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김 수출 위생관리 강화…식약처·전남도 MOU, K푸드 글로벌 공략 속도
김장철과 김 수확기를 맞아 정부와 지자체가 단순처리 농수산물 위생관리 고도화에 나섰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전라남도는 21일 단순처리 농수산물 안전관리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생산 현장에 자율점검 체계를 도입하기로 했다. 김과 김치가 국제 식품규격 논의에서 비중이 커지는 가운데, 국내 최대 생산기지인 전남을 중심으로 위생 수준을 끌어올려 K푸드 수출 경쟁력을 뒷받침하겠다는 구상으로 해석된다.
양 기관에 따르면 전국 단순처리 농수산물 생산업체 3325개소 가운데 1326개소, 약 40퍼센트가 전라남도에 몰려 있다. 단순처리 농수산물은 식품첨가물이나 다른 원료를 쓰지 않고 절단, 탈피, 건조, 세척 등 최소한의 공정만 거친 제품을 가리킨다. 마른김과 마른미역, 절임배추처럼 원형을 알아볼 수 있는 형태가 대표적이다.

이들 제품은 식품제조 가공업 영업등록 의무 대상이 아니어서 그동안 제도권 위생관리의 사각지대로 지적돼 왔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단순처리 농수산물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업무협약을 맺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생산 단계에서부터 공정별 기준을 명확히 해 미생물 오염이나 이물 혼입을 줄이고, 수출국 규제 변화에도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업무협약의 핵심은 단순처리 농수산물 생산업체를 대상으로 하는 위생 자율점검 시범사업 도입이다. 식약처와 전남도는 탈수, 건조, 절임, 세척, 저장 등 공정별로 중점 관리항목을 제시하고, 전 사업장이 공통으로 지켜야 할 위생 규칙을 매뉴얼 형태로 정리한다. 이를 통해 생산자 스스로 작업장 청결, 원수 관리, 종업원 위생교육 등 핵심 지표를 점검하도록 유도한다.
특히 양 기관은 자율점검이 단순한 설문 수준에 머물지 않도록 현장 밀착형 지침을 담은 위생관리 매뉴얼을 공동 제작한다. 공정별 온도와 습도 관리, 해조류와 채소 세척 시 수질 기준, 건조 설비 유지보수 방식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참여업체에는 수질 검사 비용 지원 등 인센티브도 제공해 소규모 영세 사업장의 비용 부담을 줄이고, 위생 설비 투자와 검사 참여를 촉진한다는 방침이다.
위생관리 교육과 홍보도 강화된다. 식약처와 전남도는 생산자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공동 기획해 HACCP과 유사한 기본 위생원칙, 원료 입고부터 출고까지 전 과정 관리법을 전수할 계획이다. 더불어 민간 검사기관, 품질인증기관과의 협력 체계를 구축해 자율점검 결과를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고위험 사업장에 대해서는 컨설팅을 연계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국제 식품규격 논의에서 K푸드의 위상 변화도 이번 협약 배경으로 작용했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제48차 국제식품규격위원회 총회에서 김치 세계규격에 한국 용어가 반영되고, 김의 세계 규격화 신규 작업이 승인된 점을 언급하며 글로벌 표준 경쟁에서 품질과 위생 수준이 핵심 변수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 처장은 이번 협약이 국내 농수산물 위생 안전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김과 김치를 포함한 농수산물 수출 확대를 위해 국제 규격과 조화를 이루는 위생관리 체계가 필수라며, 생산 현장부터 표준화된 관리가 이뤄져야 해외 유통망과 대형 유통사의 요구에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라남도의 역할도 무게감이 커지고 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전남이 전국 김 생산의 80퍼센트 이상, 수출의 36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산업은 원초 생산에서 가공, 수출까지 단계별로 부가가치가 높아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크다. 특히 미국, 유럽, 동남아 시장에서 김과 김치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위생과 안전성은 수출 유지와 확대를 좌우하는 기준으로 부상했다.
이번 협약은 단순처리 농수산물을 포함한 K푸드 수출의 구조적 리스크를 줄이는 시도로도 평가된다. 주요 수입국은 잔류 농약, 중금속, 미생물 기준 등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추세다. 생산국 현장 관리 수준이 국제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통관 지연이나 반송, 특정 지역 제품의 수입 제한 조치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체계적인 자율점검과 교육이 안착하면 이러한 리스크를 사전에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한 단순처리 농수산물은 김장용 절임배추처럼 국내 계절성 소비가 큰 품목이 많아, 지역 내 식중독 예방과 직결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저장과 운송 과정에서 온도 관리가 미흡하면 병원성 미생물이 증식할 수 있어, 공정별 위생 매뉴얼과 정기적인 수질 검사가 안전망 역할을 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모델이 다른 지자체와 품목으로 확산될 가능성에도 주목한다. 특정 지역에 단순처리 업체가 집적된 구조를 활용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매뉴얼을 만들고, 민간기관과 연계해 자율점검을 제도화하는 방식은 다른 수산물, 과일 건조품, 절임류 등으로 확장하기 용이하다는 평가다.
식약처와 전남도는 시범사업 성과를 바탕으로 참여 업체 규모를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교육과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세분화할 계획이다. 산업계에서는 이번 협약이 단순 행정협력에 그칠지, 실제 생산 현장의 위생 수준을 끌어올리는 실질적 제도로 자리 잡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