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칩 클러스터로 승부”…화웨이, 내년 한국 공략 가속
화웨이가 AI 칩과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스토리지를 묶은 통합 솔루션으로 내년 한국 인공지능 인프라 시장에 본격 진입한다. 엔비디아 중심으로 재편된 글로벌 AI 컴퓨팅 환경에서 국내 기업과 기관에 또 다른 선택지를 제시해, AI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인프라 경쟁 구도에 변화를 노린다는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미국 수출 규제 속 자체 AI 칩 생태계를 키워 온 화웨이가 한국을 테스트베드이자 전략 거점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하고 있다. AI 칩과 운영체제,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묶은 패키지 전략이 실제 수요를 확보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인다.
한국화웨이는 26일 열린 화웨이 미디어데이에서 내년 한국 시장 공략 전략을 공개하며, 자사 AI 칩 어센드 950을 포함한 AI 데이터센터 솔루션을 국내에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발리안 왕 한국화웨이 최고경영자는 내년 중 AI 칩 어센드 950을 한국에서 공식 출시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클러스터형 AI 인프라 패키지를 공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어센드 시리즈는 화웨이가 자체 설계한 데이터센터·고성능 컴퓨팅용 AI 칩으로, 현재 중국 내에서 생성형 AI, 자율주행, 클라우드 서비스용 가속기로 활용 범위를 늘려가고 있다.

화웨이는 어센드 950을 개별 칩이나 단일 서버 형태로 판매하기보다, 네트워크 노드와 스토리지, 관리 소프트웨어까지 통합한 클러스터 단위로 제공하는 방식을 한국에서도 적용할 방침이다. 왕 CEO는 AI 칩을 낱개로 판매하기보다 클러스터 형태로 공급하는 것이 타사 대비 차별화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이 전략이 GPU 한 개당 가격과 성능을 두고 경쟁하는 대신, 전체 데이터센터 수준에서 처리량, 전력 효율, 구축 기간을 한 번에 제시해 총소유비용을 낮추려는 시도로 보고 있다.
클러스터 공급 방식의 핵심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수직 통합 구조다. 화웨이는 AI 서버와 가속기 칩, 고속 스위치, 스토리지, 운영관리 도구를 하나의 패키지로 설계해, 대형 모델 학습과 추론에 최적화된 구성을 제공하겠다고 설명한다. 특히 어센드 칩과 결합된 자사 AI 프레임워크, 개발 툴 체인이 함께 제공될 경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간 최적화를 통해 동일 전력 대비 연산 성능을 끌어올릴 여지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존 엔비디아 GPU 기반 시스템 대비 성능과 에너지 효율, 모델 포팅 난이도 차이가 실제 경쟁력을 가를 변수로 거론된다.
엔비디아 기반 GPU 클러스터가 사실상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화웨이가 제시하는 통합형 솔루션은 국내 시장에도 가격과 조달 리스크 측면에서 새로운 옵션을 제시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미국 수출 규제와 공급 제약으로 엔비디아 고성능 GPU 확보가 쉽지 않은 가운데, 중국산 AI 칩과 클라우드 인프라를 도입해 리스크를 분산하려는 수요가 일부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 적용을 위해서는 데이터센터 사업자와 통신사, 대형 클라우드 고객이 화웨이 생태계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지가 관건으로 지목된다.
