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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기술수출 했는데”…약가 인하 변수에 K바이오 긴장

전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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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바이오의 기술 수출이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며 제약바이오 산업이 국가 전략 산업 위상에 올라서고 있다. 플랫폼 기술과 항체약물접합체 ADC, 퇴행성뇌질환 신약 후보가 글로벌 빅파마와의 대형 계약을 이끌어내면서 기술주권과 수출산업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키웠다. 그러나 내년부터 정부가 추진하는 약가 인하와 제도 개편이 현실화되면, 국내 기업의 연구개발과 설비 투자, 고용까지 연쇄 타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정책 변곡점을 K바이오 글로벌 도약을 가를 ‘약가 경쟁력 시험대’로 보는 시각도 나온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집계에 따르면 12월 30일 기준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올해 누적 기술 수출 규모는 20조3898억원에 달한다. 금액이 공개되지 않은 거래를 제외한 수치로, 종전 최대였던 2021년 13조8047억원을 크게 뛰어넘었다. 글로벌 제약사와의 기술이전 계약이 잇따르면서 K바이오의 기술 경쟁력이 수치로 증명된 셈이다.

올해 기술 거래를 견인한 축은 여러 질환에 공통 적용 가능한 신약 개발 플랫폼, 암세포를 정밀 타격하는 ADC, 알츠하이머 등 퇴행성뇌질환 분야였다. 플랫폼 기술은 특정 한 개의 약이 아니라 다양한 질환에 활용 가능한 공통 기반 기술을 지칭한다. 한 번 기술과 시스템을 구축해 두면 컴퓨터 탐색과 생물학 실험을 결합해 여러 신약 후보물질을 빠르게 추려낼 수 있어, 개발 기간과 비용을 동시에 줄이는 수단으로 평가된다.

 

대표 사례가 에이비엘바이오다. 이 회사는 뇌혈관장벽을 뚫고 약물을 뇌 안으로 운반하는 그랩바디 B 플랫폼을 기반으로 퇴행성뇌질환 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뇌혈관장벽은 유해 물질로부터 뇌를 보호하는 장치지만, 동시에 약물 전달을 가로막는 난제로 꼽힌다. 에이비엘바이오의 플랫폼은 이 장벽을 선택적으로 통과하도록 설계돼 일라이 릴리와 지난달, GSK와 4월에 잇따라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글로벌 시가총액 상위 제약사와의 연속 계약은 플랫폼 기술의 범용성과 데이터 축적 능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알테오젠은 정맥주사로 투여하던 바이오 의약품을 피하주사 제형으로 바꾸는 ALT B4 기술을 앞세워 3월 아스트라제네카와 기술 이전 계약을 맺었다. 환자 입장에서는 투약 시간을 줄이고 병원 방문 부담을 낮추는 방식이라 실사용 가치가 크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기존 제품 라인업의 제형을 바꿔 특허 수명을 연장하고 시장을 방어하는 수단이 된다. 플랫폼 하나가 여러 블록버스터 약물의 제형 전환에 활용될 수 있어 파이프라인 확장성도 높다.

 

유전자 치료 플랫폼 기업 알지노믹스 역시 5월 일라이 릴리에 RNA 치환효소 기반 RNA 편집 유전자 치료제 기술과 원형 RNA 플랫폼을 이전했다. RNA 서열 일부를 정교하게 바꾸는 편집 기술은 특정 유전 질환의 원인 변이를 직접 교정하는 전략으로, 차세대 유전자 치료 분야에서 각광받고 있다. 원형 RNA는 선형 RNA 대비 안정성이 높고 단백질 발현 기간이 길어 백신과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에 유리한 것으로 평가된다.

 

항암 분야에서는 ADC 기술 수출이 두드러졌다. ADC는 암세포만 겨냥하는 항체에 강력한 독성 약물을 결합해 정상세포 손상을 최소화하고 암세포를 유도미사일처럼 정밀 사멸시키는 치료 기술이다. 10월 에임드바이오는 베링거인겔하임과 총 1조4000억원 규모의 ADC 물질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ADC는 항체 설계, 링커 안정성, 약물 탑재 비율 등 공정과 소재 기술 난도가 높아 글로벌 시장에서도 선점 경쟁이 치열한 영역이다. 한국 기업이 이 분야에서 다수의 후보 물질과 플랫폼을 확보했다는 점은 항암 시장에서 K바이오의 입지를 넓히는 기반이 된다.

 

퇴행성뇌질환 분야도 대형 거래가 이어졌다. 아델과 오스코텍은 사노피와 알츠하이머병 치료 물질 ADEL Y01의 세계 독점 개발과 상업화 권리를 이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1조5300억원 수준으로, 실패율이 높은 알츠하이머 임상 분야에서 글로벌 톱티어 제약사가 한국 기술을 선택했다는 상징성이 크다. 아리바이오는 치매 치료 물질 AR1001을 기반으로 아랍에미리트 국부펀드 ADQ 산하 아르세라와 중동과 중남미, 아프리카, 독립국가 연합 지역에 대한 독점 판매권 계약을 6억 달러, 약 8200억원 규모로 성사시켰다. 서구 중심이던 신약 유통 구조에서 중동과 신흥시장 자본이 K바이오에 손을 내밀었다는 점에서 글로벌 유통망 다변화 사례로 꼽힌다.

