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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의료기기 교육 차단”…의협, 강의 금지 공문 파장

신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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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영상장비와 레이저 등 현대 의료기기의 사용권을 둘러싼 양의계와 한의계의 갈등이 기술 교육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가 산하 단체에 한의사 대상 연수강좌와 한의과대학 출강을 중단해 달라는 공문을 발송하면서, 그동안 의료기기 사용과 관련해 잠복해 있던 직역 갈등이 규제와 교육, 산업 전반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특히 엑스레이와 초음파, 고주파 레이저 등 IT 기반 의료장비의 활용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지에 따라 향후 의료기기 시장의 교육 구조와 책임 체계가 달라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산하 단체에 보낸 안내 공문에서 한의계를 대상으로 한 연수강좌 개설과 한의과대학 출강을 제한해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의협은 한의계의 의과 의료기기 및 의과 의약품 사용이 늘고 있다며, 특히 한의사가 엑스레이와 초음파 같은 영상의학적 진단 기기를 직접 사용하거나 이를 홍보하는 사례가 다수 확인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의협은 이 같은 행위를 한방의 의과영역 침범으로 규정하고, 한의사 대상 강의가 결과적으로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정당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영상진단장비와 레이저, 초음파 장비는 IT 융합 기술이 집약된 대표적 의료기기다. 고해상도 디지털 센서와 영상 처리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미세 병변을 검출하고, 초음파 에너지를 세밀히 조절해 조직을 선택적으로 자극하거나 절제한다. 의료 현장에서는 사용자의 숙련도와 판독 능력이 진단 정확도와 안전성에 직결되며, 이 때문에 기기 교육 과정에서 어느 직역이 어떤 수준까지 다룰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이 중요하다. 의협은 이 지점을 강조하며, 한의대 커리큘럼에 영상의학 교육과정이 필수과목으로 편성될 경우 한의사에게 충분한 안전교육이 이뤄졌다는 근거로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번 공문 배경에는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와 의약품 사용을 둘러싼 수사와 판단 사례도 자리하고 있다. 앞서 한의사 A씨는 내원 환자에게 리도카인 성분의 국소마취제 크림을 도포한 뒤 피부 미용 의료기기를 이용해 시술했다가, 한의사 면허 외 의료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 혐의로 고발됐다. 그러나 담당 경찰서는 이 국소마취제가 일반의약품으로, 일반인도 의사 처방 없이 구입해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전성이 확보돼 있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해당 행위만을 근거로 면허 범위를 벗어난 의료행위로 보기는 어렵다며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초음파와 고주파 레이저를 한의학적 피부 치료에 활용하는 행위에 대한 판단도 비슷했다. 수사기관은 현행 의료법이 한의과 전공과목 중 한방 피부과 영역을 인정하고 있으며, 의료법상 한의사도 수술과 수혈, 전신마취 등 침습적 치료를 시행할 수 있는 것을 전제로 제도가 설계돼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러한 법령 구조를 감안하면, 해당 기기 사용을 일괄적으로 의료법 위반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해석이 나온 것이다. 이 결정은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범위를 둘러싼 해석을 더 복잡하게 만들며, 양 직역의 기술 교육과 책임 범위를 둘러싼 논쟁을 자극하고 있다.  

 

법 해석과 현장 관행 사이의 간극이 커지자 의협은 국회 앞에서 의료법 개정안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와 규탄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가 주도하는 범의료계 국민건강보호 대책특별위원회는 산하에 한방 엑스레이 저지위원회를 따로 꾸려 한의계와 국회의 입법 움직임을 모니터링 중이다. 의협은 일부 한의대 부속 한방병원에 소속된 의사가 한의대에 출강하며 영상의학 관련 교육이 활성화되고 있고, 커리큘럼 차원에서 영상의학 교육을 필수과목으로 편성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됐다고 주장한다.  

 

의협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의사가 한의대 학생이나 한의사를 대상으로 학문적 차원에서 강의를 진행하더라도, 이후 한의계가 이를 근거로 의과 의료기기와 의약품 사용 권한을 주장하는 사례가 반복돼 왔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첨단 영상장비와 레이저 장비는 사용법 교육과 판독 교육이 결합돼야 해, 어느 수준의 교육을 받았는지가 의료 분쟁과 법적 책임 판단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의협은 한의대 출강 자체가 한의사의 기기 사용에 대한 사회적 정당성 부여로 해석될 수 있고, 궁극적으로 한의계의 의과영역 침탈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쓰일 소지가 크다고 경고했다.  

 

반면 대한한의사협회 측은 의료기기 교육과 사용을 둘러싼 의협의 입장에 강한 반발을 나타내고 있다. 김석희 한의사협회 홍보이사는 한의사도 엑스레이와 레이저 등 현대 진단 및 치료기기에 대해 자체적으로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으며, 이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의협이 한의사의 기기 접근을 막으려는 행보를 직역 보호를 위한 밥그릇 지키기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의계는 진단기기와 치료기기 자체는 중립적 기술이며, 한의학적 진단 체계와 치료 원리에 맞춰 활용한다면 제한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의료 IT 장비 산업계 입장에서는 이번 논쟁이 잠재적 수요와 교육 시장을 둘로 쪼개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초음파와 레이저, X선 장비 제조사와 교육 플랫폼 업체들은 사실상 의사 중심의 교육 생태계를 기반으로 사업을 전개해 왔다. 한의사에게까지 사용자군이 확대될 경우 시장 규모가 커질 수 있지만, 동시에 책임성과 안전성 기준을 어떻게 설계할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다. 특히 고위험 시술과 연결될 수 있는 장비일수록 사용자의 면허 범위와 교육 수준을 규제기관이 어떻게 인정할지가 시장 확산의 관건이 된다.  

 

정책 측면에서 보면, 의료법과 관련 하위법령은 직역별 면허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은 채 포괄적으로 규정한 부분이 많아 해석 논란이 반복되는 구조다. 의료기기 사용 자격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규정이 부족해, 수사기관과 법원이 개별 사건마다 동시대의 의료 관행과 안전성 기준을 참고해 판단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같은 유형의 기기 사용이라도 판결이나 불송치 결정이 달라질 수 있고, 양 직역은 각각 유리한 해석을 근거로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첨단 의료기기가 빠르게 고도화되는 만큼, 직역 간 갈등만으로 접근을 제한하기보다는 위험도와 사용 난이도에 따라 세분화된 자격과 교육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의료정책 연구자는 영상진단 장비와 고출력 레이저 장비에 대해 직역 구분이 아니라 교육 이수와 인증 중심의 규제 틀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동시에 환자 보호를 위한 책임 체계와 보험·분쟁 조정 절차를 더 촘촘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재로서는 대한의사협회가 한의사 대상 강의를 사실상 차단하며 갈등 수위를 높이고 있어, 법과 제도를 통한 해석 정리 없이는 논쟁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의료계 전반에서는 IT 기반 의료기기가 일상 진료로 깊숙이 들어오는 속도보다, 직역 간 역할과 책임을 조정하는 제도 개편이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계와 규제기관, 직역 단체가 환자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기술과 교육, 면허 체계 사이의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지 의료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신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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