왕 CEO는 고객사가 보다 쉽게 AI를 응용할 수 있도록 엔드투엔드 형태의 솔루션을 갖추고 있다고 소개했다. 어센드 칩과 서버, 네트워크, 스토리지뿐 아니라 AI 개발 환경과 운영 소프트웨어까지 통합 제공할 수 있어, AI 인프라를 처음 구축하는 기업들도 빠르게 자체 서비스를 올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구체적인 고객사와 협력사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한국 내 여러 기업과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AI 인프라 구축 시 엔비디아 외 선택지를 확보하도록 돕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다만 국내 비즈니스 모델과 판매 채널에 대해서는 아직 유동적이다. 한국화웨이는 국내 총판 체계를 둘지, 통신사나 데이터센터 사업자와 손잡고 공동 솔루션 형태로 나갈지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대형 클라우드 사업자와의 협업을 통해 어센드 기반 AI 인스턴스를 제공하거나, 특정 산업군 맞춤형 프라이빗 클라우드 형태로 패키지를 제안하는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어센드 950의 한국 출시 계획은 글로벌 로드맵의 일부로, 화웨이는 2026년을 목표로 다수 국가에서 어센드 기반 AI 클러스터를 동시에 선보일 방침이다. 중국 내에서 확보한 대형 모델 학습 레퍼런스와 통신장비·클라우드 사업 경험을 해외 데이터센터 사업으로 확장해, 미국·대만 중심의 AI 인프라 공급망에 균형추를 만들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미국 규제로 미국산 GPU 도입이 제한된 국가를 중심으로, 자국 데이터 주권과 인프라 주권을 강조하는 정부와 기업을 공략하는 행보가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소프트웨어와 운영체제 생태계 측면에서도 화웨이는 개방 전략을 내세웠다. 회사는 하모니OS를 예로 들며, 한국 시장에 개방형 생태계 환경을 제공하고 국내 기업 및 파트너사와 함께 응용 소프트웨어와 디바이스 생태계를 키우겠다는 계획을 소개했다. 하모니OS는 스마트폰에서 출발했지만 스마트홈, 산업용 단말,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등 다양한 기기에 확장 가능한 분산형 운영체제로 설계돼, 여러 기기를 하나의 시스템처럼 연동하는 것이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화웨이는 하모니OS의 소유권과 운영을 화웨이가 아닌 오픈소스 커뮤니티와 관련 기관이 담당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화웨이는 오픈소스 코드와 개발 자료를 제공하는 역할에 집중하며, 한국 개발자와 기업이 이를 활용해 자체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왕 CEO는 이러한 시스템 환경 개방이 한국 기업들의 자체 생태계 조성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모니OS를 앞세운 스마트폰 사업 재개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왕 CEO는 하모니OS는 스마트폰뿐 아니라 스마트홈 등 다양한 기기에 적용이 가능하지만, 2026년 한국 시장을 대상으로 한 스마트폰 출시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네트워크 장비와 기업용 솔루션, 데이터센터 인프라, IoT 기기 등 B2B·B2G 영역에 집중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ESG와 인재 양성 전략도 한국 시장에서의 중요한 축으로 제시됐다. 에릭 두 한국화웨이 부사장은 화웨이가 매년 매출의 25퍼센트 이상을 연구개발에 재투자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쌓인 기술 지식과 노하우를 플랫폼 역량으로 전환해 한국 ICT 인재 양성에 기여하겠다고 설명했다. 단순 이론 교육이 아닌 실제 통신망 구축, 클라우드 운영, AI 모델 개발과 같은 실전 중심 교육 과정을 제공해 기업이 요구하는 수준의 인력을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한국화웨이는 2015년부터 글로벌 ICT 인재 육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난 10년 동안 한국에서 약 7000명의 학생을 지원했다. ICT 아카데미, 각종 기술 경진대회, 시드 포 더 퓨처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대학과 협력해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화웨이 장비와 클라우드 환경에 직접 접속해 실습하는 형태의 교육이 병행된다. 회사는 앞으로도 이들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가시적인 프로젝트 성과를 만들어 한국 ICT 생태계 전반에 기여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왕 CEO는 기회 확대, 실전 강화, 연결 심화를 키워드로 한국 인재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화웨이 단독으로는 인재 생태계를 완성할 수 없으며, 대학과 파트너 기관, 참여자들이 함께 참여해야 현실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화웨이가 AI 칩과 데이터센터 솔루션, 오픈소스 운영체제, 인재 프로그램을 묶은 장기 전략으로 한국 시장에서 신뢰를 쌓을 수 있을지에 한국 ICT 산업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산업계는 화웨이의 AI 클러스터 전략이 실제 한국 시장에 안착해 엔비디아 중심 구조에 균열을 낼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