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탈모는 생존의 문제”…이재명, 탈모약 건보 적용 검토 지시

한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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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 치료와 건강보험 제도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재명 대통령이 탈모 치료약의 건강보험 적용 검토를 공식 지시하면서,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 재정 운용을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청년층 소외감과 정신건강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한 만큼 정치권과 정책 현장에서 적지 않은 파장을 부를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16일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탈모 치료약의 건강보험 적용 확대 문제를 직접 거론했다. 이 대통령은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탈모도 병의 일부 아니냐”고 물으며 건보 적용 가능성을 따져 물었다.

정은경 장관은 현행 제도의 한계를 먼저 설명했다. 정 장관은 “의학적 이유로 생기는 원형탈모 등은 치료를 지원하지만, 유전적 요인으로 생기는 탈모는 의학적 치료와 연관성이 떨어지기에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건강보험은 의학적 질환에 따른 탈모에 한정해 지원하고, 유전성 탈모는 비급여로 분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이 대통령은 기준의 정합성을 문제 삼았다. 그는 “유전병도 유전에 의한 것 아니냐”며 “이걸 병이라고 할 것이냐 아니냐의 개념 정리 문제 아니냐. 논리적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반문했다. 질환 정의와 급여 기준이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지 재검토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정 장관은 재차 현행 기준을 들어 설명했다. 그는 “증상이 있거나 생명에 영향을 주는 질환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라며 “미용적 이유에 대해서는 다른 부분도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건강보험이 생명·기능 손상을 중심으로 급여 대상을 정해 왔고, 미용 목적 치료 전반에 대해 비급여 원칙을 유지해 왔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탈모의 사회적 의미가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탈모가 옛날에는 미용 문제라고 봤는데 요즘은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무한대 보장이 너무 재정적 부담이 크다면 횟수나 총액 제한을 하는 등 검토는 해보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급여 범위와 상한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재정 부담을 조절하면서도, 일정 수준의 공적 지원은 제공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약가 인하 가능성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의료보험으로 지정하면 약값이 내려간다고 들었다”며 “그런 것까지 포함해서 검토를 한번 해 달라”고 했다. 건강보험 등재를 통해 제약사와 약가 협상을 진행하면 시장 가격이 조정될 수 있는 만큼, 실제 환자 부담을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도 함께 따져보라는 요구다.

 

정은경 장관은 업무보고 이후 브리핑에서 대통령 발언의 취지를 부연했다. 정 장관은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는 건 젊은 층의 취업 시 자신감에 대한 부분,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탈모 치료제 수요가 많은 것으로 아는데, 건강보험 급여 적용의 절차에 따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절차적 단계에 대한 설명도 나왔다. 정 장관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해야 하기 때문에 탈모의 급여 적용 기준과 타당성, 재정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며 “도입 필요성 검토나 재정 규모 추계에 시간이 오래 걸릴 거라 최종 적용까지 소요 시간은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건강보험 재정 추계와 우선순위 조정, 심의위원회 논의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탈모 치료약 건보 적용 검토를 주문한 배경으로 청년층의 소외감을 거론했다. 그는 “보험의 원리가 젊을 때 내고 나이 들어서 필요할 때 쓰는 것이긴 하지만, 당장 보험료만 내고 혜택을 못 받아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젊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보험료는 내는데 혜택이 없다, 나는 절실한데 왜 안 해주냐’는 청년 소외감이 너무 커져서 하는 얘기”라고 했다. 청년층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급여 항목을 확대해야 건강보험 제도에 대한 신뢰가 유지될 수 있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같은 맥락에서 비만 치료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가능성도 함께 물었다. 비만이 단순 체형 문제가 아니라 만성질환의 위험 요인이고, 특히 청년·청소년층 건강과도 연결돼 있는 만큼, 향후 탈모와 함께 청년 친화적 급여 항목으로 논의될 여지를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의 탈모 공약은 2022년 대선 과정에서도 주목받은 바 있다. 당시 그는 탈모 치료약의 건강보험 적용 확대를 약속해 탈모로 고민하는 유권자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다만 올해 대선에서는 같은 내용을 공약으로 다시 내걸지는 않았다.

 

이 대통령은 업무보고 자리에서 이런 정치적 배경도 직접 언급했다. 그는 “지금도 제게 ‘왜 약속 안 지키냐’고 하는데 ‘저번에 약속했지만 이번에는 안 했다’고 말하기 어려워 ‘아, 네’ 하고 넘어가곤 한다”고 말했다. 과거 공약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크고, 이를 둘러싼 정치적 부담도 적지 않다는 점을 솔직하게 드러낸 셈이다.

 

보건복지부는 청년층 전반을 고려한 건강보험 개편 방향을 함께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정경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탈모의 급여화 검토 주문은 청년층도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탈모뿐만 아니라 건강보험이 청년층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을 포괄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비만 치료 급여와 관련해서도 원칙을 설명했다. 정 정책실장은 “비만도 비만 관련 적응증에 대해 건강보험 적용 신청이 들어온다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제약사나 의료계에서 공식적인 급여 신청이 올라오면,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임상적 효과와 재정 영향 등을 따져 심의하겠다는 방침이다.

 

정치권에서는 탈모·비만 치료 건보 적용 논의가 향후 청년 표심과 직결된 쟁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탈모와 비만은 미용의 영역으로 취급돼 왔지만, 경쟁 심화와 취업난 속에서 청년층의 자존감과 정신건강, 노동시장 진입 가능성과 맞물린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돼 왔다. 건강보험 재정 여건이 빠듯한 상황에서 급여 항목을 어디까지 넓힐지, 세대 간 형평성을 어떻게 맞출지에 대한 공론화가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다만 건강보험 재정 당국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재정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탈모·비만 치료제는 잠재 수요가 방대하고, 장기 복용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 급여 확대가 재정에 상당한 압박을 줄 수 있어서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논의 과정에서는 급여 대상, 약제 종류, 투약 기간, 소득 수준 등에 따른 차등 지원 방식 등이 복합적으로 검토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대통령 지시에 따라 보건복지부와 관계 부처,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논의를 거쳐 탈모·비만 치료에 대한 건보 적용 필요성과 범위를 단계적으로 검토해 나갈 계획이다. 국회 역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재정 건전성 사이의 균형을 놓고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보여, 향후 정기 국회에서는 관련 법·제도 정비를 둘러싼 공방이 거세질 전망이다.

한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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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대통령#보건복지부#탈모치료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