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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GPU 5만장 확보”…정부, K엔비디아 육성 가속

윤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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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그래픽처리장치 확보와 인공지능 인프라 확충이 국내 디지털 전환 전략의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는 대규모 GPU 확보와 배분 계획을 확정하고, AI 반도체와 AI 바이오 국가전략을 연계한 이른바 K엔비디아 육성 전략에 속도를 올리기로 했다. 동시에 쿠팡 고객정보 유출 사태를 계기로 범부처 차원의 정보보안 대응 체계를 정비하면서, AI 고속도로와 데이터 보호 체계를 동시에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한국판 AI 컴퓨팅 생태계 구축 경쟁의 분기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8일 배경훈 부총리 주재로 열린 제2회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에서 국가 AI 혁신 인프라, AI 반도체·AI 바이오 전략, 연구 생태계 개편, 쿠팡사태 범부처 대응 방향 등 10개 안건을 심의 의결했다고 밝혔다. 회의에는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등 경제·산업 부처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금융위원회 등 규제·감독 기관까지 총 20명의 고위 인사가 참석해 AI 인프라와 데이터 보안 문제를 동시에 논의했다.  

배경훈 부총리는 국민주권 정부 출범 이후 연구 생태계 복원과 AX 대전환 기반 조성을 강조하며 내년부터는 구체적인 성과 도출을 위한 부처 간 협력이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AI 반도체와 AI 바이오를 미래 산업의 심장으로 규정하고, 첨단 GPU로 구축되는 AI 고속도로 위에 국내 네트워크 기술을 접목해 글로벌 서비스 확장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AI 정부 서비스와 창의·도전적 연구 생태계 조성을 위해 전 부처 차원의 자원 투입을 주문한 것이다.  

 

가장 먼저 논의된 긴급 안건은 쿠팡 침해사고에 대한 범부처 대응 방향이었다. 대형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발생한 고객 정보 유출로 국민 불안이 커지고 국회 청문회에서도 취약한 보안 관리와 책임 공백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 상태다. 정부는 이번 사고를 국민 일상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중대한 사안으로 규정하고, 관계 부처가 최우선 과제로 다룰 수 있도록 범정부 대응 체계를 마련했다. 개인정보보호, 통신망 보안, 전자상거래 감독 기능이 분산돼 있는 기존 구조의 한계를 보완하겠다는 취지다.  

 

이어 정부는 국가 AI 혁신을 위한 첨단 GPU 확보·배분 방향을 의결했다. 정부는 국가 AI 경쟁력 확보와 민간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AI 고속도로 구축을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 중이다. 목표는 2028년까지 5만2000장 이상의 첨단 GPU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 직접 구매, 슈퍼컴퓨터 6호기 구축, 국가 AI 컴퓨팅센터 확충 등을 병행하고 있다.  

 

올해 1차 추가경정예산 1조4600억원으로 확보한 약 1만3000장의 GPU 중 정부 활용분 1만여 장은 내년 2월부터 순차적으로 배분된다. 대상은 산업계, 학계, 연구계, 그리고 국가 차원의 AI 프로젝트 참여 기관이다. 정부는 오는 22일부터 전담 사이트를 통해 과제를 접수하고, 부처별 AX 수요 조사를 거쳐 국가 AI 혁신을 이끌 프로젝트를 발굴해 GPU를 우선 지원할 계획이다. 이는 민간 기업이 단독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대규모 AI 학습 인프라를 공공이 기반으로 제공해, 국내 AI 서비스·플랫폼 기업의 성장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구도다.  

 

정부 행정 전반에서 AI 활용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30대 핵심과제 논의도 병행됐다. 중앙행정기관 수요조사로 도출된 후보 과제는 대표성, 국민 체감도, 준비 정도를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매기며, 대국민 서비스 혁신, 정부 효율성 제고, 재난안전 등 세 영역으로 나눠 선정한다. AI국민비서, AI 기반 납세 서비스, AI 기반 기상·기후 예측 시스템, AI 산불·연무 예측 등이 대표 과제로 거론된다. 행정안전부와 과기정통부는 각 과제에 필요한 데이터 정비, 시스템 연계, 알고리즘 검증 등 행정·기술 요건을 공동 지원해 실제 서비스 단계까지 끌고 가겠다는 방침이다.  

 

노동시장 전반의 AI 활용 능력 제고를 위한 인재 양성 방안도 구체화됐다. 정부는 청년층을 대상으로 K디지털 트레이닝 AI 캠퍼스를 통해 1만 명 규모의 초급 개발자 교육을 운영하고, 교육 기간 중 월 최대 60만원을 지원한다. 중장년층 이직·전직 준비자를 위해서는 폴리텍 등 공공 직업교육기관을 통해 2만8000명 규모의 AI 기초 활용 교육과 1000명 대상 전문 AX 훈련 과정을 제공한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직무 전환 훈련을 신설해 제조, 서비스, 공공 등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AI 활용 사례를 늘리는 것이 목표다. 중소기업 재직자를 위해서는 AI 훈련 희망 기업 발굴에서 훈련 수요 진단, 맞춤형 과정 연계까지 패키지로 지원하는 구조를 설계했다.  

