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데이터센터 특례법 시급”…전력인프라 취약한 한국, 골든타임 놓치나
생성형 인공지능 경쟁이 글로벌 차원에서 속도를 높이는데 비해 한국의 AI 데이터센터 인프라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국회에서 나왔다. 특히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이 미국의 22분의 1, 중국의 12분의 1 수준에 그치면서 연산 인프라 격차가 벌어지고 있고, 수도권 집중과 까다로운 인허가 절차가 투자 시점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와 학계는 AI 강국 도약을 위한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별도 특례 법제를 통해 전력, 입지, 세제, 규제 등을 패키지로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종배 건국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9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개최한 AI 제정법 공청회에서 한국의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취약성을 구체적 수치로 제시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올해 기준 한국 데이터센터의 연간 전력 소비량은 약 8TWh 수준으로, 중국의 12분의 1, 미국의 22분의 1에 불과하다. 그는 빅테크 기업들이 대형 AI 데이터센터를 전제로 방대한 전력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상황과 비교할 때 한국의 인프라 투자는 절대량에서 크게 뒤처져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과 중국은 AI 데이터센터 수요 급증을 전제하고 정부 주도로 송배전 설비를 대대적으로 확충 중이다. 박 교수는 미국이 2030년까지 원전 50기 규모에 해당하는 50GW 수준의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를 목표로 전력 인프라 투자 계획을 세웠다고 소개했다. 대규모 전력 공급을 전제로 한 연산 인프라 확보 경쟁이 사실상 국가 전략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한국은 수도권 중심의 수요·공급 불균형이 구조적 병목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수도권이 전국 전력 소비의 약 40%를 사용하지만 자급률은 66% 수준에 그쳐 부족분을 비수도권에서 끌어오는 구조라고 짚었다. 송전망 확충 없이는 신규 대형 AI 데이터센터를 안정적으로 수용하기 어렵고, 신규 송전선 건설에는 장기간이 소요되는 만큼 당장 속도전에서 불리하다는 분석이다.
AI 데이터센터 입지의 70%가 수도권에 몰린 점도 위험 요인으로 꼽혔다. 전력 공급 경로가 제한된 상황에서 동일 지역에 수요가 집중되면 계통 안정성이 떨어지고, 송전 손실과 비용이 늘어나며, 재생에너지 출력 제어 같은 부작용도 확대될 수 있다. 박 교수는 이를 완화하려면 비수도권으로의 수요 분산이 불가피하다며 대규모 AI 데이터센터를 지방으로 유도하는 제도 설계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특히 AI 데이터센터와 인근 발전기 사이의 직접 전력 거래를 허용하는 방안 등을 예시로 들며, 기존 전력 계통에 부담을 덜 주는 새로운 계약 구조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 지역도 환경 규제, 계통 용량, 지역 수용성 등 제약 요인이 있는 만큼, 입지와 전력 조달 방식을 유연하게 설계할 수 있는 특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나연묵 단국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AI 데이터센터가 기존 데이터센터와 요구 조건이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했다. AI 연산용 데이터센터는 랙당 80킬로와트 수준의 고밀도 전력 공급과 수냉식 냉각 장비 등 고사양 인프라를 필요로 한다. GPU 기반 연산 장비가 다량 탑재되면서 열 밀도가 크게 높아지기 때문에, 공랭식 중심의 기존 시설 개·보수로는 효율과 안전성을 함께 확보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는 지진 위험이 낮고 전력 품질이 우수한 한국이 원래는 데이터센터 입지 측면에서 최상급 평가를 받았음에도, 신축에 최소 3년 이상이 걸리는 구조 때문에 투자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글로벌 사업자와 국내 기업이 추진하던 일부 데이터센터 프로젝트가 인허가 지연, 민원 부담 등을 이유로 동남아시아 등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나 교수는 대규모 전력을 사용하는 10메가와트 이상 센터에 대해 이뤄지는 전력 계통 영향평가가 사실상 일정 지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봤다. 더불어 데이터센터가 독자적인 건축물 유형으로 규정되지 않아 각종 건축·소방·환경 규제가 중첩되는 구조, 전자파 발생 우려를 근거로 한 악성 민원 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해 사업 추진 속도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기존 레거시 데이터센터를 억지로 리모델링하는 것보다는 AI 수요에 최적화된 설계로 신축하는 편이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AI 데이터센터 진흥 법안이 인허가를 일괄 처리하고, 전력 거래 특례와 타임아웃제 도입 등 절차 지연을 제한하는 장치로 작동한다면 AI 인프라 구축에서 패스트트랙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내놓았다.
