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어게인 2018 vs 어게인 2022”...지방선거 6개월 앞 이재명 정부 1년 평가전 돌입

조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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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심판론과 정권 안정론이 다시 맞붙었다. 이재명 정부 출범 1년을 앞두고 치러지는 내년 지방선거를 두고 여야가 정면 충돌 구도로 치닫고 있다. 2018년과 2022년 지방선거의 기억이 교차하는 가운데, 어느 쪽 기억이 재현될지에 정치권의 시선이 쏠린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5일 기준으로 정확히 180일 앞으로 다가왔다. 내년 6월 3일 치러지는 지방선거는 지난 6월 3일 대통령 선거와 같은 날짜에 열리며, 이재명 대통령 당선 1년 만에 치러지는 첫 전국 단위 선거다. 이재명 정부 초반 국정 운영에 대한 국민 평가가 응축돼 나타나는 정치적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내년 6월 3일 전국 17개 시·도에서 민선 9기 광역·기초자치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 교육감 등을 동시에 선출한다. 선거일 180일 전인 이날부터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의 인쇄물 배부 금지 등 각종 제한 규정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시·도지사 및 교육감 선거 예비후보 등록은 내년 2월부터 가능하며, 본 후보 등록은 5월 14∼15일 진행된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은 5월 21일부터다.

 

이번 지방선거는 지난 대통령 선거의 연장전 성격을 짙게 띤다. 이재명 대통령을 배출한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서 절대 다수 의석을 확보한 상황에서, 지방권력까지 장악할 경우 입법부와 행정부에 이어 지방정부까지 거머쥔 초강력 여권 체제가 구축된다. 반대로 이재명 정부가 첫 전국 선거에서 고전하거나 패할 경우 남은 임기 동안 국정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정권 초기 특유의 결집 효과를 극대화해 2018년 지방선거와 같은 압승을 재현하겠다는 구상이다. 민주당은 정권 안정론에 힘을 싣는 한편, 12·3 계엄 사태를 둘러싼 내란 책임론을 전면에 부각하며 보수 진영을 겨냥한 정치 공세에 나서고 있다. 여권 일각에선 2018년처럼 정권 1년 차 지방선거에서 수도권과 영남·강원 등 험지까지 넓게 휩쓸 경우, 이재명 정부 초기 국정 과제 추진 속도가 한층 빨라질 것이라는 기대도 흘러나온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만에 치러진 표 대결에서 17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14곳을 석권했다. 당시 부산·울산·경남, 강원도 등 전통적인 보수 강세 지역까지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을 대거 가져오며 ‘어게인 2018’의 상징적 장면을 만들었다. 민주당은 내년 선거에서도 비슷한 지형을 만들어내겠다며 조직 정비에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국민의힘은 반대로 ‘어게인 2022’를 내걸고 선거전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치러진 2022년 6·1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은 17개 광역단체장 중 12곳을 차지하며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정권이 12·3 계엄 사태를 둘러싼 ‘내란 몰이’와 입법 독주에만 집중한 채 민생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을 전면에 세우고, 정권 견제와 민생 심판론으로 맞설 계획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과 12·3 계엄 사태, 연이은 대선 패배로 정치적 타격을 입은 국민의힘으로선 내년 지방선거가 반전의 계기를 만들 마지막 승부처가 될 수 있다. 선거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거둘 경우 보수 진영 재정비와 당 재건의 동력을 확보할 수 있지만, 패배할 경우 ‘지리멸렬한 야당’이라는 평가 속에서 보수 궤멸 위기론이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보수 진영 내부의 분열 양상도 변수로 떠오른다. 현재 보수 진영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과 12·3 계엄 사태를 둘러싸고 탄핵 찬성파와 탄핵 반대파로 갈라져 있다. 향후 지방선거에서 어떤 계열이 주도권을 쥐고 후보를 내세우느냐에 따라 전체 구도가 크게 요동칠 수 있다는 관측이 정치권 안팎에서 제기된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현재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정당 지지율 격차는 탄핵에 찬성한 보수층이 국민의힘에서 이탈한 결과가 반영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보수 진영이 탄핵 찬성 주자를 전면에 내세워 선거에 나선다면 구도가 초박빙으로 흐를 여지가 있다”고 전망했다. 보수 진영 내 인물 선택이 곧 선거 판세에 직결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방선거 특유의 ‘대선 전초전’ 구도도 빠르게 부각되는 모양새다. 역대 한국 정치에서 지방선거는 차세대 대권 주자들의 체급을 키우는 무대로 기능해왔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각각 경기도지사, 서울시장을 거쳐 대선에 도전해 청와대에 입성한 전례가 대표적이다. 내년에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잠룡들이 광역단체장 선거에 도전장을 내밀 것으로 관측된다.

 

최대 승부처로 꼽히는 서울시장 선거에선 국민의힘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의 5선 도전 여부가 최대 관심사로 부상했다. 당내에선 5선에 도전 중인 나경원 의원도 서울시장 유력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현역 기초단체장과 전·현직 중진 의원들이 복수로 포진한 만큼 국민의힘 서울 공천 경쟁은 조기에 달아오를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군도 두텁다. 박홍근·서영교·박주민·전현희·김영배 의원 등 서울 지역구 의원들이 일찌감치 물망에 올랐고, 홍익표·박용진 전 의원과 정원오 성동구청장 등도 잠재 후보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다만 오세훈 시장의 현역 프리미엄과 인지도를 감안하면, 민주당 내에선 선거 막판 김민석 국무총리나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 등 정부 핵심 인사를 서울시장 후보로 차출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경기도지사 선거는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적 출발점이자 민주당의 대표적인 텃밭으로 꼽히는 만큼, 여야 모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승부처다. 민주당 내에선 현직 김동연 경기지사의 재도전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가운데, 추미애·박정·권칠승·김병주·한준호·염태영·강득구 의원 등 여러 인사가 잠재 후보로 분류된다. 수도권 핵심 지역인 만큼 당내 경선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반면 경기도에서 상대적으로 지지 기반이 약한 국민의힘에선 뚜렷한 선두 주자가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당 안팎에선 안철수·김은혜 의원, 유승민 전 의원, 한동훈 전 대표 등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으나, 실제 출마 여부와 선택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보수 진영이 통합형 후보를 내세울 수 있을지, 혹은 당내 계파 갈등이 후보 단일화에 악영향을 줄지가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수도권 외 지역에서도 여야는 물밑 경쟁을 벌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강원도지사와 충남·충북도지사, 대전시장, 부산시장, 경남도지사, 울산시장 등을 탈환 대상으로 지목했다. 국민의힘으로선 2022년 지방선거에서 거둔 영남·충청권의 우세를 지켜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각 당은 지역 맞춤형 공약과 인물 구성을 앞세워 지역 민심 공략에 나설 계획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내년 지방선거가 단순한 지방 행정 책임자를 뽑는 절차를 넘어, 향후 국정 방향과 차기 대선 구도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뒤따른다. 특히 12·3 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 여파가 여전히 이어지는 상황에서, 유권자가 어느 쪽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이재명 정부의 후반기 동력과 야권의 재편 속도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날부터 예비 선거 규제가 본격 가동되면서 여야는 각 상임위와 당내 회의를 중심으로 지방선거 전략 수립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국회는 정기국회와 내년 임시국회에서 지역 민심을 겨냥한 민생 법안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을 벌일 것으로 보이며, 각 정당은 지방선거 후보 확정 작업과 함께 향후 정국 주도권 싸움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조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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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