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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이 의료격차 줄인다”…고대의료원, 취약계층지원 기부금 유치

최하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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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민간 기부가 대학병원 현장에서 이어지며 공공의료 체계 보완 논의에 힘을 싣고 있다. 대형 상급종합병원들은 첨단 의료장비와 디지털 헬스케어 시스템에 막대한 투자를 진행하는 동시에, 재정 여력이 부족한 취약계층에 대한 치료비 지원 기금을 확대하는 추세다. 첨단 의료 접근성 격차가 산업 전반의 구조적 문제로 지적되는 가운데, 민간 기부는 데이터 기반 정밀의료, 원격의료 확대와 더불어 의료 형평성을 높이는 보완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고려대학교의료원은 프로골퍼 이예원 선수로부터 의료 사각지대 환자를 위한 자선기금 3천만 원을 전달받았다고 31일 밝혔다. 기부금은 29일 오후 4시 고려대 메디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기부식을 통해 전달됐으며, 경제적 이유로 진료와 치료를 미루는 소외 계층 환자의 진료비 및 치료비 지원에 사용될 예정이다. 대학병원 내 별도 재원으로 기금을 조성해 운영하는 방식으로, 공적 의료 재정만으로는 충당하기 어려운 영역을 보완하는 구조다.

이날 행사에는 윤을식 고려대 의무부총장을 비롯해 손호성 의무기획처장, 김학준 의학연구처장 등 의료원 주요 보직자와 기부자인 이예원 프로골퍼가 참석했다. 의료원 측은 기부금을 활용해 고가 영상진단, 암 치료, 만성질환 관리 등 비용 부담이 큰 진료 영역에서 취약계층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정밀의료와 디지털 헬스케어 도입 과정에서 치료비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온 만큼, 의료비 지원 기금은 의료 접근성 균형을 맞추는 안전장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자선기금은 이예원 프로의 팬클럽인 퍼펙트바니가 모금한 1천5백만 원과 이 선수가 추가로 쾌척한 1천5백만 원이 더해져 마련됐다. 선수 개인의 선행에 팬 커뮤니티가 참여하는 방식으로, 대형 스포츠 스타와 팬덤이 공공의료 지원에 나선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팬 기반 크라우드 펀딩 형태의 기부 구조는 향후 대학병원 기부 생태계와 병원 재단의 사회공헌 프로그램 설계에도 참고 모델이 될 수 있다.

 

이예원 프로는 고려대 국제스포츠학부 22학번으로, 이번 기부는 모교 의료원을 향한 사회 환원 성격도 함께 지닌다. 이 선수는 2022년 KLPGA 신인상을 받으며 데뷔한 이후 2023년 대상과 상금왕, 최저타수상을 석권했고, 2024년과 2025년에는 2년 연속 다승왕에 오르며 KLPGA를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 잡았다. 이미 최근 영남지역 대형 산불 피해와 관련해 2천만 원을 조용히 기부한 바 있어, 스포츠 스타가 사회공헌 플랫폼으로 기능하는 전형적 사례로도 분석된다.

 

이예원 프로골퍼는 의료 현장에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치료를 미루는 환자가 적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부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작게나마 힘을 보탤 수 있어 뜻깊게 생각한다며, 팬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앞으로도 나눔을 꾸준히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유명인의 이미지 제고 차원을 넘어, 고비용 첨단 의료 환경에서 실제 치료 기회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자원을 배분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윤을식 의무부총장은 바쁜 선수 생활 중에도 나눔을 실천한 이예원 프로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기부금이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어르신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사용하겠다고 강조했다. 고령층은 만성질환 비율이 높고 첨단 의료 혜택에 대한 수요도 큰 계층이지만, 소득과 거주 지역에 따른 의료 격차가 두드러지는 집단으로 꼽힌다. 대학병원 차원의 기부금 집행 방향이 고령 취약계층에 맞춰진 것도 이런 구조적 특성에 따른 결정으로 풀이된다.

 

의료계에서는 고가 항암제, 로봇수술, 정밀의료 검사, 원격 모니터링 서비스 등 첨단 IT 기반 의료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비용 부담과 정보 접근성에 따른 새로운 격차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왔다. 공공 재정과 건강보험만으로는 모든 첨단 기술을 동등하게 제공하기 어렵기 때문에, 병원 재단 기부금과 사회공헌 기금이 격차 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대학병원은 AI 진단 보조, 디지털 치료제, 유전체 분석 등 첨단 기술을 먼저 도입하는 기관인 만큼, 이와 연계한 의료비 지원 프로그램 설계가 정책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대형 의료기관과 민간 기부자의 협력으로 공공의료 재원을 보완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미국의 주요 대학병원은 빅데이터 기반 암 정밀의료센터와 희귀질환 연구소 설립 과정에서 대규모 개인 기부를 유치해, 연구와 치료비 지원을 동시에 확대하는 모델을 구축해 왔다. 영국과 유럽 역시 국가 의료 시스템 기반 위에 자선기금 조직을 통해 취약계층 지원과 첨단 의료 접근성 강화를 병행하는 구조를 택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학병원과 민간 기부를 연결하는 전문 재단과 플랫폼의 역할이 부각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헬스케어와 정밀의료가 확대될수록, 데이터를 다룰 수 있는 병원과 그렇지 못한 의료기관 사이의 격차뿐 아니라 환자 간 치료 기회 격차도 심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 과정에서 대학병원의 사회공헌 프로그램과 기부금 운용 방식이 의료 접근성의 마지막 안전망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기부금 사용처를 데이터 기반으로 투명하게 공개하고, 취약계층 대상 AI 진단 지원, 유전체 검사 비용 보조 등 첨단 의료 영역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업계와 의료계는 이번 기부 사례가 단발성 선행에 그치지 않고, 유명인과 팬덤이 함께 참여하는 지속 가능한 공공의료 지원 모델로 확산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첨단 IT와 바이오 기술이 의료 비용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동하도록 제도 설계와 사회적 투자 구조를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의료 혁신의 속도뿐 아니라,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재정과 제도, 사회공헌 생태계가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기술 발전이 의미를 갖는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최하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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