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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내시경 특수 온다”…국내 시술기구, 외산 독주에 균열

조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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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건강검진 시즌을 앞두고 위와 대장 등 내시경 검진 예약이 조기 마감되는 가운데, 그동안 외국계 기업이 장악해온 내시경 시술기구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이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 고령화와 검진 수요 확대가 맞물리면서 내시경 시술기구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기술 경쟁력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국산 제품이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분수령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내시경 시술기구 시장은 올림푸스한국, 보스턴사이언티픽 등 글로벌 기업이 오랜 기간 주도해왔다. 내시경 장비와 함께 사용되는 점막하 박리술 기구, 조직 채취용 기구, 지혈재 등 소모성 치료재료 상당수가 외산에 의존해온 구조다. 다만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의료기기 업체들이 고부가가치 제품을 내세우며 제품군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어 판도 변화 가능성이 부각되고 있다.

파인메딕스는 내시경 점막하 박리술 ESD에 사용하는 클리어컷 나이프와 조직 채취용 기구 클리어팁을 앞세워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ESD는 위와 대장 점막에 국한된 조기 종양을 절제하는 최소침습 치료법으로, 수술 없이 내시경으로 병변만 정교하게 도려내는 고난도 시술이다. 섬세한 조작이 필요한 만큼, 시술기구의 팁 구조와 절개·박리 성능, 조작성 등이 시술 시간과 합병증 발생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회사는 외산 제품과 비교해 의료진 편의를 높이는 설계와 국산 제조 기반을 앞세운다. 팁 형태와 길이, 절연 구조 등을 세분화해 다양한 임상 상황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제품 라인업, 병변 시야 확보를 돕는 디자인 등을 통해 시술 효율을 높였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유통 구조 효율화로 외산 대비 약 20퍼센트 수준의 가격 경쟁력까지 갖췄다고 강조한다.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검진과 시술 수요가 급증하는 연말 성수기에 소모성 기구를 안정적으로 조달하면서도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선택지가 되는 셈이다.

 

파인메딕스는 국내 시장 확대와 동시에 중국, 미국, 중남미 등 해외 공략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초 중국 내시경 장비 1위 기업으로 꼽히는 소노스케이프와 협업 관계를 구축해, 현지에 구축된 장비 판매 네트워크와 유통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브라질과 미국 등 거점 국가의 대형 유통사와도 연달아 계약을 체결하며 글로벌 공급망을 넓히고 있다.

 

전성우 파인메딕스 대표는 의료 현장 중심의 빠른 제품 개선이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전 대표는 의료진의 피드백을 신속히 반영하는 개발 체계를 통해 대기업 중심의 글로벌 스탠더드와 다른 차별화를 꾀하겠다고 언급하며, 제품 고도화와 영업망 강화를 바탕으로 국내외 점유율 확대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넥스트바이오메디컬은 내시경 지혈재 분야에서 차별화 전략을 펼치고 있다. 회사가 개발한 넥스파우더는 분말 형태의 내시경 지혈재로, 위장관 출혈 부위에 직접 분사해 출혈을 멈추는 용도로 사용된다. 기존에 많이 쓰이던 액체형 지혈재는 도포 과정에서 출혈 부위에 머무르는 시간이 짧고 조작성에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이 많았다. 반면 파우더 제형은 점막 표면에 도포된 뒤 물과 접촉하면서 응고막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시술 시간을 줄이고 지혈 성공률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넥스트바이오메디컬은 넥스파우더를 치료용 지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고위험군 환자의 예방적 출혈 관리 등 글로벌 예방 시장까지 확장하겠다는 전략을 세워두고 있다. 출혈이 발생한 후에만 사용하던 지혈재를, 용종 절제나 고난도 ESD 시술 전후에 예방적 차원에서 활용하는 임상 프로토콜이 확산될 경우 소비량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내시경 시술기구 시장의 성장세는 건강보험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집계한 급여치료재료청구현황에 따르면 내시경하 시술용 기구는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 연속 건강보험 청구 금액 1위를 기록했다. 2024년 한 해 동안 내시경 시술용 기구로 청구된 건강보험 청구액은 2021년 대비 30퍼센트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검진센터와 상급종합병원에서 위와 대장 내시경 검사뿐 아니라 용종 절제, 조기 위암 절제술 등 치료 목적 시술이 늘어난 영향으로 해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고령화와 검진 수요 확대가 이런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평균 수명이 늘면서 국가 암 검진 대상자가 빠르게 증가하는 가운데, 과거에는 개복수술로 진행하던 병변 제거를 내시경으로 대체하는 시술이 표준치료로 정착해 관련 일회용 기구 소모량이 크게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건강검진이 몰리는 4분기에는 의료기관의 내시경 시술기구 발주량이 직전 분기 대비 20에서 30퍼센트가량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일본과 미국, 유럽 기업이 내시경 장비와 시술기구를 동시에 공급하는 구조가 공고하다. 국내 기업들은 장비 대신 시술기구와 치료재료에 집중해 틈새를 공략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일회용 시술기구는 감염관리와 품질관리가 까다로운 만큼 규제 허들이 높지만, 한 번 채택되면 재구매 비율이 높은 특성이 있어 안정적인 수익원이 될 수 있다. 여기에 각국의 규제기관이 일회용 기구 사용 확대를 통해 환자 안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고 있어, 중장기적으로 시장 확대 여지도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연말 검진 특수가 단기 수요 확대에 그치지 않고, 국내 기업 제품의 성능과 신뢰성을 검증받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내시경실 의료진이 국산 시술기구를 경험하고 임상 데이터를 축적할수록 글로벌 기업에 집중된 구매 구조가 점진적으로 완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단, 내시경 장비와의 호환성 검증, 다국가 임상과 인증 확보, 장기적인 품질 관리 등 넘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계는 고령화와 예방의학 강화라는 구조적 요인이 내시경 시술기구 수요를 뒷받침하는 만큼, 국산 제품이 외산 중심 시장에 얼마만큼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조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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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메딕스#넥스트바이오메디컬#내시경시술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