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몸 곳곳에 구더기와 상처”…육군 부사관의 방치 의혹으로 본 가정 내 감금과 유기
30대 육군 부사관이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앓던 아내를 사실상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으며, 가정 내 감금·유기 문제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유족은 숨진 여성의 발견 당시 모습과 병원에서의 상태를 일부 공개하며 군과 수사당국에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경기 파주시 육군 기갑부대에서 복무 중인 부사관 B씨는 지난 17일 아내 A씨가 의식이 없다며 처가에 연락했고, A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튿날인 18일 사망했다. A씨 부부는 1988년생 초등학교 동창으로, 결혼 10년 차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이 병원에서 마주한 A씨의 상태는 심각했다. 온몸에 오물이 묻은 채 다리는 펴지지 않을 정도로 굳어 있었고, 피부는 “사람이 썩었다”는 표현이 나올 만큼 손상돼 있었다고 전해졌다. A씨 언니는 “종아리가 딱딱하게, 패일 정도로 썩어 있었고 구더기도 있었다. 오른쪽 겨드랑이에는 구멍이 있었다”고 말했다.
119 구조대가 촬영한 사진에는 A씨가 오물과 뒤섞인 채 1인용 소파에 버려지듯 기대 있는 모습이 담겼다. A씨가 누워 있던 소파에는 시커먼 자국이 넓게 눌어붙어 있었고, 주변에는 각종 쓰레기가 어질러져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은 이 장면이 장기간 방치 정황을 보여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B씨는 그동안 처가에 자주 연락해 A씨의 상태를 알리며 “잘 돌보고 있다”는 취지로 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A씨 언니는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전화했다”며 “월요일에 응급실에 갔는데, 그 전날인 일요일에도 전화해서 ‘지금 ○○가 수프 먹고 싶다고 해서 수프 사러 가는 중’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유족에 따르면 B씨는 A씨가 공황장애로 심각한 대인기피증을 겪고 있다며 가족들의 방문을 계속 막아 왔다. “사람이 집에 오면 죽겠다고 한다”는 말을 반복하며 직접 만나는 것을 제한했다는 것이다. 유족은 이런 상황이 A씨의 실제 건강 상태를 외부에서 확인하기 어렵게 만든 ‘사실상 감금’ 구조였다고 보고 있다.
A씨의 의료 기록에서도 관리 공백이 드러났다. 유족 측 확인 결과 A씨의 마지막 진료일은 지난해 6월 1일이었으며, 이후 별다른 치료나 상담을 받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호소하던 환자가 1년 반 가까이 의료 체계 밖에 방치된 셈이다.
B씨는 같은 집에 거주하면서도 아내의 상태가 심각한지 몰랐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A씨 언니는 “(B씨가) ‘음료수 쏟은 건 줄만 알았다. (냄새는) 아내가 머리 아플 정도로 페브리즈를 뿌리고 인센스 스틱을 피워서 몰랐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유족은 이런 설명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며, 의도적 방치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경기 일산서부경찰서는 지난 17일 B씨를 아내 유기 혐의로 긴급체포해 군사경찰에 신병을 넘겼다. 사건 관할은 군으로 이관됐으며, 육군수사단은 B씨를 구속해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군 관계 기관은 부사관의 평소 근무 태도, 생활 습관, 주변 진술 등을 함께 확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은 “단순 유기가 아니라 사실상 방치에 의한 살인”이라며 강도 높은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특히 정신질환을 이유로 가족·지인의 접근을 차단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외부의 도움을 받을 통로가 완전히 막혔는지, 군과 지역사회가 위기 신호를 포착할 기회는 없었는지 규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방치, 유기, 사실상 감금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신건강 문제를 가진 배우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외부 접촉을 차단할 경우, 학대와 방치가 은폐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육군과 수사당국은 국방부 지침상 군인 가족 학대·사망 사건에 관한 절차를 점검하는 한편, 사망 경위, 치료 중단 시점, 생활 환경, B씨의 구체적 행위와 인식 정도를 중심으로 법적 책임 범위를 가를 계획이다. 향후 부검 결과와 추가 진술, 디지털 자료 분석 등이 수사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군과 경찰의 조사 결과에 따라 가정 내 취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군 조직의 관리·보고 체계 보완, 정신질환 환자에 대한 장기 방치 방지 대책, 가족·지인 신고 채널 강화 요구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건의 구조적 책임과 제도적 허점을 둘러싼 논의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