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141년 함께한 ‘동물원의 여왕’”…갈라파고스 거북 그래마로 본 생명 존중의 과제

임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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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41년을 산 샌디에이고 동물원의 갈라파고스 거북 ‘그래마(Gramma)’가 고령으로 인한 질환 끝에 안락사되면서, 동물원 동물의 노후 복지와 생명권을 둘러싼 논의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긴 세월 인간 곁을 지켜 온 상징적 개체의 죽음이 동물 보호·전시 관행을 돌아보게 하고 있다.

 

데일리메일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그래마는 11월 20일(현지시간)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서 안락사 조치를 통해 생을 마감했다. 동물원 측은 그래마가 고령으로 뼈 질환을 앓아 왔으며, 통증 조절이 어려운 단계에 이르러 의료진 판단에 따라 안락사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갈라파고스육지거북 출처=픽사베이 ※ 본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한 참고 이미지입니다.
갈라파고스육지거북 출처=픽사베이 ※ 본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한 참고 이미지입니다.

그래마는 1920년대 후반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채집돼 미국으로 옮겨진 뒤, 브롱크스 동물원을 거쳐 샌디에이고 동물원으로 이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약 한 세기 동안 수많은 관람객을 만난 대표 개체로, 동물원 안팎에서는 ‘동물원의 여왕’으로 불려 왔다. 동물원 측은 그래마가 20명 이상의 미국 대통령 재임 시기를 지나며 두 차례 세계대전과 동물원 운영 방식의 변화를 모두 겪은 “살아 있는 역사”와 같은 존재였다고 평가했다.

 

샌디에이고 동물원은 성명을 통해 “그래마는 조용한 성격이지만 전 세계 파충류 보호의 중요한 대사 역할을 한 특별한 거북이었다”며 “그녀의 삶은 수많은 방문객에게 파충류와 서식지 보전의 중요성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동물원은 추모의 의미로 “그래마가 사랑했던 과일 샐러드를 떠올리며 기억해 달라”고 전했다.

 

관람객과 온라인 이용자들은 그래마를 향한 추모 메시지를 잇따라 남기고 있다. 일부 방문객은 “어린 시절부터 여러 번 보러 갔던 존재였다”, “늘 같은 자리에 있던 거북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며 세대 간 공통의 기억이 사라진 상실감을 전했다.

 

갈라파고스 거북은 평균 수명이 100년을 넘는 장수종으로, 학계에서는 170세를 넘긴 사례도 보고된 바 있다. 그래마 또한 햇빛을 쬐고 웅덩이에서 쉬며 상추와 선인과일 등을 즐기는 일상으로 관람객에게 “느린 위안”을 주는 존재로 인식돼 왔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장수종 동물이 동물원에 머무르는 기간이 길수록 노화에 따른 만성질환 관리와 생활환경 개선이 더욱 중요해진다고 지적한다.

 

동물권 단체들은 이번 사례를 계기로 장기 수명 동물의 사육 환경과 안락사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 고령 동물에 대한 의료적 처치와 안락사 판단이 수의학적 판단에만 맡겨질 것이 아니라, 윤리 기준과 사회적 합의 속에서 논의돼야 한다는 지적도 반복돼 왔다.

 

동물원 측은 그래마가 평소 즐기던 먹이와 쉼터 등을 최대한 유지하며 노후 관리를 해왔다고 설명하면서도, 세부적인 치료 경과와 안락사 결정 과정에 대해서는 추가 설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동물 보호 단체와 시민사회는 향후 비슷한 사례에 대비한 가이드라인 마련을 요구할 전망이다.

 

생전 그래마는 어린이에게는 첫 ‘야생 동물’의 기억으로, 어른에게는 세월의 흐름을 체감하게 하는 상징으로 자리해 왔다. 한 세기를 넘긴 거북의 죽음은 추모와 함께, 인간이 동물과 공존하는 방식을 다시 묻는 화두를 남긴 채 사회적 논의를 예고하고 있다.

임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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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마#샌디에이고동물원#갈라파고스거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