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주기 간호인력 플랫폼 도약…센터 10년, 보건안보 축으로
간호 인력 지원 체계가 취업 알선 중심에서 벗어나 생애주기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 플랫폼으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간호인력지원센터 설립 10주년을 맞아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센터를 간호사의 교육, 경력, 근속, 복지를 아우르는 국가 보건안보 인프라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제언이 쏟아졌다. 인구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로 의료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간호 인력 정책을 단일 직종의 근로 문제를 넘어 의료체계 지속가능성과 국가 보건안보를 좌우하는 핵심 과제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힘을 얻는 분위기다.
간호인력지원센터는 2015년 간호인력취업교육센터로 출범해 경력단절 간호사의 재취업을 중점 지원해왔다. 지난 10년간 1만1159명이 직무 재교육을 받았고, 이 가운데 6856명이 재취업에 성공해 61점4퍼센트의 취업률을 기록했다. 간호 간병통합서비스 확대기에 병원 직무교육으로 1만423명의 역량 강화를 지원하는 등 의료현장 수요 변화에 맞춘 인력 재훈련 기능도 수행해왔다.

2023년 간호법 제정으로 센터가 간호인력지원센터라는 법정기구로 격상되면서 역할은 재취업 지원을 넘어 장기근속 지원, 전문성 향상, 경력단절 예방, 직무역량 체계 구축 등 간호 인력 생애주기 전체로 확장되는 추세다. 간호사가 신규 입직에서 중견, 숙련 단계에 이르는 전 경로에서 교육과 일자리, 근무환경을 함께 설계하는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함옥경 대한간호협회 연구책임자는 센터의 기능 재편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그는 센터가 단순한 취업·교육 지원을 넘어 간호사의 경력 설계와 전문성 개발, 장기근속 전략을 총괄하는 통합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현재 10개인 권역센터를 16개로 확대해 지역 기반 지원을 촘촘히 하고, 신규 간호사의 임상 적응을 돕는 간호사 레지던시 프로그램 NRP 시범 도입, 분절된 교육과정을 통합하는 교육체계 개편을 제안했다. 특히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신규 간호사의 초기 이직을 줄이고, 병원 정보시스템과 디지털 의료기기 사용 역량을 체계적으로 높이는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확산과도 맞물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동시장 측면에서는 구조적 문제 진단이 이뤄졌다. 박영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센터장은 한국 간호 인력의 임금과 노동시간 현황을 제시하며 임금 체계의 왜곡을 지적했다. 2024년 기준 전일제 간호사의 월평균 임금은 355만원,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41점6시간으로 나타났다. 그는 초임 수준이 과도하게 낮고 근속에 따른 임금 상승이 더딘 구조가 장기근속을 가로막고 있다고 분석했다. 숙련 간호사 이탈이 심해지는 상황은 중환자실, 응급실 등 고난도 영역의 인력 공백으로 이어져 병원 운영과 환자 안전에 직접적인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박 센터장은 간호사 인력 문제를 단순한 인력 부족이 아니라 고용 구조, 노동조건, 복지, 지역의료 격차가 얽힌 복합 문제로 규정하며 간호인력지원센터가 국가 차원의 정책 허브로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센터가 인력 수요조사, 데이터 분석, 교육과 경력 설계, 지역 배치 정책까지 아우르는 컨트롤타워를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책 측면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은 간호사 인력 지원체계 강화를 공통 의제로 제시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열악한 근로환경과 높은 이직률, 지역 간 인력 격차를 해결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남인순 의원은 간호사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어떤 제도도 현장에서 작동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서영석 의원도 간호사 근무 여건과 인력 불균형 문제가 국가 보건안보와 직결된 핵심 과제라고 평가했다.
여당 측에서도 플랫폼 전환 방향에 공감을 나타냈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센터가 생애주기 전반을 지원하는 국가적 플랫폼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밝혔고, 김예지 의원은 중앙센터와 권역센터가 지역 특성에 맞는 맞춤형 지원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종덕 진보당 의원 역시 지난 10년 성과를 토대로 센터가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는 거버넌스 플랫폼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패널 토론에서는 의료현장과 지역사회 간호 현장의 요구가 구체적으로 제기됐다. 정혜경 녹색병원 간호부장은 중소병원 간호사의 어려움을 정부와 센터가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형병원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 인력 수급난이 심각한 중소병원에 대한 교육, 근무환경 개선, 인력 배치 지원이 결합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역 기반 돌봄 현장을 대표해 참석한 김수진 대전간호요양센터 대표는 지역사회 간호의 구조적 문제 해소와 장기근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인력 수급, 인력 양성, 근무환경 개선을 세 축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고령 환자 관리와 재택 돌봄, 장기요양시설 등에서 간호 인력의 안정적 확보가 원격 모니터링, 디지털 헬스케어 도입과 같은 융합 서비스의 토대가 되는 만큼, 센터가 지역 돌봄 네트워크 설계에도 적극 관여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병원 교육 현장에서는 구체적인 정책 방향도 나왔다. 박은정 성애병원 수간호사는 중소병원까지 포괄하는 표준 교육체계 구축과 근로환경 및 정서적 안전 지원 강화, 숙련 간호사를 위한 단계별 역량 개발 체계 마련을 과제로 제시했다. 업무 부담과 감정노동이 큰 간호 직종의 특성을 고려할 때 심리 지원과 번아웃 예방 프로그램이 통합 교육체계 안에 포함돼야 한다는 요구다.
노동정책 연구자들은 거버넌스 재편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주호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상임연구위원은 센터가 지역 기반을 넘어 현장 변화를 이끄는 플랫폼이 되려면 노조와 시민단체 등과 시민사회 거버넌스를 우선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노동기구 ILO가 제시한 양질의 일자리 개념을 기준으로 임금, 고용안정, 안전한 근무환경, 경력 개발을 포괄하는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제언도 내놨다.
정부 역시 센터 역할 전환을 예고했다. 이정은 보건복지부 간호정책과 사무관은 센터의 역할을 기존 취업 중심에서 지원과 교육 중심으로 전환하고, 간호사 관련 현안을 장기적 관점에서 검토해 내년도 계획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중장기적으로는 간호 인력 데이터 기반 정책 설계, 교육 표준화, 지역 간 인력 불균형 완화를 위한 재정 지원 방향 등이 논의될 전망이다.
대한간호협회는 간호인력지원센터의 위상 강화를 통해 국가 단위 협력 거버넌스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신경림 대한간호협회 회장은 센터가 국가, 지자체, 의료기관, 학계를 연결하는 협력적 거버넌스의 허브이자 실행 플랫폼으로 자리 잡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모든 간호사의 성장을 지원하고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국가 인프라로 발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토론회는 간호사 인력 정책이 특정 직종의 복지 개선을 넘어 국민 건강권, 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 국가 보건안보와 직결된 문제라는 점을 재확인하는 자리로 마무리됐다. 산업계와 의료계, 정책 당국은 생애주기 통합 지원 플랫폼으로의 전환이 실제 현장에서 작동해 디지털 헬스케어와 지역 돌봄 체계와 연계될 수 있을지를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