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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바이오테크 성장동력으로”…한국애브비·보산진 MOU

정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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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제약기업 한국애브비가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손잡고 국내 바이오테크 기업의 성장 지원에 나선다. 정부가 바이오 헬스를 국가 신성장동력으로 삼는 가운데, 양 기관은 오픈 이노베이션 기반 협력 모델을 통해 국내 기술을 글로벌 신약개발 파이프라인으로 편입시키는 ‘연결 플랫폼’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협력이 국내 초기 바이오테크가 겪는 임상·사업화 ‘데스밸리’를 줄이는 시험대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애브비는 18일 자사 본사에서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오픈 이노베이션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번 협약은 글로벌 빅파마 수준의 연구개발·임상·허가 역량을 가진 다국적 제약사와, 국내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을 담당하는 공공기관이 공식적인 파트너십을 맺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단순 단발성 공동연구가 아닌, 국내 바이오테크 발굴과 스케일업을 위한 상시 협력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방향이다.

양 기관은 먼저 국내 바이오테크 기업의 혁신 기술을 실제 치료 옵션으로 연결하기 위한 멘토링과 전문지식 제공에 집중한다. 한국애브비가 다수의 글로벌 블록버스터 의약품을 개발하며 축적한 임상 설계, 규제 대응, 시장 진입 전략 등을 공유하고, 보산진은 보건의료 R D 지원사업과 정책 네트워크를 통해 국내 업체를 뒷받침하는 구조다. 특히 후보물질 발굴 이후 비임상·임상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자금·전략 공백을 글로벌 제약사와 공공기관이 함께 메우겠다는 취지다.

 

협약의 핵심 프로그램은 ‘보산진 애브비 바이오테크 이노베이터 어워드’다. 양 기관은 면역학, 종양학, 신경과학, 안과, 메디컬 에스테틱, 스페셜티 의약품 등 애브비의 핵심 연구 분야를 중심으로 최첨단 플랫폼 기술이나 유망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국내 바이오테크를 선발할 계획이다. 선정 기업에게는 상금성 지원을 넘어 글로벌 임상 전략 자문, 기술이전과 공동개발 구조 설계, 지식재산권 전략 컨설팅 등 실질적인 사업화 지원이 제공될 전망이다.

 

보산진과 한국애브비는 2026년 열리는 바이오 코리아에서 첫 이노베이터 어워드를 시상한다는 일정도 제시했다. 바이오 코리아는 국내외 제약바이오 기업과 투자자가 대거 모이는 글로벌 행사로, 이 무대에서의 수상은 해외 빅파마와 벤처캐피털에 기술력을 알릴 수 있는 창구가 된다. 그동안 국내 스타트업이 개별적으로 해외 파트너를 찾아 나서야 했던 구조에서, 공공기관과 글로벌 제약사가 ‘공인된 추천’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다.

 

양 기관은 교류 확대 프로그램도 병행한다. ‘애브비 파트너링 데이’를 통해 한국애브비 연구개발 및 사업개발 담당자와 국내 바이오테크 기업의 1 대 1 기술 미팅을 정례화하고, ‘보산진 글로벌 오픈 이노베이션 위크’와 연계해 해외 애브비 네트워크에 국내 기업을 소개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이를 통해 유망 파이프라인은 조기 라이선스 아웃이나 공동개발로 이어지고, 반대로 국내 기업은 애브비의 글로벌 임상에 참여하는 구조도 기대된다.

 

한국애브비는 이미 미국, 유럽, 캐나다, 호주, 일본, 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초기 바이오테크와 대학 연구실의 기술을 라이선스 인하거나 지분 투자 형태로 확보하고, 내부 R D 조직과 연계해 대형 임상과 허가까지 끌고 가는 모델이다. 이번 협약은 이러한 글로벌 경험을 국내 혁신 생태계에 맞게 적용하겠다는 선언으로 해석된다. 특히 규제 환경과 보험 제도가 상이한 한국 시장 특성을 반영해, 국내 기업이 글로벌 허가 전략을 설계하는 데 필요한 ‘로드맵’을 함께 만드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 입장에서는 글로벌 빅파마와의 전략적 파트너십 창구가 하나 더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그동안 많은 바이오테크가 기술 가치에 비해 낮은 밸류에이션으로 라이선스 아웃을 체결하거나, 임상 2상 이후 자금난으로 파이프라인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공공기관이 참여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구조가 마련되면, 기술 검증과 사업성 평가 과정이 더욱 투명해지고 협상력도 일부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빅파마와 바이오벤처 간 오픈 이노베이션 경쟁이 치열하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대형 제약사가 연간 수십 건의 제휴 계약과 인수합병을 통해 신약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고 있으며, 일본도 정부 차원의 오픈 이노베이션 펀드와 연계된 제약 벤처 생태계를 키우고 있다. 한국은 우수한 기초과학 인력과 정부 R D 투자를 바탕으로 후보물질 발굴 역량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후기 임상과 글로벌 상업화 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번 협력 모델은 그 격차를 좁히기 위한 시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기술이전과 공동개발 과정에서의 수익 배분 구조, 데이터 공유 범위, 지식재산권 귀속 문제 등은 향후 세부 협약에서 조율이 필요하다. 공공기관이 개입하는 만큼, 특정 기업에 대한 과도한 지원이나 이해상충 리스크를 막기 위한 투명한 심사 기준과 사후 평가 체계도 요구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오픈 이노베이션이 ‘실적 중심 행사’에 머물지 않고, 실제 임상 단계와 시장 진입까지 이어지는지에 따라 성공 여부가 갈릴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국애브비 강소영 대표이사는 이번 협약이 국내 바이오테크 기업이 보유한 혁신 기술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지원하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차순도 원장은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기술력에 더해 글로벌 제약사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산업계는 양 기관의 오픈 이노베이션 모델이 국내 바이오테크의 성장 사다리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정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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