 

이처럼 플랫폼과 고난도 신약기술이 결합된 기술 수출이 늘면서 K바이오는 신약개발 패러다임에서 파트너 중심 모델을 확장하고 있다. 후보물질 초기 단계에서 빅파마와 협력해 공동개발과 마일스톤, 로열티 수익을 얻는 구조다. 개발 리스크를 분산하면서도 글로벌 임상과 허가, 판매망을 활용해 상용화 속도를 높일 수 있어, 자본력에서 열세인 국내 기업들에게 현실적인 전략이다. 동시에 다수의 기술 계약으로 확보한 계약금과 마일스톤은 후속 파이프라인 RND 재투자의 재원이 된다.

 

그러나 내년부터 예고된 약가 인하와 제도 개편이 이 같은 선순환 구조를 흔들 수 있다는 경고가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정부는 제네릭 약가 조정 등 약가제도 개편안을 통해 건강보험 재정 효율화를 추진 중이다. 핵심 쟁점은 제네릭 약가를 현재 오리지널 대비 53.55퍼센트에서 40퍼센트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이다. 가격 인하 폭이 크고 적용 대상이 광범위해 제약 산업 전체 수익 구조를 바꾸는 요인으로 받아들여진다.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는 29일 제약바이오기업 59곳 최고경영자를 대상으로 한 긴급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제네릭 약가를 40퍼센트로 인하할 경우 이들 기업의 연간 매출손실이 총 1조2144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기업당 평균 매출손실은 233억원 수준이다. 응답 기업들은 영업이익이 절반 이상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으며, 충격의 대부분은 대형사보다 제네릭 의존도가 높은 중견·중소기업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했다.

 

투자 축소도 불가피한 수순으로 제시됐다. 조사에 따르면 59개 기업의 내년 연구개발비는 2024년 대비 25.3퍼센트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고, 설비 투자는 32퍼센트 감소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신약개발과 생산 인프라 고도화가 동시에 속도를 잃을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바이오의약품은 공정이 복잡하고 품질관리가 까다로워 초기 설비 투자가 필수적인데, 투자 여력이 줄어들면 바이오시밀러와 차세대 바이오 신약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고용 측면에서도 조정 압력이 가시화되고 있다. 약가 개편안이 원안대로 시행될 경우 응답 기업들은 총 1691명을 감축하겠다고 답했다. 기존 인원 대비 9.1퍼센트 규모다. 연구개발과 생산, 영업 전 부문에서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라, 단기 비용 절감은 가능하겠지만 중장기 기술 경쟁력과 산업 생태계 유지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제약산업 구조를 감안하면 제네릭 매출과 신약개발 간 연결고리는 더 크다. 국내 다수 제약사는 제네릭과 개량신약으로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위험도가 높은 신약 파이프라인에 투자하는 구조다. 가격 경쟁이 심한 제네릭 시장에서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되면, 위험자산인 신약 개발 예산이 우선적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설비 투자를 줄일 경우 향후 위탁생산과 글로벌 파트너십에도 제약이 생긴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약기업이 신약 개발에 투자할 수 있는 근원은 제네릭이라며 제네릭 매출이 곧 투자로 이어지는 현 산업 구조 속에서 매출에 직격타를 가하는 약가 인하는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축소, 고용 감축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K제약바이오가 글로벌로 도약할 갈림길에 선 상황에서 산업 경쟁력을 오히려 축소하는 결과로 귀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기술 수출과 내수 약가정책 간 균형을 맞추는 전략이 중요해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약가 규제를 통해 재정 부담을 관리하는 동시에, 혁신 신약과 희귀질환 약에 대해서는 프리미엄 가격과 세제 인센티브를 제공해 기업의 혁신 동기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 역시 약가 재평가를 정기적으로 실시하지만, 혁신적 기술을 가진 신약에는 보상 구조를 차별화해 연구개발 투자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K바이오가 글로벌 기술수출 경쟁에서 존재감을 키우려면 유사한 혁신 보상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결국 K바이오의 역대급 기술 수출 실적이 일시적 성과에 머무를지, 지속 가능한 성장 궤도로 이어질지는 내년 약가제도 개편의 방향과 속도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계는 이번 개편이 건강보험 재정 관리와 혁신 투자 유인이라는 두 목표를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따라, K바이오의 글로벌 신약 경쟁력이 크게 갈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산업계는 이번 기술 성장의 성과가 약가정책과 제도 환경 속에서 실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전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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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바이오#제네릭약가인하#기술수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