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권 조작·셀프심사까지"…지방의회 해외출장, 3년간 355억 쓰고 비위 속출
국외출장을 둘러싼 지방의회와 행정안전부의 충돌 지점이 다시 드러났다. 각급 지방의원들이 사실상 외유성 출장을 반복해 온 정황이 구체적으로 확인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선제 규제 카드가 꺼내졌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행정안전부는 26일 전국 243개 광역·기초의회를 대상으로 최근 3년간 공무 국외출장 실태를 점검한 결과를 내놓고, 임기 만료 1년 전부터 지방의회 의원의 단순 연수성 해외출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의 지방의회의원 공무국외출장 규칙 표준 개정안을 전국 지방의회에 권고했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지방의회 국외출장은 915건이었다. 이 기간 총 1만524명이 61개국을 방문했고, 약 355억원이 예산으로 지출됐다. 그러나 방문국가 61개 가운데 20개국에 전체 출장의 80%가 집중되면서, 특정 인기 지역 중심으로 관행적 출장이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점검 결과에 따르면 항공권 조작, 출장 셀프심사, 기부행위 등 공직선거법 위반, 허위 비용청구까지 각종 비위와 불법 행위가 광범위하게 드러났다. 특히 항공권 관련 비위가 두드러졌다. 지방의회나 여행사가 실제보다 높은 금액으로 항공료를 기재해 차액을 남기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행정안전부는 157개 지방의회에서 항공권 조작 사례 405건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실제 항공료 대비 과다청구 금액은 약 18억8천만원에 달했다. 이 비용은 모두 지방재정, 다시 말해 세금으로 충당됐다.
선거법 위반 소지도 문제로 떠올랐다. 지방의회 의원은 선거구민에 대한 기부행위를 할 수 없지만, 의회 직원의 여행경비를 의원이 대신 납부한 사례가 79개 지방의회에서 117건 확인됐다. 행정안전부는 이른바 출장비 대납 규모를 약 3억5천만원으로 추정했다.
출장 과정에서의 허위청구도 광범위했다. 차량·시설임차, 강연, 워크숍 등 실제로는 이루어지지 않은 활동을 진행한 것처럼 문서를 꾸며 비용을 과다 청구한 사례가 368건 적발됐다. 형식상 공무를 내세웠지만 실질 내용은 빈약하거나, 서류상 행사 자체가 허구에 가까운 경우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심사 절차에서도 이해충돌 문제가 드러났다. 국외출장 심사위원회에 출장자가 직접 참여해 자신의 출장 건을 심사한 이른바 출장 셀프심사 사례가 48개 지방의회에서 79건 적발됐다. 이 가운데 17건은 출장자가 회의 참석을 넘어 출장 의결서에 직접 서명한 경우였다. 행정안전부는 이해충돌방지법상 회피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체재비 과다 지급 관행도 확인됐다. 방문지 급지를 실제보다 높게 분류하거나, 감액 사유가 분명한데도 이를 반영하지 않는 방식이었다. 행정안전부는 115개 지방의회에서 체재비를 과지급한 사례 243건을 적발했다고 전했다.
출장비를 사적 소비에 사용한 정황도 드러났다. 관광 목적의 가이드 비용과 입장료, 주류, 숙취해소제, 영양제 등 출장비로는 구입할 수 없는 물품을 예산으로 처리한 사례가 80개 지방의회에서 총 2억원 규모로 확인됐다. 공적인 출장 경비가 사실상 여행 경비와 유흥비로 쓰인 셈이다.
국외출장에 동행한 기자에게 숙박과 식사를 제공해 청탁금지법을 위반한 사례도 있었다. 해당 건의 경우 과태료가 부과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의회의 국외출장이 언론 대응과 결부되면서 로비성 지원으로 번졌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행정안전부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통상 임기 말에 늘어나는 외유성 출장을 차단하기 위한 차원에서 제도 개선에 나선 것으로 설명했다. 그동안 임기 종료를 앞둔 시점에 각 지방의회가 뒤늦게 해외 연수 일정을 몰아 잡는 관행이 반복돼 온 만큼, 이번 조치가 이를 겨냥했다는 해석이다.
정부는 지방의회의원 공무국외출장 규칙 표준 개정안을 통해 임기 종료 1년 전부터 의원의 국외출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불가피한 출장에 대해서만 엄격한 사전 심사를 거치도록 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또 기준을 따르지 않는 지방의회에는 예산 감액 등 실질적 제재를 검토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규칙 표준 개정안을 위반할 경우 지방교부세와 국외 여비를 감액하는 등 예산상 페널티를 부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지방의회가 자체 규칙 개정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경우, 재정 수단을 활용해 압박 수위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다만 지방의회 일각에서는 해외 정책연수와 국제 교류의 필요성을 이유로 일률적 제한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일부 지방의회는 해외 선진도시 벤치마킹과 국제 네트워크 구축 사례를 성과로 제시해왔다.
그러나 국민적 시선은 냉랭하다. 반복된 외유성 출장 논란에 더해 구체적인 항공료 부풀리기, 허위청구, 셀프심사 사례까지 드러나면서 지방의회에 대한 신뢰가 크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 공천 과정에서 국외출장 비위가 검증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행정안전부는 각 지방의회와 협의를 이어가며 규칙 표준 개정안의 수용 여부를 점검하고, 추가 점검과 제도 보완 방안도 검토할 방침이다. 정치권은 지방의원 해외출장 문제를 둘러싸고 책임 공방을 벌이면서도, 다음 국회 회기에서 제도 개선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