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인사 비법관이 좌우…사법권 침해 우려” 사법행정위 추진에 법원 안팎 긴장
사법행정 개혁을 둘러싸고 더불어민주당과 사법부가 마주 섰다. 법원행정처 폐지와 새로운 사법행정위원회 설치 계획이 드러나면서, 법원 내부에선 사법권 독립 침해와 위헌 가능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사법행정 정상화 태스크포스는 25일 사법행정 개혁안 입법공청회를 열고, 법관 인사와 예산을 총괄해 온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사법행정위원회를 신설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사법행정위원회는 총 13인으로 구성하되 비법관을 다수로 두는 구성이며, 위원장을 외부위원 추천으로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방안과 대법원장이 직접 위원장을 맡는 안이 함께 제시됐다.

공청회에 참석한 이지영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총괄심의관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사법행정위 구상이 헌법상 사법권 독립 원칙을 훼손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헌법 101조를 언급하며 “사법권에는 사법행정권이 포함된다”며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이 정치적·외부적 간섭 없이 독립해 사법행정의 핵심적 사항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 심의관은 법관 인사가 재판의 독립과 직접 연결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법관의 인사는 재판 독립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사법행정의 본질적 요소”라며 “비법관 위원이 다수를 차지하는 위원회에 법관 인사에 대한 모든 권한이 집중되면, 인사를 통해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외부 시도를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이어 “사법부 내부로부터 독립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사법부 외부로부터 독립을 지키지 못하는 결과가 초래돼서는 결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개혁 필요성의 근거로 제시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을 제시했다. 이 심의관은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후 사법부는 관료적 문화와 폐쇄적 사법행정 구조를 개선하고 사법부 내부로부터 재판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며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8년이 지난 현재 그간 사법부의 노력과 결과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사법행정권 남용 우려로 법원행정처가 폐지돼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장 법관들 사이에서도 우려가 뒤따랐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결국 대법원장의 영향력을 약화하려는 취지”라며 “법관 인사권과 재판권 모두 사법권의 일환인데 그 본질적인 권한을 뺏어가는 건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위 설치가 정치권 등 외부 세력의 영향력을 넓히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문제 제기다.
법원행정처 수장인 천대엽 처장도 과거 국회 논의를 상기시키며 신중한 접근을 강조해왔다. 천 처장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 행정처를 폐지하는 법안은 국회에 제출했지만 대안이 없었다”며 “대법원은 사법부 독립 측면에서 치명적 위험이 있다’는 반대의견을 제출했고, 국회에서 폐기됐다”고 설명했다. 사법행정 조직 개편이 이미 국회에서 한 차례 좌초된 전력이 있다는 점을 부각한 것이다.
민주당 태스크포스 안에는 각급 법원 판사회의 권한을 확대해 ‘법원장 후보 선출’을 심의·의결 대상으로 포함하는 내용도 담겼다. 판사회의는 현재 사법행정 전반에 대해 의견을 내는 자문기구인데, 여기에 법원장 후보 선출 권한을 얹자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 방안 역시 법원 내부에 논쟁을 낳고 있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 시절 시행됐던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다시 떠오르기 때문이다. 당시 제도는 대법원장 권한을 분산하고 사법행정의 민주성을 높이겠다는 명분 아래 추진됐지만, 일선 법관들이 법원장 투표에 치중하며 이른바 인기 투표, 눈치 보기 경쟁으로 흐른다는 비판을 받았다.
법관들 사이에선 해당 제도가 재판 중심의 조직문화보다 표 계산과 내부 정치에 힘을 싣는 역효과를 낳았다는 회고도 나온다. 특히 “법원장이 일선 판사들의 눈치를 보느라 과거처럼 신속한 재판을 독려하거나 미제사건 처리를 강조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하급심 재판 지연이 심화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이런 구조가 대법원 재판 지연으로까지 이어졌다는 비판도 있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취임 이후 법관 투표를 폐지하고, 전국 단위에서 후보군을 추천받아 법원장을 보임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손질했다. 이 심의관은 이러한 경위를 언급하며 “종래 제도를 재도입하는 데에는 이와 같이 개선이 이뤄진 경위, 과거 제도의 장단점을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과거 제도 운영 경험과 그에 따른 부작용을 다시 검증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민주당은 사법농단 재발 방지와 사법행정 민주화를 내세우며 사법행정위 설치 입법을 서두르고 있다. 반면 사법부는 사법권 독립과 위헌 소지를 거론하며 제동을 거는 모양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사법행정 주체와 권한 배분을 둘러싼 여야 공방이 불가피한 가운데, 사법부와의 추가 협의 여부에 따라 최종 법안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회는 사법행정 개혁 입법을 둘러싼 공청회와 논의를 이어가며, 정기국회 후속 일정에서 사법행정위원회 설치 법안을 본격 심사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