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소버린 AI 전면에"…네이버 Kmed.ai, 한국형 메디컬 AGI 겨냥
한국 의료 환경을 정밀하게 반영한 의료 특화 인공지능이 등장하며 의료 AI 경쟁 구도가 새 국면에 들어가고 있다. 네이버와 서울대병원이 공동 개발한 한국어 기반 의료 특화 거대언어모델은 국내 의료법과 진료 가이드라인, 임상 현장 지식을 폭넓게 학습해 의료진 업무를 직접 보조하는 수준을 목표로 삼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공개가 한국형 의료 소버린 AI, 특히 메디컬 AGI를 둘러싼 경쟁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네이버는 2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메디컬 범용의료인공지능 행사에서 서울대병원과 공동 개발한 한국어 의료 특화 LLM Kmed.ai를 공개했다고 밝혔다. 이 모델은 서울대 의학지식 문답세트인 SNUH ClinicalQA, 국내 의료법, 주요 진료과별 진료지침과 가이드라인, 병원 현장 문서 등으로 학습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직접 피드백을 제공해 한국 의료제도와 진료 관행, 법규의 맥락을 반영한 것이 특징이다.

Kmed.ai는 올해 의사국가고시에서 평균 96.4점 수준의 성능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사국가고시는 임상 의사결정을 평가하는 대표 시험으로, 모델이 시험 문항을 풀이해 이 같은 점수를 얻었다는 것은 국내 의학교육 커리큘럼에 준하는 기본 임상지식 이해 능력을 갖췄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네이버와 서울대병원은 이 모델이 단순 정보 검색을 넘어 환자 상태 설명, 검사 결과 요약, 감별진단 후보 제시 등 의료진 판단을 보조하는 범용 의료 AI로 확장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이번 기술은 기존에 해외 빅테크 기업이 개발한 범용 LLM이 한국 의료 데이터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생기던 한계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영어 중심 데이터에 의존하던 일반 모델 대비, 국내 의료법과 보험 규정, 한국어로 작성된 진료지침을 구조적으로 학습했다는 점에서 진료 현장에서의 실질 활용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의료 현장에 특화된 문답세트와 실제 진료 문서를 바탕으로 모델 튜닝을 거쳐, 단순 지식 나열이 아니라 한국 병원 시스템 맥락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최적화한 것도 차별점이다.
네이버는 이날 Kmed.ai를 기반으로 한 의료 특화 에이전트 플랫폼도 함께 공개했다. 이 플랫폼은 서울대병원 구성원이 문서 작성 보조, 진단 보조, 행정 업무 자동화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예를 들어 진료 기록을 요약하거나 설명자료를 생성하고, 진료 가이드라인을 근거로 검사나 처치를 제안하는 등 의료진의 반복적 작업을 줄이는 방향으로 기능이 구성돼 있다. 네이버는 향후 영상 판독 보조, 다중 모달 데이터 연계 등 고도화된 업무로 범위를 넓히며 안전성과 정확도를 단계적으로 높여갈 계획이다.
시장 측면에서 의료 특화 LLM과 에이전트 플랫폼은 병원 디지털 전환과 정밀의료, 보험심사 대응 등 다양한 수요와 맞물린다. 의료진 입장에서는 진료기록 작성과 각종 보고서 작성 시간이 줄어들고, 최신 가이드라인과 법규를 수시로 확인할 수 있는 도구를 확보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보다 이해하기 쉬운 설명자료와 교육 콘텐츠를 제공해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된다. 다만 실제 진단·치료 결정은 의료인의 책임 하에 이뤄져야 하며, AI는 보조 도구로 작동해야 한다는 점에서 안전성과 책임 범위 설계가 핵심 과제로 남는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이미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의료 특화 AI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이다. 미국에서는 대형 클라우드 기업과 병원, 제약사가 협력해 전자의무기록과 연계된 임상 요약 AI, 방사선 영상 판독 보조 모델을 상용 서비스로 전개하고 있다. 유럽에서도 각국 공공의료 시스템과 연계한 AI 트리아지 도구, 가이드라인 추천 시스템 도입이 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네이버와 서울대병원의 Kmed.ai는 한국 의료 데이터와 규제 환경을 정밀 반영한 국산 의료 소버린 AI라는 점에서, 해외 범용 모델과는 다른 전략적 포지셔닝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정책·규제 측면에서도 파급 효과가 적지 않을 전망이다. 의료 AI는 의료법, 개인정보보호법, 의료기기 관련 규정 등 복수의 법령과 맞닿아 있어 상용화 과정에서 엄격한 검증이 요구된다. 특히 환자 데이터의 비식별화와 안전한 학습·활용 방식, 알고리즘의 설명 가능성, 오류 발생 시 책임 주체 설정 등은 향후 제도 정비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수 있다. 정부가 의료 AI를 국가전략기술로 규정하고 지원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이번처럼 대형 병원과 ICT 기업이 결합한 프로젝트는 규제 샌드박스와 인허가 기준 마련 과정에서 중요한 레퍼런스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은 행사에서 Kmed.ai를 한국 의료 산업, 진료 상황, 의료법을 가장 깊이 이해하는 의료 소버린 AI의 성공 사례로 키우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그는 AI 시대에 네이버가 어떻게 살아남고 산업을 이끌 것인지에 대한 고민 끝에 의료 AI에서 해답을 찾았다고 강조하며, 메디컬 AGI와 의료 특화 LLM을 새로운 성장 축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특히 더 큰 자본을 가진 글로벌 기업과는 다른 방식으로 싸워 온 네이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의료 AI 시대에도 투지와 도전 정신을 유지하겠다고 언급했다.
김영태 서울대병원장은 의료 AI를 국가전략기술로 규정하며 이번 성과를 한국 의료 소버린 AI 구축의 첫걸음이자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했다. 그는 환자 안전과 의료 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해 AI 기반 지능형병원 전환을 가속화하고, 국내 의료 AI 경쟁력 강화와 글로벌 도약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네이버와 서울대병원의 행보가 향후 타 상급종합병원, 지방의료원, 민간병원으로까지 확산되며 에코시스템을 형성할지 주목하고 있다.
산업계는 Kmed.ai를 계기로 한국 의료 데이터와 규제 환경에 최적화된 소버린 AI 모델이 얼마나 빠르게 실제 진료 현장과 보험·행정 절차에 안착할지 지켜보고 있다. AI 모델의 고도화 속도 못지않게 임상 검증, 책임 구조, 데이터 거버넌스 등 제도적 기반이 병행될 수 있을지가 의료 AI 산업의 성패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기술과 윤리, 산업과 제도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한국형 의료 AI의 지속가능한 성장 조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