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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런 문화유산 콜라보…데브시스터즈, 글로벌 캐릭터 IP 승부수

강다은 기자
입력

게임 기반 캐릭터가 국가 유산과 결합해 새로운 문화 IP 전략의 시험무대에 올랐다. 데브시스터즈가 대표 게임 쿠키런을 앞세워 대한제국 황실 유산을 재해석하는 전시에 참여하며, 장기 프랜차이즈 IP로의 도약을 노린다. 한국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게임사 주도의 문화 유산 협업이 국내외 IP 경쟁 구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관심이 쏠린다.

 

조길현 데브시스터즈 대표는 8일 서울 중구 덕수궁 돈덕전에서 열린 쿠키런 사라진 국가유산을 찾아서 특별전 기자간담회에서 쿠키런이 한국을 대표하는 캐릭터 IP 자산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포켓몬, 디즈니 등 글로벌 캐릭터에 비해 한국발 상징 IP가 부족한 현실을 언급하며, 쿠키런이 모든 세대를 아우르고 과거 유산과 미래 발전을 연결하는 장기 브랜드로 성장하겠다는 포부를 내놨다.

이번 전시는 국가유산청과 데브시스터즈가 공동 개최하는 제2회 국가유산의 날 기념 특별전으로, 9일부터 내년 3월 1일까지 덕수궁 일대에서 진행된다. 정문인 대한문 안쪽의 덕수궁 문자도부터 1층과 2층 전관 약 250평 규모의 돈덕전까지를 활용해 대한제국 황실 유산과 쿠키런 IP를 결합한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인다. 게임 속 캐릭터를 실제 유물, 미디어아트와 한 공간에 배치한 점에서 기존 게임 IP 전시와 차별된 시도가 돋보인다는 평가다.

 

전시 구성은 대한제국 황실의 실제 유물 40여 점과 쿠키런 세계관에 기반한 상상화, 무형유산 장인들과의 협업 작품, 미디어아트 등을 결합한 형태다. 데브시스터즈 아티스트가 참여한 상상화 3점과 국가무형유산 전승 취약 종목 보유자들과 함께 만든 협업 작품 4점이 대표 사례다. 특히 대한제국의 이상이 담긴 상상 속 서울을 미디어아트로 구현해 관람객이 과거와 가상의 미래 도시를 동시에 체험하도록 기획했다.

 

기술적 관점에서 보면 이번 전시는 단순한 캐릭터 전시가 아니라 디지털 아트와 실물 유산을 결합한 혼합형 콘텐츠 플랫폼으로 볼 수 있다. 쿠키런 IP는 2D 일러스트와 게임 애니메이션으로 축적된 시각 자산을 바탕으로, 고해상도 미디어월, 프로젝션 맵핑 등 디지털 전시 기술과 결합했다. 대한제국 시대 서울을 가상으로 복원한 상상화는 실제 사료와 고지도, 사진 자료 등을 참고해 건축 구조와 도시 배치를 재구성한 뒤, 이를 일러스트와 미디어아트로 재가공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번 전시의 핵심 기술적 시도 중 하나는 유실된 대한국새의 복원이다. 데브시스터즈는 문헌 자료와 남아 있는 사진, 당시 도안 기록을 바탕으로 대한국새를 국내 최초로 디지털 복원한 뒤 실물로 제작해 기증했다. 디지털 모델링과 3D 데이터 기반 복원 기법을 캐릭터 IP 기업이 주도해 적용한 사례로, 향후 국가유산 복원 프로젝트에서 민간 디지털 콘텐츠 기업의 역할 확대를 예고하는 지점으로 해석된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로 소개된 작품 쿠키런 상상화 3 꺼지지 않을 희망의 빛은 약 20명의 아티스트가 협업한 대형 상상화다. 일제강점기를 겪지 않고 근대화와 부국강병을 이룬 가상의 서울을 설정하고, 훼손됐던 사대문과 사소문을 모두 복원한 모습, 현재는 사라진 건축물까지 포함해 가상 도시를 완성했다. 역사 기반 가상 시나리오에 캐릭터 IP를 입힌 이 방식은,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이미 검증된 마블, 디즈니식 세계관 확장 전략과 닮아 있다.

 

조 대표는 쿠키런 스토리의 출발점을 마녀의 오븐에서 탈출한 용감한 쿠키의 첫 발걸음이라고 설명했다. 운명으로 정해진 삶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를 핵심 메시지로 제시하며, 열강의 침탈 속에서 자주 국가를 세우려 했던 대한제국의 염원과 서사적 공명 관계를 강조했다. 캐릭터 내러티브를 역사적 사건과 연결해 브랜드 의미를 확장하려는 전형적인 IP 브랜딩 전략으로 해석된다.

