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증시 랠리 못 믿겠다”…영국 투자자 50조 이탈, 외국 자금만 ‘쇼핑’ 속도
현지시각 기준 20일, 영국(London) 런던증시에서 영국(UK) 국내 투자자들의 대규모 자금 이탈이 확인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런던 대표 지수의 두 자릿수 상승에도 영국 투자자들은 위험자산 비중을 줄이며 증시에서 발을 빼고 있어, 국제 금융시장에서 이례적인 흐름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현상은 영국 정부의 예산안 발표를 앞둔 정책 불확실성과 글로벌 자산배분 전략이 맞물린 결과로 해석된다.
시장조사업체 EPFR 자료를 인용한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영국 투자자들은 올해 들어 런던 주식시장에서 약 260억 파운드(약 49조9천억 원)를 순유출한 것으로 추산됐다. FT는 이 규모가 연간 기준으로 사상 최대 수준이라고 전했다. 반면 같은 기간 외국 투자자들은 약 150억 파운드(약 28조8천억 원)를 런던증시에 새로 투입한 것으로 집계돼, 국내 투자자와는 정반대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오는 26일로 예정된 영국 정부 예산안에서 증세 방안이 포함될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정책 환경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보고 있다. 이 같은 조치는 주변국에도 파장을 미치고 있다. 세 부담 확대 우려가 커지자 영국 가계와 기관이 주식 비중을 줄이고 채권 등 저위험 자산이나 현금 보유를 늘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런던증시 대표 지수인 파이낸셜타임스 스톡익스체인지(FTSE) 100 지수는 올해 들어 약 16% 상승했다. 이 상승률이 연말까지 유지될 경우 2010년 이후 가장 높은 연간 상승률이 된다. FT는 FTSE 100 지수의 상승 폭이 미국(USA) 뉴욕증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의 13%, 스톡스(Stoxx) 유럽(Europe) 600 지수의 11% 상승률을 웃돌고 있다고 전했다.
이매뉴얼 코 바클리스(Barclays) 유럽주식전략팀장은 “영국 주식시장이 예상 밖으로 2025년의 승자로 떠올랐지만 영국 투자자들은 이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FT는 금융, 광업, 방위산업 등 전통적 업종의 주가 강세가 FTSE 100 지수 상승을 이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몇 개월 사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공지능(AI) 관련 종목의 밸류에이션 부담과 거품 우려가 확산되면서, 기술주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고 전통 산업 비중이 높은 런던 시장이 분산투자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FTSE 100 지수의 주가수익비율(PER)은 약 17.4배 수준으로, S&P500 지수의 27.3배에 비해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마이클 스티아스니 M&G 영국 주식팀장은 “영국 주식은 미국 시장과는 다른 특성을 제공해,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원하는 투자자의 선호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외국 자금의 유입 확대가 런던 시장의 구조적 매력보다는 글로벌 자산배분 전략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과 유럽 대형 기술주를 중심으로 한 특정 섹터 집중 위험이 커지자, 일부 글로벌 자금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되고 배당 성향이 높은 영국 주식으로 눈을 돌렸다는 평가다.
반면 영국 국내 자금은 위험자산 회피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셰런 벨 골드만삭스(Goldman Sachs) 선임 주식 전략가는 “가계 심리를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영국 투자자들은 해외 주식을 사기 위해 영국 주식을 파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주식 자산에 대한 노출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투자자의 위험 회피 성향이 구조적으로 강화됐다는 진단이다.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은 이달 초 레이철 리브스 영국 재무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연금 제도 내에서 영국 자산에 대한 세제 혜택을 확대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금 자금이 국내 주식시장으로 더 많이 유입되도록 유도해, 장기 자금을 기반으로 한 시장 안정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FT는 연금·세제 개선 등 정책 지원이 뒤따르지 않을 경우, 지수 강세와 별개로 영국 국내 자금 이탈이 지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영국 정부가 예산안과 연금·세제 개편을 통해 가계와 기관의 투자 심리를 회복시키지 못하면, 런던증시가 외국 자금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가 굳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제사회는 영국 정부의 향후 정책 결정과 그에 따른 자금 흐름의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