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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 함정 정비 잡는다”…HJ중공업, 첫 MRO 계약으로 방산 외교 지형 변화 촉발

이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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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방산 협력의 새로운 시험대가 조선소에서 마련됐다. HJ중공업이 미국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 사업을 수주하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을 둘러싼 방산 외교 경쟁 속에 한국 조선·방산 업계가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HJ중공업은 15일 미국 해군 보급체계사령부 및 해상수송사령부와 4만t급 건화물 및 탄약 운반선 USNS 어밀리아 에어하트함 중간 정비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계약에 따라 HJ중공업은 내년 1월부터 부산 영도조선소 안벽에서 정비 작업에 착수한다.

어밀리아 에어하트함은 미 항공모함과 전투함 등 주력 함정에 탄약, 식량, 화물 최대 6천t과 연료 2천400t을 공급하는 핵심 군수지원함이다. 길이 210m, 너비 32m 규모로, 2008년 취역 이후 최대 속력 20노트, 시속 37km로 운항해왔다. 미 해군 전력 운용의 뒷받침 역할을 하는 전략 자산이다.

 

이번 계약은 국내 중형조선사 가운데 HJ중공업이 처음으로 미 해군 MRO 시장에 본격 진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MRO는 함정의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유지·보수·정비 서비스를 제공하는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특히 미국 해군 함정 MRO는 엄격한 규정과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해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로 꼽힌다. 그만큼 수익성과 장기 파트너십 기대도 크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최근 미국 국방부가 지역기반 지속지원 프레임워크 RSF 정책을 도입하고, 한미 MASGA 프로젝트가 추진되면서 인도·태평양 지역 동맹국과의 방산 협력 기조는 확대되는 흐름이다. 여기에 한국 조선·방산 기업이 미 해군 핵심 보급함 정비에 참여하게 되면서, 군사동맹을 넘어 실질적인 군수지원 네트워크로까지 협력이 확장되고 있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HJ중공업은 특수선 건조와 정비 분야에서 쌓아온 경험을 앞세워 지난해부터 해외 MRO 시장 진출을 준비해왔다고 설명했다. 1974년 국내 최초 해양방위산업체로 지정된 이후 최신예 함정 건조와 MRO 사업 등 1천200척이 넘는 다양한 함정과 군수지원체계 사업을 수행해온 실적이 강점으로 꼽힌다.

 

실제 지난 기간 주한 미 해군사령관, 미 해군 보급체계사령부 현장실사단, 미국 상무부 부차관보 등이 잇달아 HJ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를 방문해 시설과 장비, 보안 상태, 기술력을 직접 점검했다. 회사 측에 따르면 실사단은 전반적인 역량에 대해 우호적인 평가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HJ중공업은 내년 1월부터 선체와 주요 시스템 점검, 수리, 부품 교체, 도장 작업 등 중간 정비에 돌입해 내년 3월 말께 어밀리아 에어하트함을 미 해군에 인도할 계획이다. 성공적인 정비 이행 여부에 따라 추가 MRO 사업 수주와 장기 협력 확대 가능성도 거론된다.

 

유상철 HJ중공업 대표는 "이번 계약 체결로 회사의 정비 역량과 기술력, 계약 이행 능력 등 MRO 사업의 핵심 경쟁력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50여년간 함정 전문 방위산업체로서 쌓아온 기술력과 인프라를 토대로 미 해군이 요청한 납기와 품질을 충족시켜 신뢰를 쌓겠다"고 강조했다.

 

국방 외교 현안과 맞물려 볼 때, 미 해군 함정 MRO 시장 진출은 단기 수주 실적을 넘어 한미 동맹의 군수·보급 체계까지 연계하는 기반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부와 국회가 추진 중인 방산 수출 지원, 전략물자 관리 강화 논의와도 연결되면서, 향후 국정감사와 관련 상임위에서 MRO 분야를 둘러싼 정책 점검이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방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방산 협력 확대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다른 국내 조선·방산업체의 미 해군 및 우방국 함정 정비 시장 참여 여부도 주목된다. 정치권은 방산 수출과 군수지원 협력 확대가 안보와 경제를 동시에 겨냥한 전략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어, 관련 제도 개선 논의가 계속될 전망이다.

이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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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j중공업#미해군#어밀리아에어하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