나, 일상생활 동안 수집되는 건강 데이터를 기반으로 변화를 조기에 포착하고 의료진이 빠르게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연속 모니터링’ 체계가 매출 성장의 배경으로 분석된다.  

 

특히 대웅제약이 유통을 맡은 실시간 입원환자 모니터링 시스템 씽크는 국산 디지털 헬스케어 기기 가운데 처음으로 원격심박기술에 의한 감시 항목으로 보험수가를 획득했다. 씽크는 씨어스테크놀로지가 개발한 환자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무선 네트워크 장비와 인공지능 기반 웨어러블 진단기기를 활용해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의 상태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이상 징후 발생 시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심박수와 호흡, 움직임 등 다중 생체 신호를 통합 분석해 의료진에게 경보를 보내는 방식으로,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병동 운영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대안으로 평가된다. 보험수가 인정으로 병원 입장에서는 도입 비용 부담을 줄이고 제약사로서는 신규 매출원을 확보하는 효과가 동시에 나타났다.  

 

대웅제약은 씽크 외에도 연속혈당측정기 프리스타일 리브레, 웨어러블 심전도 기기 모비케어, 반지형 연속혈압측정기 카트비피, 인공지능 실명질환 진단 보조 솔루션 위스키 등 다양한 디지털 의료기기를 포트폴리오에 추가했다. 혈당과 혈압, 심전도, 안저 영상 등 서로 다른 생체 데이터를 축적해 하나의 환자 단위로 통합 관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정밀의료 서비스와 연계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연속혈당측정과 심전도 패치, 안과 인공지능 판독 솔루션 경쟁이 이미 치열한 만큼, 국내 병원에서 축적되는 데이터와 운영 경험은 국산 디지털 헬스케어 생태계 경쟁력의 핵심 자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독은 정신건강 분야 디지털 치료기기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한독은 웰트와 협력해 인지행동치료 원리를 모바일 앱 기반 프로그램으로 구현한 디지털 치료기기를 공급 중이다. 2023년 허가를 받은 불면증 디지털 치료기기 슬립큐는 6주간의 구조화된 프로그램을 통해 사용자의 수면 습관과 행동 패턴을 분석하고, 인지 교정 훈련을 제공해 약물 외적 치료 옵션을 제시한다. 지난해에는 개인용 연속혈당측정기 바로잰Fit을 출시하는 등 만성질환 관리와 생활습관 개선을 겨냥한 의료기기와 건강관리 사업을 키우고 있어, 정신건강과 대사질환을 아우르는 디지털 헬스케어 축이 형성되고 있다. 불면증과 우울, 불안 등 정신건강 영역은 약물의 부작용과 의존성 문제가 반복 제기돼 왔다는 점에서, 비약물 디지털 치료기기 확산이 글로벌 규제 환경 변화와 맞물려 가속될 여지가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동아에스티는 심혈관 분야 원격 모니터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22년 디지털 헬스 기업 메쥬와의 계약을 통해 심전도 원격 모니터링 플랫폼 하이카디의 국내 판권을 확보했다. 하이카디는 국내 최초 웨어러블 환자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다수 환자의 실시간 심전도와 심박수, 호흡수, 피부온도, 산소포화도 등 복수의 생체 신호를 원격으로 관찰할 수 있다. 심장질환 고위험군이 많은 고령층의 재입원과 급성 악화 위험을 줄이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어 병원 경영과 건강보험 재정 양 측면에서 효율성 개선 효과가 기대된다는 평가도 있다. 동아에스티는 여기에 더해 의료 인공지능 솔루션 기업 에이아이트릭스와 업무협약을 맺고 예측 모델과 진단보조 소프트웨어를 결합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어, 하드웨어 기반 모니터링에 알고리즘을 접목한 통합 플랫폼 구축을 노리는 행보로 해석된다.  

 

유한양행은 심장질환 관리 분야에서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9월 유한양행은 휴이노와 인공지능 기반 스마트 원내 모니터링 솔루션 메모 큐의 국내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유한양행은 2022년부터 휴이노와 장기 심전도 모니터링 시스템 메모패치 협업을 진행해왔으며, 이번 메모 큐 공급은 두 번째 공동 프로젝트다. 메모패치는 환자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장기간 심전도를 기록하는 패치형 기기이고, 메모 큐는 수집된 데이터를 병원 시스템과 연동해 의료진이 효율적으로 모니터링하도록 돕는 솔루션으로 알려져 있다. 양측 협업으로 심전도 데이터 수집부터 분석, 임상 의사결정 지원까지 이어지는 연속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로 관측된다.  

 

이처럼 국내 주요 제약사가 디지털 의료기기와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잇따라 도입하는 배경에는 규제와 보험 제도의 문턱을 넘는 과정에서 제약사의 경험이 강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이 건강보험 수가를 인정받을 경우, 병원과 환자 모두 비용 부담을 줄이고 도입 동인을 확보할 수 있어 시장 형성 속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식품의약품 안전 관련 규제와 개인정보 보호 제도, 보험 재정 고려가 동시에 얽혀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 영역에서 스타트업 단독으로는 진입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는 점이 제약사와의 전략적 제휴를 촉진하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이미 애플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이 스마트워치, 스마트폰, 클라우드 기반 의료 데이터 플랫폼을 앞세워 헬스케어 시장에 깊숙이 진입한 상황이다.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심전도, 산소포화도, 활동량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클라우드에서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조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국내 제약사가 병원 중심의 의료기기 유통과 의약품 연계 서비스를 강점으로 내세운다면, 빅테크는 소비자 직접 연결과 데이터 플랫폼 장악력을 무기로 삼고 있어 향후 경쟁 구도는 다층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제약사뿐 아니라 글로벌 기술 기업도 헬스케어 시장에 속속 진출하고 있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경쟁 강도가 한층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병원과 환자, 규제 당국의 신뢰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데이터 보안과 임상적 유효성 검증이 뒷받침돼야 산업 성장이 지속될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산업계는 디지털 헬스케어가 실제 의료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안착해 새로운 표준 치료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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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사#디지털헬스케어#의료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