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기침 국제표준 만든다…서울아산, 질병코드 정립 주도
만성기침을 독립 질환으로 규정하고 국제 표준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가속하는 가운데 국내 의료진이 글로벌 컨센서스 작업의 전면에 섰다. 만성기침은 그동안 천식이나 알레르기비염의 부수 증상으로만 취급돼 별도 질병코드 없이 관리돼 왔지만, 최근 신경생물학과 신약 개발이 맞물리며 독립 질환으로 재분류하려는 논의가 호흡기 분야 전반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향후 질병분류 체계와 보험·연구 인프라까지 영향을 줄 개념 정립 경쟁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송우정 알레르기내과 교수가 유럽호흡기학회에서 새로 발족한 만성기침국제전문가위원회 의장으로 선임됐다고 5일 밝혔다. 위원회 공식 명칭은 만성기침 전문가 합의문 태스크포스이며 활동 기간은 2027년 7월까지다. 유럽호흡기학회는 1990년 설립된 유럽 최대 호흡기 학술 단체로 160여 개국 3만 5천여 명의 전문가가 참여해 가이드라인 개정과 질환 정의 표준화 작업 등을 주도해 왔다.

만성기침은 통상 8주 이상 지속되는 기침을 말하지만, 실제 진료 현장에서는 원인 질환에 따라 다른 코드로 청구되거나 증상 위주로만 기록되는 경우가 많다. 송 교수는 2019년 유럽호흡기학회 만성기침 가이드라인 개정에도 참여해 진단 알고리즘과 치료 전략 정립에 핵심 역할을 수행했으며, 이후 난치성 만성기침 환자 코호트 구축, 기침 반사 경로 연구 등 국제 학술지에 다수의 연구를 발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태스크포스의 핵심 과제는 만성기침을 독립 질환으로 볼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에 맞는 질병 정의와 분류 체계를 만드는 데 있다. 특히 기존에는 천식, 알레르기비염, 위식도역류질환 등 기저 질환이 있으면 만성기침을 2차 증상으로만 기재했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기침 경로의 과민성 증가와 중추 신경계 조절 이상이 독자적인 병태생리로 작동한다는 결과들이 보고되고 있다. 신경생물학 연구와 이 경로를 표적으로 하는 신약 후보까지 등장하면서 질환 개념을 새로 짜야 한다는 요구가 커진 상황이다.
위원회는 향후 2년간 전 세계 호흡기·알레르기·소화기·신경과 전문의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협력해 메타분석과 체계적 문헌고찰을 진행하고, 실제 임상 사례를 광범위하게 수집할 예정이다. 이를 바탕으로 만성기침의 진단 기준, 중증도 분류, 동반 질환 표기 방식 등을 포함한 합의문을 마련하고, 임상 현장에서 바로 활용 가능한 실무 권고안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다. 합의문에는 향후 국제질병분류에 반영할 수 있는 질병명과 코드 체계 초안도 포함될 전망이다.
현재 만성기침은 국제질병분류에서 명확한 단일 코드 없이 다른 질환 코드에 묶여 기록되는 경우가 많아 환자 관리에 여러 제약을 만들어 왔다. 진료 현장에서는 환자가 수년간 여러 진료과를 전전해도 병명이 달라지거나 누적 기록이 파편화돼 경과 추적이 어렵다는 지적이 반복돼 왔다. 제약사 입장에서도 독립 코드가 없으면 환자군 정의와 시장 규모 산정이 불명확해 신약 개발 투자와 임상시험 설계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반면 만성기침이 독립 질환으로 코드화되면 임상 연구 설계가 정교해지고, 환자 데이터 축적과 실세계 근거 연구가 용이해질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환자 입장에서도 보험 청구 체계가 정비되면 진단과 치료 접근성이 높아질 여지가 있다. 호흡기질환용 디지털 치료제나 기침 모니터링 웨어러블 기기 등 IT 기반 헬스케어 솔루션을 개발하는 기업들 역시 표준화된 정의와 코드 체계를 통해 알고리즘 고도화와 임상 검증을 체계화할 수 있다.
유럽호흡기학회가 이번 작업을 정식 태스크포스 형태로 추진하면서, 향후 세계보건기구의 국제질병분류 개정이나 각국 건강보험 급여 기준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난치성 만성기침을 대상으로 하는 신약 후보들이 후기 임상 단계에 진입한 상태라, 질환 정의와 환자 분류 기준이 상업적 허가와 급여 결정 과정에서 핵심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송우정 교수는 만성기침이 오랫동안 다른 질환에 따른 2차 증상으로만 간주돼 왔다며, 최근 신경생물학과 신약 개발의 진전으로 난치성 만성기침을 독립 질환으로 다뤄야 한다는 국제 논의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명확한 질병 코드 부재와 일관되지 않은 질병명 표기가 환자와 의료진 간 의사소통 혼선, 치료 경과 추적의 한계로 이어져 왔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학회 회원들과 활발한 교류를 통해 국제적으로 통용 가능한 표준 지표를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성기침 환자들이 양질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합의문과 권고안이 실제 진료와 연구 환경에서 작동하는지 반복 검증하겠다고 덧붙였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이번 국제표준 작업이 각국 진료지침과 보험제도, 그리고 신약 및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 상용화까지 어떤 변화를 촉발할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