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는 외압에 굴복해선 안돼"…항소 포기 사태 후 인사에 김창진·박현철 사의
대장동 항소 포기 논란을 둘러싼 갈등과 법무부 인사가 정면으로 맞붙었다. 대검찰청과 법무부 지휘부를 향해 문제 제기를 해온 일선 검사장들이 한직으로 분류되는 보직으로 이동 발령을 받은 직후 사의를 밝히면서, 검찰 조직의 독립성과 인사권 행사를 둘러싼 공방이 거세지고 있다.
11일 법무부는 검찰 고위 간부 인사를 통해 김창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과 박현철 광주지방검찰청 검사장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 조치했다. 두 사람은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 당시 입장문을 내고 검찰 지휘부에 경위 설명을 요구했던 인물들이다.

인사 소식이 알려진 직후 김창진 검사장과 박현철 검사장은 곧바로 사의를 표명했다. 두 사람은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에 작별 글을 올리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법치주의 수호를 거듭 강조했다.
사법연수원 31기인 김창진 검사장은 이프로스 글에서 "대한민국 검사로 근무할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 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사건 수사에 관여하게 되면서 양쪽 진영으로부터 번갈아 정치검사라는 비판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이어 김 검사장은 "그 과정에서 권력자는 한결같이 검찰을 본인들의 손아귀에 넣으려고 하고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늘 자신과 측근을 지키는데 권력을 남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지적했다. 정치권력과 검찰의 긴장 관계를 언급하며 권력의 검찰 장악 시도를 비판한 셈이다.
그는 검사 업무의 속성상 외부 압력이 뒤따른다고 인정하면서도 단호한 태도를 주문했다. 김 검사장은 "검사가 결정하는 업무에는 늘 외압이 따르기 마련"이라며 "검사는 절대로 외압에 굴복하고 이용당해서는 안 된다. 정의로워야 하고 정의롭게 보여야 한다. 그것을 제대로 하라고 신분보장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검찰 조직에 남는 후배들에게도 메시지를 남겼다. 김 검사장은 "검사로서 이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참 값지고 멋있는 일"이라며 "검사님이 뚜벅뚜벅 걸어가실 길을 진심을 담아 응원한다"고 적었다. 인사에 항의하는 성격과 동시에 검찰 본연의 임무를 당부하는 내용으로 풀이된다.
검찰 내 대표적 기획통으로 꼽혀온 김 검사장은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검사로 임관한 뒤 법무부 검찰국 검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부부장 검사, 특수4부장, 1차장검사를 거쳤다. 이후 법무부 검찰국 형사기획과장과 검찰과장을 역임하며 인사와 예산을 담당하는 요직을 맡았고, 2024년 7월부터 부산지검장을 지냈다.
역시 사법연수원 31기인 박현철 검사장도 같은 날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오늘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는 "공직자로서 공익을 위해 일하고, 정의를 세우는 검찰의 일에 작은 힘을 보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늘 보람을 느꼈다"고 소회를 전했다.
고위 간부로서의 책임도 언급했다. 박 검사장은 "고위 간부가 된 뒤에는 후배들과 검찰 구성원들께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며 "구성원들의 명예와 양심을 지키며 일할 수 있는 직장이 되고 스스로 존재가치를 입증해내는 여건을 만들자고 다짐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 상황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그는 "그러나 이제 이 불민한 검사장이 마지막 소임마저 다 마치지 못한 채, 형사사법 체계 붕괴의 격랑 속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계신 검찰 가족들께 무거운 짐만 남기고 떠나게 됐다"고 했다. 현재 형사사법 시스템을 둘러싼 혼란과 조직 내부의 부담을 동시에 지적한 대목이다.
박 검사장은 떠나는 입장에서 남기는 당부도 남겼다. 그는 "깊이 죄송하다. 다만 한 가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라는 마음만은 남긴다"며 "대한민국 검찰이 끝까지 국민의 인권을 지키고, 범죄에 단호히 대응하며, 정의를 실현하는 든든한 기둥으로 남아주기를", "앞선 분들이 피땀 흘려 지켜온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흔들리지 않고 이어지기를"이라고 적었다.
박 검사장은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임관한 뒤 법무부 범죄예방기획과 검사, 대검찰청 검찰연구관을 거쳤다. 이후 대검찰청 정책기획과장과 대변인을 맡았고,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2부장·2차장검사, 서울고등검찰청 차장검사를 역임하는 등 기획과 수사 부서를 두루 거친 엘리트 코스를 밟아 왔다.
법무부는 이날 인사를 통해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에 비판적 입장을 보였던 인사들을 대거 교체했다. 김창진·박현철 검사장과 함께 박혁수 검사장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보임됐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통상 일선 수사나 지휘에서 한발 물러난 자리로 평가돼 왔다.
또한 대검찰청과 법무부를 강하게 비판해온 강유미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고등검찰청 검사로 보직이 변경됐다. 고검 검사 전보는 직급은 유지되지만, 종전 연구위원 직책과 비교해 위상 하락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강등 성격이라는 관측이 법조계 안팎에서 나온다.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와 관련해 일선 지검장들이 공개적으로 지휘부를 향해 경위 설명을 요구한 뒤, 해당 인사들이 인사에서 사실상 주변부로 밀려나자 검찰 내부에서는 인사권을 통한 메시지 보내기라는 해석이 뒤따르고 있다. 반대로 법무부는 대장동 사건 처리 과정에서 드러난 지휘 체계 혼선을 정비하기 위한 인사라는 논리를 내세울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치권에서도 이번 인사를 놓고 검찰 독립성과 인사권 행사의 적정성을 둘러싼 공방이 이어질 전망이다. 여당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면서도 지휘·감독 책임을 고려한 인사 필요성을 주장할 수 있고, 야당은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 제기에 대한 보복성 인사라고 규정하며 공세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
검찰 고위 간부 인사 이후 사의를 표한 검사장들의 발언이 외부로 확산되면서, 향후 검찰 내부 여론과 현 정부 사법·검찰 정책 전반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국회는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의 경위를 둘러싼 국정조사·청문회 필요성 논의와 함께 이번 인사의 적절성을 다루는 과정에 착수할 가능성이 있으며, 정치권은 검찰 인사와 사법 시스템을 둘러싸고 당분간 치열한 공방을 이어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