조영기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은 AI 데이터센터의 정의와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설정할 경우 법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기존 데이터센터가 AI 연산 기능을 확장하거나 전환하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는 만큼, 신규 시설뿐 아니라 전환·증설 프로젝트 전반을 지원 대상으로 포함해야 현장의 속도전에 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 사무총장은 물리적 거리와 지연시간, 통신 비용을 연결해 설명하며 수도권 집중 구조의 장단점을 함께 짚었다. 사용자와 서비스 간 거리가 멀어질수록 데이터 전송 지연과 비용이 커지는 만큼, 현실적으로 상당수 민간 사업자는 수도권 인접 지역에 인프라를 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수도권 내 AI 데이터센터 투자를 AI 핵심 기술 투자와 동일한 수준의 조세 감면 대상으로 보고, 단기적으로는 기존 시설 활용을 통한 빠른 투자와 경쟁력 확보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수도권 기반 인프라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 뒤, 순차적인 지방 이전과 신규 투자로 국토 균형 발전을 도모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내놨다. 즉, 초기에는 속도와 효율을 우선하되, 중장기에는 입지 분산과 지역 발전 목표를 단계적으로 달성하는 이원 전략이 현실적이라는 판단이다.
유남선 데이터센터협의체 분과장은 인허가 일괄 처리의 실질적 효과에 주목했다. 현재처럼 부처와 지자체가 나뉘어 개별 인허가를 진행하는 체계에서는 어느 한 곳에서 거부감이 생기거나 민원이 제기될 경우 전체 일정이 사실상 멈춰버리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AI 데이터센터 진흥법이 이러한 병목을 해소하기 위한 거버넌스 정비의 성격을 가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유 분과장은 또 AI 데이터센터에 대한 법적 정의를 명확히 하고, 기술 변화 속도를 감안해 정기적으로 관련 기술 요건과 기준을 업데이트할 수 있는 개정 메커니즘을 법에 포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GPU 집약형, 액침 냉각, 재생에너지 연계 등 설비 구조가 빠르게 진화하는 만큼, 초기 기준을 고정해두면 실무에서 새로운 유형의 설비가 규제 사각지대나 과잉 규제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한성수 한국전자통신연구원 ICT 전략연구소 소장은 AI 데이터센터를 단순한 민간 설비가 아닌 국가 전략 인프라로 재정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연산 능력이 앞으로 제조, 금융, 의료, 국방 등 거의 모든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게 되는 만큼, 데이터센터 투자를 비용이 아닌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필수 자산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소장은 현재 AI 데이터센터 관련 정책 소관이 국토교통부를 포함해 5개 부처에 분산돼 정책 일관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전력, 환경 규제, 세제 지원이라는 세 축을 하나의 법 체계 아래에서 설계하고, 부처 간 역할을 명확히 조정할 수 있는 별도 법적 틀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에너지 정책과 환경 규제, 산업 진흥 사이의 균형을 데이터 기반으로 조정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 설치도 과제로 제시했다.
공청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현재 국회에 상정된 3건의 AI 데이터센터 진흥 법안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 평가를 내놓으면서도, 세부 조문 과정에서 범위 설정과 세제 인센티브, 기존 시설 전환 지원 등을 보완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특히 AI 기술 발전 속도가 인프라 구축 속도를 앞지르지 않도록 인허가 단축과 전력 공급 안정화, 수도권과 지방 간 역할 분담을 패키지로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산업계와 학계는 한국이 AI 연산 인프라 격차를 조기에 줄이지 못할 경우 서비스 경쟁력에서도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AI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전력, 입지, 규제, 세제 이슈를 국가 전략 인프라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다룰 수 있을지에 산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