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 바다와 항공의 도시”…사천, 느린 풍경에서 여유를 걷다
요즘 사천에서 걷고 숨 쉬는 사람이 눈에 띄게 늘었다. 예전엔 부산이나 제주가 바다 여행지의 대표로 꼽혔지만, 지금은 경남 사천이 작은 쉼과 발견의 일상이 되고 있다. 흐린 하늘, 적당한 습도, 그리고 바람이 부는 오후, 사천의 정취는 느릿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더 선명히 다가온다.
사천바다케이블카는 이제 이 지역의 새로운 명소가 됐다. 바다 위를 잇는 케이블카에 오르면, 초양정류장과 각산정류장까지의 구간마다 삼천포대교와 옹기종기 박혀 있는 섬, 능선 따라 펼쳐지는 숲의 색이 다르게 들어온다. 케이블카 유리창 너머로 전해지는 에메랄드빛 바다는 일상의 긴장을 풀어주고, 곳곳에서 환호하는 방문객들의 목소리에서 설렘이 전해진다. SNS에서는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남해 풍경을 인증하는 사진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최근 경남 지역 내 바다 케이블카 이용객은 전년 대비 소폭 증가했다. 가족 단위 방문자는 물론, ‘케이블카+도보 산책’ 코스가 일상 여행으로 떠오르면서 평일 방문자도 늘었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의 설명이다. 특히 ‘케이블카-항공우주박물관-선진리성’ 코스는 아이 동반 가족 여행객들에게 인기라는 후문이다.
사천의 또 다른 매력은 항공과 역사의 발자취다. 항공우주박물관에선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미래를 꿈꾼다. 실제로 기자가 발걸음한 이곳에선, 실물로 만나는 퇴역 전투기와 6.25 전쟁 유물 앞에서 아이들이 눈을 빛냈다. 한 방문객은 “전쟁의 아픔과 우주의 꿈, 서로 다른 시대 이야기가 한 곳에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고 느꼈다. 전시를 기획한 한 실무자는 “항공기만 보는 공간이 아니라, 사천이 걸어온 길과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까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선진리성. 임진왜란의 상흔이 깃든 돌담은 지금 조용한 공원으로 돌아왔다. 성곽을 따라 걷는 이들의 표정엔 사색과 여유가 함께 묻어났다. 고성 위 산책로에서 바라보는 남해는, 바쁜 일탈이 아닌 ‘천천히 머무는 여행’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한 커뮤니티에선 ‘가을에 가장 걷기 좋은 곳’으로 선진리성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이렇게 사천 여행은 각자의 방식으로 느림과 쉼을 배운다. 짧은 먼 길을 걷고, 오래된 전시물을 바라보며, 창밖 바다와 마주하는 순간마다 삶의 보폭이 조금씩 넓어진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