 

시장 측면에서 쿠키런은 이미 글로벌 이용자 기반을 확보한 IP다. 데브시스터즈에 따르면 쿠키런 시리즈의 전 세계 누적 이용자는 최근 3억 명을 돌파했다. 특히 모바일 게임 쿠키런 킹덤은 유튜브가 발표한 2025년 트렌드 리포트에서 미국 지역 톱10에 이름을 올리며 북미 시장 인지도를 확보했다. 게임 이용자 기반을 토대로 애니메이션, 굿즈, 전시, 콜라보 등으로 수익원을 다각화하는 과정에서, 국가유산 컬래버레이션은 브랜드 신뢰도와 문화적 위상을 높이는 포지셔닝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글로벌 캐릭터 IP 시장에서는 디즈니, 포켓몬, 마블, 해리포터 등을 중심으로 장기 프랜차이즈 구조가 이미 공고하게 형성돼 있다. 이들 IP는 수십 년간 게임, 영화, 드라마, 테마파크, 교육 콘텐츠까지 확장하며 매출원을 분산했고, 각국의 역사·전통·관광 자원과 연계해 새로운 경험형 콘텐츠를 만들어왔다. 데브시스터즈가 쿠키런을 한국형 장기 IP로 키우겠다는 전략은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발 캐릭터가 문화유산, 관광, 교육과 결합해 경쟁하는 구도를 염두에 둔 행보로 보인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는 게임사가 국가유산청과 직접 협업해 전시를 기획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문화재청, 지자체가 주도하고 게임사는 협찬이나 단발성 콜라보에 참여하는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반면 데브시스터즈는 초기 기획 단계부터 서사 설계, 비주얼 개발에 참여해 IP 중심의 전시를 만든 만큼, 향후 다른 게임사와 문화기관 간 협력 모델의 레퍼런스로 작용할 여지도 있다.

 

조 대표는 캐릭터 IP 자체를 하나의 유산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지금, 이야기를 미래까지 연결시키는 캐릭터 IP도 장기적으로 축적되는 문화 자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10년, 20년, 30년, 100년 이상 지속 가능한 IP를 만들려면 이용자와 팬, 공공기관이 함께 관심을 갖고 발전시키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데브시스터즈의 사업 전략도 게임 중심 구조에서 IP 사업 전반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는 모습이다. 조 대표는 데브시스터즈가 게임사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문화가 되는 IP를 목표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게임 신작뿐 아니라 애니메이션, 전시, 라이선스 굿즈, 교육, 오프라인 체험 공간 등 캐릭터 IP로 가능한 거의 모든 사업 분야에 투자하며 확장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덕수궁 전시는 이런 전략의 출발점에 가깝다. 조 대표는 덕수궁 전시를 시작으로 다양한 경험과 사업이 이어질 예정이라고 예고했다. 국가무형유산 장인들과의 아트 콜라보 시리즈 10개를 순차적으로 선보인 뒤, 내년에 이를 한데 모은 총 전시를 추진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국가유산청과 이미 업무협약을 체결한 만큼, 향후 다른 유형의 국가유산과의 결합, 교육 프로그램, 해외 전시 연계 등으로 확장될 수 있는 여지도 열어둔 상태다.

 

정책과 제도 면에서는 이번 협업이 디지털 콘텐츠 기업이 공공 문화유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델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국가유산 디지털 복원, 메타버스 전시, 교육용 인터랙티브 콘텐츠 등은 향후 공공조달과 민간 투자 모두에서 시장이 커질 수 있는 영역으로 꼽힌다. 다만 공공성과 상업성의 균형, 유산의 역사적 해석과 캐릭터 상업 이미지 간 조화는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한 영역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쿠키런의 이번 행보를 한국 게임 IP의 세대 확장 전략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주요 모바일 게임 이용층을 넘어, 덕수궁을 찾는 가족 단위 관람객, 해외 관광객, 교육 기관 등으로 접점을 넓히면서 IP 수명 주기를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유산이라는 공공 자산과의 협업은 캐릭터에 교육적·문화적 가치를 덧입혀 브랜드 이미지를 고급화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이런 시도가 한국형 IP 생태계 확대에 긍정적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게임에서 출발한 캐릭터가 문화유산, 예술, 교육, 관광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자리 잡을 경우, 개별 게임의 흥행 성과를 넘어서는 국가 단위 IP 경쟁력으로 연결될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산업계는 쿠키런이 이번 전시를 발판으로 실질적인 글로벌 문화 IP로 안착할 수 있을지, 그리고 다른 국내 게임사들이 뒤를 이을지 주시하고 있다.

강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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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브시스터즈#쿠키런#조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