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뇌물 판단 뒤집나”…노태우 비자금 300억원, 검찰 수사 향방 촉각
정치권과 사법기관 사이에서 ‘노태우 비자금 300억원’의 진실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이 다시 불붙었다. 대법원이 최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을 “뇌물로 보인다”고 판시하면서, 비자금의 실체와 흐름을 추적해 온 검찰 수사의 행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사자 사망과 공소시효 만료라는 현실적 한계, 그리고 증거 확보의 어려움이 맞물리며, 정치적 파장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 18일,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이희찬 부장 직무대리)는 대법원 판결 취지를 반영해 SK그룹 최태원 회장,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관련 최종심을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지난해 5·18재단 등 시민단체의 고발장을 피고발인 신분으로 접수한 뒤, 노태우 일가 등 관련자 금융계좌 자료를 확보해 자금 흐름 추적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노소영 관장 측이 내놓은 SK(구 선경) 명의 약속어음, ‘선경 300억’ 메모 등 당시 자료는 1991년 선경건설 명의 어음이 비자금 지급의 담보였다는 주장이 핵심이다. 노 관장 측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300억원을 건네고, SK가 태평양증권 인수자금 등 경영활동에 이 자금을 활용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도 “노태우가 대통령 재임 중 받은 금원을 최종현 전 회장에게 지원했다고 보더라도, 그 자금은 뇌물로 인한 것”이라면서 기여분 인정 불가를 명확히 했다.
이에 대해 최태원 회장 측은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활동비 지원 약속이었을 뿐 비자금 수수 사실이 없다”며 정면 반박했다. 앞서 2심 재판부는 비자금 유입을 일부 인정하고,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1조3808억원을 재산분할금으로 지급하라고 판결했으나, 대법원은 “비자금은 불법 자금이므로 분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결론냈다.
노태우 비자금 존재론은 이혼소송 과정에서 비로소 수면 위로 부상했다. 그러나 1995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수사에서도 최종현 회장 관련 태평양증권 인수자금의 출처는 비자금에까지 연결되지 못했고, 당시 부과된 2628억원의 추징금에서도 제외됐다. 현행법상 범죄수익 은닉죄의 공소시효(7년)가 이미 지났다는 점, 그리고 1993년 금융실명제 시행 이전의 자료 결손도 난제로 꼽힌다.
법조계에서는 “실질적으로 자금 흐름이 최근까지 확인되지 않는 한 실체적 진실 접근은 난관”이라는 회의적 시선이 우세하다. 다만, 사회적 영향력이나 법적 의미 등 상징성은 결코 작지 않다는 평가가 뒤따르면서, 파기환송심 재판과 검찰 수사 결과가 정치권에 적지 않은 파장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이날 법조계 안팎은 “비자금 사건의 실체가 결론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사법 신뢰와 정치적 의미 모두에 긴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검찰은 향후 추가 자금흐름 자료 확보 여부에 따라 수사 계속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