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소외론 고개 들었다”…민주당, 1인1표제 두고 지구당 부활·지역보완 카드 검토
대의원 표와 권리당원 표의 가치를 똑같이 맞추려는 1인1표제를 둘러싸고 더불어민주당 안에서 영남 소외론과 대의원 반발이 맞부딪쳤다. 당 지도부가 정당성 강화를 위해 밀어붙이는 개편안이 전국정당이라는 정체성과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당내 논의가 제도 보완 국면으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은 27일 오후 1인1표제 추진에 따른 파장을 점검하기 위해 대의원 역할 재정립을 위한 태스크포스 1차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서 태스크포스는 영남·강원도 등 취약 지역 보완, 지역 균형 확보, 지구당 부활 방안 등을 집중 논의했다고 부단장인 이해식 의원이 전했다.

정청래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한 현 지도부는 대의원과 권리당원에게 동등한 표를 주는 1인1표제를 통해 당내 민주성을 높이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의원제 무력화에 따른 기득권층 반발과 함께, 당원 비중이 낮은 영남권 당원들이 의사 결정 구조에서 더 소외될 수 있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해식 의원은 브리핑에서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에 대한 꾸준한 요구가 있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 때부터 당을 지켜왔던 분들이 대의원 활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해 배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1인1표제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오랜 기간 당을 지탱해온 대의원들의 정치적 역할을 일정 부분 보장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영남·강원도 등 취약지역에 대한 보완과 지역 균형 논의는 더불어민주당이 내세워온 전국정당 기조와 직결된다. 한 초선 의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여성, 청년, 대학생, 노동계를 중심으로 한 대의원 표 가치가 떨어지고, 취약 지역이 소외된다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하는 전국정당이라는 DJ 때부터의 핵심 가치와 완전히 동떨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날 태스크포스 회의와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는 비슷한 취지의 우려가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1인1표제가 대의원 구조를 흔드는 만큼, 영남·강원 등 취약지역에서 조직을 유지할 수단을 함께 제시하지 않으면 당의 외연 확장 전략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태스크포스에서는 지역 풀뿌리 정치 기반인 지구당 부활 문제도 본격 거론됐다. 지구당은 2004년 정당법 개정으로 폐지됐지만, 이후 정치개혁 논의에서 꾸준히 재도입 요구가 제기돼 왔다. 특히 영남 지역 당원과 지방 조직은 지역에서의 정치 활동을 제약하는 핵심 요인으로 지구당 폐지를 지목해 왔다.
이해식 의원은 “지구당 부활 없인 영남권 지역위원장들의 지역위 활동에 애로가 많아 꼭 법제화돼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지구당 부활이 1인1표제 정착의 전제조건이 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1인1표제가 통과될 경우, 지역 기반이 취약한 곳일수록 지구당과 같은 조직 기반을 통해 당원 참여와 대표성을 높여야 한다는 논리다.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도 지구당 부활에 상당수 의원들이 공감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당법 개정을 통해 지구당 제도를 되살릴 경우 어느 상임위원회가 논의를 주도할지에 대한 의견도 오갔다.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처리해 속도를 내자는 의견과,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여야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섰다.
한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정개특위는 여야 동수로 구성되니 논의가 늦어질 수도 있어서 행안위에서라도 지구당 부활을 위한 정당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일단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해 법안을 처리한 뒤 추가적인 정치개혁 논의는 정개특위에서 이어갈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지구당 부활 방식과 관련해선 규제 완화와 부작용 방지 사이에서 절충을 찾는 방안이 논의됐다. 당내에선 지구당을 통해 당원 모임을 합법적으로 허용하되, 정치자금 모금에는 지금과 같은 수준의 제한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의원총회에서 제기됐다. 과거 지구당이 정치자금 창구로 악용됐던 비판을 의식한 조정안이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1인1표제에 대한 당내 이견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구상이다. 당은 오는 1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1인1표제를 주제로 한 생중계 토론회를 열어 찬반 논거를 폭넓게 수렴할 예정이다. 토론회에는 당내 계파를 가리지 않고 찬성·유보·보완론을 가진 인사들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당 지도부는 토론회 이후 몇 차례 추가 회의를 거쳐 내달 5일 중앙위원회에서 1인1표제 안건을 처리하는 방침을 세웠다. 절차상으로는 우선 대의원·권리당원 동등 표결 구조를 당헌·당규에 반영한 뒤, 취약지역 보완과 지구당 부활 등 세부 방안을 별도 개정안으로 이어가겠다는 구상이다.
이해식 의원은 “1인1표제 안건 자체에 반대하는 이는 많지 않으니, 관련 당헌·당규 개정안을 먼저 통과한 뒤 보완 방안에 대한 작업을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방선거 관련 내용도 추가 의견 수렴 과정에서 나올 수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방선거 공천 방식과 지역대표성 확보 장치를 함께 손보는 방안도 논의선상에 올릴 수 있다는 의미다.
당내에서는 1인1표제가 통과되면 권리당원 중심 의사 결정 구조가 강화돼 향후 공천과 지도부 선출에서 대중성 경쟁이 심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동시에 영남·강원 등 비전통적 지지 기반을 어떻게 지키고 넓혀갈지에 따라 총선·지방선거 전략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뒤따른다.
더불어민주당은 1인1표제 도입을 계기로 당내 민주주의 심화를 꾀하는 동시에, 지구당 부활과 취약지역 보완책을 통해 전국정당 기조를 재확인하겠다는 입장이다. 내달 중앙위원회와 국회 정당법 논의가 맞물리면, 정치권은 당내 민주주의와 지역대표성 개편을 둘러싸고 다시 한 번 치열한 공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