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영부인 친분 과시해 집행유예 보장" 특검, 이종호에 징역 4년 구형
재판 거래 의혹을 둘러싼 특검과 피고인이 정면으로 맞섰다. 대통령과 영부인 인맥을 내세운 재판 청탁 의혹은 사법 공정성 논란으로 번지며 내년 선고를 앞두고 정치권의 파장을 키우고 있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3부 오세용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에게 징역 4년에 벌금 1천만원, 추징금 8천390만원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특검팀은 공소요지를 설명하며 "이 사건은 피고인이 대통령, 영부인, 법조인 등 인맥을 통해 집행유예를 받게 해주겠다며 현금을 받은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형사사법 절차의 공정성·무결성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 중대 범죄"라고 강조했다.
또한 특검은 범행 양태를 두고 "범행 수법이 매우 불량하다"고 비판했다. 특검에 따르면 이 전 대표는 대통령과 영부인, 부장판사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약 8개월 동안 25차례에 걸쳐 8천300만원 상당의 돈을 받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은 "돈을 주지 않으면 형을 많이 받을 것이라고 하면서 안 주면 불이익을 준다고도 했다"고 지적했다.
양형과 관련해 특검은 이 전 대표가 범행 이후 증거를 훼손하고 허위 알리바이를 시도한 점을 불리한 요소로 들었다. 특검팀은 "피고인이 휴대전화를 한강변에서 부수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방법으로 증거를 인멸했다"며 "허위 증거를 통해 알리바이를 만들려 한 정황도 확인됐고, 재판 과정 내내 혐의를 지속적으로 부인해 반성의 태도가 미흡하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표 측은 수사 절차 자체에 흠결이 있다며 맞섰다. 변호인단은 최후변론에서 "특검 수사에 절차적 하자가 있었고 공소 제기도 위법하다"며 공소기각을 요구했다. 특히 "이 사건은 김건희 특검법에 규정된 수사 대상이 아니다"라며 특검의 권한 남용을 주장해 왔다.
변호인은 "특검은 법률에서 정한 범위를 벗어나 수사를 하고 준비 기간 중 수사 금지 원칙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를 용인한다면 법치주의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라며 재판부에 강경한 판단을 요청했다.
피고인 자리에서 일어난 이 전 대표는 최후진술을 통해 유감과 반성을 표하는 한편 선처를 구했다. 그는 "가벼운 행동으로 사회에 큰 물의를 빚고 양 특검의 조사를 받은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4개월 이상 구금 생활을 한 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 전 대표는 앞으로의 삶에 대해 "남은 인생에서 법을 준수하고 모범적인 시민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또 "그동안 제가 사회에 끼친 부정적인 영향을 만회하기 위해 제가 가진 능력과 경험을 사회에 환원하며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며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했다.
법원은 내년 2월 13일 이 전 대표에 대한 1심 선고를 진행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판결 내용에 따라 특검 수사의 정당성과 사법 공정성 논란은 다시 한 번 정치권의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이 전 대표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연루된 인물로, 김건희 여사의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김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하는 특검팀이 주목하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서 이른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 인물로 지목돼 왔다. 수사 기록 등에 따르면 2차 주가조작 시기에는 김 여사의 계좌를 직접 관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사건의 직접적인 공소사실은 별도의 형사재판과 관련돼 있다. 특검팀에 따르면 이 전 대표는 이정필 씨의 형사재판에서 실형 대신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수 있도록 힘써주겠다고 속여 돈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전 대표는 2022년 6월부터 2023년 2월까지 25차례에 걸쳐 8천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8월 민중기 특검팀에 의해 구속기소됐다.
그는 이 과정에서 김건희 여사와의 친분을 내세워 이 씨를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국회의원 등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정계와 법조계 인맥을 동원해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정황은 향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및 대선 국면 당시의 정치적 공방과도 맞물려 추가 논란을 낳을 여지가 있다.
정치권에선 특검 수사 범위와 정당성을 두고 공방이 가열될 가능성이 크다. 여권에선 특검이 법률 범위를 벗어나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주장을 펼칠 수 있고, 야권에선 대통령 배우자와 가까운 인물이 연루된 사법 거래 의혹이라며 공세를 강화할 수 있는 사안이다.
선고 이후 유죄가 인정될 경우 형사사법 절차에 대한 국민 신뢰와 대통령실 주변 인사 검증 논란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반대로 특검 수사의 적법성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함께 제시될 경우 특검법 해석을 둘러싼 후속 논쟁도 이어질 수 있다.
법조계에선 재판 청탁과 사법 거래 의혹 사건이 다시 불거진 만큼 향후 유사 사건에 대한 처벌 수위와 사법부의 자정 의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법원은 내년 2월 선고를 통해 이 전 대표의 혐의 유무와 양형뿐 아니라 특검 수사의 외연에 관한 사실상 첫 판단을 내리게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