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500억달러 대미 투자 구체화 압박”…한미 관세협상 실무협의, 이익배분·농산물 개방 놓고 격돌
한미 양국이 대규모 대미 투자와 농축산물 시장 개방 등을 두고 치열한 입장차를 드러냈다. 최근 미국 워싱턴DC에서 진행 중인 관세협상 실무협의에서 관세 인하 조건과 투자 이익 배분 등 첨예한 쟁점을 놓고 양측이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투자 패키지의 구체화, 자동차 관세 인하 시점, 농산물 검역 등 각 현안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으면서 정치권과 경제계는 향후 한미 관계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통상 당국에 따르면, 한국 통상 실무 대표단은 최근 비공개로 워싱턴DC를 방문해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 상무부 등과 후속 협의에 돌입했다. 7월 30일 관세 협상이 일단락된 후에도 구체 협상 결과물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한국은 3천500억달러(약 486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와 1천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 구매를 약속했고, 관세도 15%로 인하돼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 등 주요 품목의 관세 인하는 미국 내 행정절차를 이유로 늦춰지고 있다. 미국은 관세 인하 선제 조치의 전제조건으로, 한국이 약속한 대미 투자와 농산물 검역 등 이행을 요구하며 협상 지렛대로 삼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실제로 한국 정부가 산업은행·수출입은행·무역보험공사에 1조9천억원 이상 예산을 편성하는 등 실질적 투자 이행에 나선 가운데, 미국 측은 투자 성격에서도 "지분 투자"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핵심 쟁점은 대미 투자 패키지 가운데 투자 방식과 이익 배분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는 5%로 한정하고, 나머지는 보증 등 간접 지원으로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선호하지만 미국은 고비율의 지분 투자를 집요하게 요구한다. 한·미 양국은 투자이익 배분에서도 입장차가 뚜렷하다. 미국은 투자 이익의 90%를 보유하겠다는 입장이며, 한국은 "90%를 재투자하는 것"으론 다르게 해석한다. 일본의 합의 사례처럼, 수익 분배 방식에서 한국이 어떤 결과를 받아낼지도 주목된다.
민감한 농산물 분야 역시 한미 협상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미국은 사과, 배 등 과채류 검역 절차와 관련해 빠른 시간표 제시를 촉구하며, 사실상 미국산 농산물의 추가 수입 확대를 압박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쌀·소고기 등은 합의 대상 제외를 강조하지만, 검역 속도 가속화가 현실화되면 실질적 농산물 개방 효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이날 범부처 통상추진위 회의에서는 통상·외교·농축산·디지털 등 다양한 현안을 놓고 의견 조율이 진행됐다. 구글과 애플이 제기했던 정밀지도 반출 등 디지털 규제 완화 문제도 테이블에 오른 것으로 확인됐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국익 극대화와 민감 현안까지 아우르는 방향으로 협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협상 일정도 관심사다. 실무 협의가 진척되면,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장관급 인사들이 직접 미국을 방문해 최종 협의를 마무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정치권과 업계는 실무협의가 마무리되면 한미 경제협력 구조가 재편될 수 있다며, 정부의 국익 수호력과 이해 대변 역할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정치권은 한미 실무협의 결과가 투자·수출·농산물 시장에 직결되는 만큼 양국 이익의 균형점을 찾기 위한 본격 협상이 막바지로 접어들었다고 평가한다. 정부는 국익 극대화와 산업계 부담 최소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도록 최종 위임 협상에 주력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