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전략투자 특별법 발의"…김병기 "관세 인하 외교 성과, 경제 성과로 확산"
한미 관세 협상 후속조치를 둘러싼 이해득실 계산과 국회 입법권이 맞붙었다. 한국산 자동차 관세 인하를 위한 대미 투자 구조를 제도화하는 특별법이 발의되면서, 한미 간 외교 합의가 국회 심의를 거치는 정치 과정으로 옮겨붙는 모양새다.
26일 국회에서는 한국의 대미 전략투자를 뒷받침하기 위한 대미투자특별법안이 발의됐다. 법안이 제정되면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와 부품에 부과하는 관세를 25퍼센트에서 15퍼센트로 낮추고, 그 효과를 11월 1일자로 소급 적용하는 토대가 마련된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를 위한 특별법안을 제출했다. 김 원내대표는 서면 입장을 통해 "양국 간 MOU의 단순한 이행 조치가 아닌 국익 특별법"이라며 "관세 협상의 외교 성과를 경제 성과로 확산시키기 위해 국회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전했다.
이보다 앞서 정부는 미국과 한미 관세 합의 및 대미 투자 관련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미국에 3천500억달러 규모의 전략적 투자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또 MOU 이행을 위한 기금 조성 관련 법안을 한국 정부가 발의하면, 법안이 제출된 달의 1일로 관세 인하를 소급 적용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발의된 특별법은 대미 투자를 위해 한미전략투자기금을 설치하고, 이를 관리·운용하는 한미전략투자공사를 한시적으로 설립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공사는 정부 출자로 설립되며 운영 기한은 최대 20년으로 제한됐다. 법정 자본금은 3조원이고, 구체 업무는 한국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한국무역보험공사, 한국투자공사 등에 위탁할 수 있도록 했다.
한미전략투자기금 재원은 정부와 한국은행이 위탁하는 외환보유액 운용수익, 해외에서의 정부보증 채권 발행 등으로 조달된다. 기금은 대미 투자와 한미 간 조선 협력 투자 금융지원에 사용하도록 규정했다. 정부 외환자산과 국책금융을 연계해 대형 대미 프로젝트 자금을 조성하는 구조다.
투자 의사 결정 체계도 법률 차원에서 구체화했다. 한미전략투자공사 내 운영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 내 사업관리위원회가 이중 안전장치 역할을 하도록 설계됐다. 운영위 위원장은 기획재정부 장관, 사업관리위 위원장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맡는다.
대미 투자 절차는 미국 측 투자위원회가 사업 후보를 제안하면, 먼저 산업부 사업관리위가 사업의 상업적 합리성과 전략적·법적 고려 사항을 검토한다. 이후 공사 운영위가 사업관리위 검토 결과와 기금 재무 상황을 종합해 심의·의결한다.
운영위에서 긍정 판단이 내려지면 산업부 장관이 자신이 위원장으로 있는 한미 협의위원회를 통해 대미 투자 사업 추진 의사를 미국 측에 전달하고 협의를 진행한다. 한미 협의위 논의를 거쳐 미국 투자위원회가 미국 대통령에게 특정 사업에 대한 투자를 추천해 투자처가 확정되면, 다시 공사 운영위가 투자 자금 집행을 최종 심의·의결한다.
산업부 사업관리위가 자체적으로 사업을 발굴하는 경우에도 동일한 절차를 거치도록 규정했다. 사업관리위의 상업적 합리성 검토, 공사 운영위의 종합 심의·의결, 산업부 장관의 대미 협의, 운영위의 최종 자금 집행 심의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특별법안에는 외환시장 안정과 국부 보전을 위한 안전장치도 다수 담겼다. 우선 연간 200억달러 송금 한도 내에서 사업 진척 정도를 고려해 투자금을 집행하도록 했다. 또 외환시장의 불안을 야기할 우려가 있는 경우 투자 집행 금액과 시점을 조정할 것을 요구하도록 규정했다.
미국 측 투자 프로젝트 선정에서도 상업적 합리성을 전제로 하도록 못 박았다. 법안은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투자 사업만이 미국 투자위원회의 추천 대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투자 손실을 떠안을 수 있는 구조를 제도적으로 차단하려는 취지다.
국내 산업과 인력 활용을 위한 조항도 포함됐다. 한미 양국이 대미 투자 프로젝트의 상품 및 서비스 공급 벤더와 프로젝트 매니저를 선정할 때, 가급적 한국 기업 또는 한국인이 선정될 수 있도록 미국 측에 추천하도록 규정했다. 동시에 미국 정부 측 지원 필요 사항을 검토해 양국 간 협의를 진행하도록 했다.
장기투자에 따른 자본 회수 위험에 대한 보완책도 들어갔다. 법안은 20년 기한 내 개별 대미투자 사업의 투자금 회수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는 현금흐름 배분 비율 조정을 미국과 협의하도록 했다. 수익 배분 구조를 재조정해 손실 가능성을 낮추겠다는 구상이다.
국회 견제와 감독을 위한 조항도 비교적 촘촘하다. 한미전략투자공사는 기금 관리·운용 상황을 연 1회 이상 국회에 보고해야 하며, 국회 운영위원회가 공사 업무 상황 전반에 대한 감독권을 가진다. 입법부가 대규모 대외투자의 집행 과정을 상시 점검하는 구조다.
정부 부처도 법안 발의와 동시에 후속 행보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국회 발의 직후 장관 명의 서한을 미국 상무장관에게 보내 한국산 자동차·부품 관세 인하의 11월 1일자 소급 적용 내용을 연방관보에 조속히 게재해 달라고 요청했다. 연방관보에 게재될 경우 관세 인하 조치는 소급 적용된다.
더불어민주당은 MOU 상 소급 적용 합의에 맞추기 위해 법안을 속도감 있게 발의했지만, 향후 국회 심사 과정은 신중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허영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국회 제출 직후 취재진과 만나 "여야가 함께 머리를 맞대서 조금 더 완벽한 대미투자법으로서 통과되기를 기대하는 차원에서 시간을 정하지 않고, 꼼꼼하게 심의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국민의힘이 적극적으로 협조해줄 것을 기대하고 요청한다"고 말했다.
다만 정작 핵심 쟁점인 3천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에 대한 국회 내 찬반 공방, 재정·외환 건전성 영향에 대한 여야 논의는 앞으로 본격화될 전망이다. 한미 양국 정부가 관세 인하와 투자 확대를 맞교환하는 구조를 설계한 만큼, 국회 심사 과정에서 외교·통상·재정 각 분야를 아우르는 쟁점이 한꺼번에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이날 국회는 한미 관세 합의 후속 조치인 대미투자특별법안을 발의하며 제도 논의를 출발선에 올려놨다. 정치권은 관세 인하 효과와 대규모 대외투자 리스크를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을 예고한 가운데, 국회 상임위와 법제사법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여야 간 세부 조정이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와 국회는 특별법 처리 이후 시행령과 협의체 운영 규칙 등을 추가로 마련해 대미 투자 이행 방안을 구체화해 나갈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