 

AI 인프라 전략의 또 다른 축은 국산 AI 반도체 생태계 조기 확립이다.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 AI반도체 산업 도약 전략을 통해 GPU 중심 시장 구조가 가진 높은 전력 소모와 운영비용 문제를 국산 AI반도체로 보완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특히 추론 연산에 특화된 NPU 기반 솔루션에서 글로벌 틈새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구상이다. 성능 고도화 연구, 대규모 테스트베드, 실사용 시나리오 기반 평가와 피드백 체계를 묶은 KAI플러스NPU 패키지를 제공해 팹리스·시스템 기업·수요기업이 함께 검증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할 계획이다.  

 

재무적 지원도 병행된다. 정부는 국민성장펀드를 활용한 K엔비디아 프로젝트를 통해 차세대 AI 반도체 제품 개발과 양산을 지원한다. 목표 시점인 2030년까지 AI·반도체 정책펀드를 통해 3000억원 이상을 초기 스타트업 성장 자금으로 공급할 예정이다. AI 연산에 최적화된 자체 칩과 소프트웨어 스택을 갖춘 국내 기업을 발굴·육성해, 특정 글로벌 기업 중심으로 편중된 GPU 공급 구조를 점진적으로 분산시키겠다는 전략이다. 미국과 유럽이 자국산 AI 가속기 개발에 공을 들이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한국형 AI 가속기 생태계를 형성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AI 바이오 국가전략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결합해 제약·의료 산업 구조를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춘다. 정부는 신약개발, 뇌·역노화, 의료기기 등 5대 분야를 중심으로 AI 바이오 모델을 개발하고, 내년 상반기 중 시범 거점 한 곳을 조성한다. 2030년까지 700만 건 이상의 고품질 바이오데이터를 확보해, 질환 예측, 후보물질 발굴, 의료영상 판독, 디지털 바이오마커 개발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바이오데이터 활용 촉진을 위한 별도 법률 제정과 제도 개선도 추진한다. 환자 개인의 유전체, 임상 기록, 의료영상 등 민감 데이터가 포함되는 만큼, 비식별화 수준, 동의 범위, 2차 활용 규칙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정부는 AI 모델 학습 전용 바이오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를 단계적으로 구축해, 국내 병원·제약사·AI 스타트업이 공통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게 한다는 구상이다. 미국과 영국이 국가 주도로 정밀의료 데이터 허브를 구축해 신약개발과 의료 AI 연구를 가속하는 흐름과 유사한 방향이다.  

 

민간 투자와 연계한 기술혁신 지원 프로그램 팁스 R앤디의 확산 방안도 보고됐다. 팁스는 민간 투자사가 선별한 스타트업에 정부가 연구개발 자금 등을 연계 지원하는 구조로, 기술성 검증과 시장성 평가를 민간이 선행하는 특징이 있다. 정부는 이번 방안에서 팁스 지원 대상을 다양한 기술·산업과 지역으로 넓히고, 지역 기업에 전체 물량의 50퍼센트 이상을 할당해 수도권 편중을 완화하기로 했다. AI, 바이오, 반도체 등 고위험 분야 초기 기업의 성장 사다리를 촘촘하게 만들겠다는 취지다.  

 

연구 생태계 측면에서는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임무와 성과 중심 재편 방향이 논의됐다. 출연연은 국가 전략 기술과 장기 난제 해결을 담당하는 만큼, AI 반도체, 양자, 우주, 바이오 등 고난도 분야에서 민간이 수행하기 어려운 기초·원천 연구를 책임지는 구조가 요구된다. 정부는 출연연의 역할을 재정의해 중복 연구를 줄이고, AI 시대에 맞는 데이터 기반 연구 플랫폼을 갖추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AI 시대 네트워크 전략 역시 중요한 의제로 다뤄졌다. 초거대 AI 모델 학습과 서비스 제공에는 대용량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처리하는 통신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정부는 국내 네트워크 기술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서비스 확장을 목표로, 데이터센터 트래픽 증가에 대응한 백본망 고도화, 저지연 네트워크 기술, 광통신 장비 경쟁력 강화 방향을 검토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과 통신 인프라 부담이 정책 이슈로 떠오른 만큼, 한국도 AI 고속도로 확충 과정에서 에너지 효율과 네트워크 안정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쿠팡사태를 계기로 제기된 데이터 보호와 보안 문제는 이러한 AI 인프라 전략의 전제 조건이기도 하다. AI 서비스 확산과 함께 대규모 개인정보와 이용자 행동 데이터가 클라우드에 축적되는 만큼, 침해사고 발생 시 피해 규모와 사회적 파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 있다. 정부가 범부처 대응 방안을 별도 안건으로 상정한 배경에는, AI 혁신과 데이터 보호를 이분법이 아니라 동시 달성해야 할 목표로 보겠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업계와 연구계에서는 정부의 GPU 확보와 K엔비디아 프로젝트, AI 바이오 국가전략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려면, 민간 수요와 글로벌 기술 트렌드를 반영한 유연한 집행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대형 클라우드·플랫폼 기업, 팹리스, 병원, 제약사가 초기 설계 단계부터 참여해 공동 로드맵을 만드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연구기관 관계자는 첨단 GPU와 국산 AI반도체, 바이오데이터 인프라가 맞물려 돌아가는 생태계가 구축되는 시점이 한국 AI 산업 전반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산업계는 이번에 결정된 AI 인프라와 보안 전략이 실제 시장에 안착해 글로벌 경쟁력을 뒷받침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기술과 인프라, 제도와 윤리의 균형이 새로운 성장의 조건으로 부상하고 있는 만큼, 향후 집행 과정에서의 속도와 정교함이 성패를 가를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윤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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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k엔비디아#ai바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