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관리 기준 새로 쓴다”…연세의대, 만성질환 영양표준 추진
당뇨병과 고혈압 등 만성질환 관리의 기준이 ‘한국인 데이터’에 기반한 영양 표준으로 재정비될 전망이다. 연세의료원이 참여한 연세대학교 산학협력단 산하 한국인 만성질환 영양 참조표준 데이터센터가 국가참조표준센터로 공식 지정되면서, 만성질환자의 실제 임상 데이터를 토대로 한 국가 단위 영양 기준 체계가 구축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와 의료계에서는 디지털헬스와 정밀영양을 결합한 만성질환 관리 경쟁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연세의료원은 2일 연세대학교 산학협력단의 한국인 만성질환 영양 참조표준 데이터센터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산하 국가참조표준센터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국가참조표준센터는 국가 차원에서 데이터의 정확도와 신뢰성을 검증해 공인된 ‘국가 기준 데이터’를 생산하고 관리하는 기관이다. 현재까지 의료·임상 분야, 특히 만성질환 환자 기반 영양 데이터가 국가참조표준으로 지정된 사례는 극히 제한적이어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국가참조표준센터로 지정되려면 질환별·환자 기반 영양 데이터를 국가 기준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역량을 갖춰야 한다. 데이터 수집과 분석, 품질 검증, 업데이트 체계까지 전 주기에 걸친 표준화 능력이 요구된다. 이번 선정은 만성질환 영양 데이터가 단발성 연구를 넘어 국가 단위 기준 데이터로 승격됐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기술적 측면에서 해당 센터는 식이 조사, 영양소 분석, 임상 데이터 연계 전 과정을 표준화된 절차로 운영해 왔다. 수집 단계에서는 환자의 식사 내용과 섭취량을 정량화하는 식이 조사 프로토콜을 통일하고, 분석 단계에서는 영양소 구성과 열량을 정밀 분석해 데이터베이스화한다. 이어 혈당, 혈압, 지질 수치, 신장 기능 등 임상 지표와 생활습관 데이터를 연계함으로써 단순 섭취량 통계를 넘어 ‘영양 섭취와 질환 상태 간 상관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이 특징이다. 개인차와 변동성이 큰 임상 데이터를 반복 측정과 교차 검증을 통해 통제해 온 점도 국가참조표준센터 지정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 지정의 바탕에는 연세대 의대와 세브란스병원이 축적해 온 장기 임상 연구 데이터가 있다. 연세대 의대는 고혈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만성신질환, 비만 등 대표적 만성질환자와 암 환자를 대상으로, 영양 섭취 정보와 임상 지표, 생활습관 정보를 연계한 역학 및 임상 연구를 이어왔다. 건강인 위주로 구성된 기존 영양 데이터와 달리, 실제 진료 현장에서 관리 중인 환자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 핵심 차별점이다. 특히 세브란스 영양대사클리닉에서 축적된 진료·상담 데이터는 현실적인 식단 조정과 약물 치료 효과를 함께 반영할 수 있어, 향후 임상 가이드라인으로 확장되기 용이한 형태로 평가된다.
시장성과 활용 측면에서 보면 이번 지정은 정밀영양과 디지털헬스 산업에 새로운 기준을 제공할 수 있다. 만성질환자의 혈당, 혈압, 체중 변화와 식단 기록이 체계적인 국가 표준 데이터로 정리되면, 이를 활용하는 헬스케어 앱과 인공지능 기반 추천 서비스의 정확도 향상도 기대된다. 예를 들어 당뇨병 환자의 경우, 특정 탄수화물 섭취 패턴과 혈당 반응 간 상관관계가 한국인 데이터를 기준으로 정리되면, 개인 맞춤형 식단 설계와 위험도 예측 알고리즘의 신뢰도가 높아질 수 있다. 실제 환자 집단 기반 데이터가 디지털 치료제, 원격 모니터링, 보험 연계 서비스의 ‘레퍼런스 모델’로 쓰일 여지도 크다.
글로벌 관점에서 보면 정밀영양은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 경쟁이 치열해진 분야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유전체 분석과 마이크로바이옴 데이터를 활용해 개인 맞춤형 식단을 제시하는 서비스가 빠르게 늘고 있다. 다만 식문화와 체형, 대사 특성이 다른 지역의 데이터를 그대로 가져올 경우 한국인에게는 맞지 않는 권고가 나올 수 있다는 한계가 지적돼 왔다. 이번에 한국인 만성질환자를 대상으로 한 국가참조표준이 구축되면, 국내 기업들은 자국민 특성을 반영한 정밀영양 솔루션을 개발할 수 있고, 아시아권 대상 서비스 수출 경쟁에서도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책과 규제 측면에서도 변화가 예상된다. 국가참조표준센터 지정으로 해당 데이터는 향후 보건의료 정책 수립과 임상 진료지침 개정의 핵심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당뇨병·고혈압 식이요법 권고안, 만성신질환 환자의 단백질 섭취 기준, 비만 환자의 열량 조절 가이드라인 등에서 기존 국제 기준을 그대로 차용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한국인 데이터를 반영한 수치 조정이 추진될 여지가 생긴다. 향후 식품 표시제도, 영양성분 기준, 병원 급식 지침 등으로도 확장될 경우, 제도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조다. 다만 의료데이터 활용과 관련한 개인정보 보호, 2차 활용 규제, 데이터 거버넌스 체계에 대한 논의는 병행돼야 할 과제로 남는다.
산업 측면에서는 메디푸드와 K푸드 고도화와의 연계가 기대된다. 만성질환자 전용 식품, 병원용 맞춤형 식단, 고령층 대상 기능성 식품 개발 기업들은 국가참조표준 수준의 신뢰도 높은 데이터를 활용해, 제품 설계와 임상 평가를 보다 정교하게 설계할 수 있게 된다. 특히 한국인 만성질환자의 식습관과 대사 특성이 반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제품은 해외 시장에서도 ‘한국형 맞춤 영양 솔루션’으로 포지셔닝할 수 있어, 식품·바이오기업의 공동 연구와 수출 전략에도 파급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세대 의대는 향후 이 데이터센터를 인공지능과 디지털헬스 기술과도 연계할 계획으로 평가된다. 다학제 협력 구조를 바탕으로 내분비내과, 영양학, 데이터사이언스, 정보의학 등 다양한 전공이 참여해, 식단과 혈당 반응 예측 모델, 질환 진행 위험도 예측 알고리즘 개발 등이 추진될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이 상용화 단계에 이르면, 병원 진료실뿐 아니라 모바일 앱, 웨어러블 기기와 결합한 생활 속 만성질환 관리 서비스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센터책임자 이지원 교수는 국가참조표준센터 지정을 “한국인 만성질환자의 영양 기준을 임상 근거에 기반해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 책임과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의료 현장과 정책, 연구 전반에서 활용 가능한 신뢰도 높은 표준 데이터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이번 만성질환 영양 국가참조표준 구축이 실제 정책과 시장에 얼마나 빠르게 반영될지 주시하고 있다. 기술과 데이터는 준비되더라도, 진료지침 개정과 제도 정비, 산업계 협업 구조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기술과 윤리, 산업과 제도 간 균형을 맞추는 작업이 정밀영양 시대 한국형 만성질환 관리 모델의 성패를 가를 조건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