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고비 성분 치매 지연 실패…노보노디스크, 비만약 한계 드러나며 알츠하이머 전략 수정
알츠하이머병 치료 패러다임 전환을 노린 대사질환 약물 재창출 전략에 제동이 걸렸다. 비만 치료제 위고비의 성분으로 알려진 경구용 세마글루티드가 대규모 임상 3상에서 알츠하이머병 진행을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늦추지 못한 것이다. 비만·당뇨 치료에서 혁신 약물로 부상한 세마글루티드가 중추신경계 퇴행성 질환으로 적응증을 넓히는 구상은 상당 부분 재조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다만 바이오마커 개선 신호가 일부 관찰되면서, 대사 조절 기반 치매 치료 전략 자체는 계속 검증이 이어질 전망이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는 25일 초기 증상성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evoke와 evoke+ 임상 3상 1차 분석 탑라인 결과를 공개했다. 두 시험은 무작위 배정과 이중맹검 설계로 이뤄졌으며, 총 3808명의 성인에게 표준 치료에 더해 경구용 세마글루티드를 투여했을 때 위약 대비 유효성과 안전성을 비교했다.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경도 인지 장애 또는 경도 치매를 가진 55세에서 85세 환자가 대상이었으며, 주요 평가 변수는 시간에 따른 질병 진행 속도 감소 여부와 관련 인지 기능 척도 변화였다.

결과에서 세마글루티드는 알츠하이머병 진행 감소 측면에서 위약보다 우월하다는 통계적 근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인지 기능 저하와 일상생활 수행 능력 저하를 종합 평가하는 지표에서 세마글루티드 투여군과 위약군 간 차이는 존재하더라도, 사전에 설정한 유의 수준을 넘지 못한 것으로 요약된다. 반면 뇌 내 단백질 축적이나 염증, 대사 상태를 반영하는 알츠하이머 관련 바이오마커에서는 다소 긍정적인 변화가 관찰됐지만, 해당 변화가 실제 임상 증상 지연으로 이어지는 상관성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세마글루티드는 GLP-1 수용체 작용제 계열 약물로, 혈당 조절과 체중 감소를 유도한다. 일부 전임상과 관찰 연구에서 GLP-1 계열 약물이 뇌 염증을 줄이거나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 축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신호가 보고되면서, 대사 조절을 통해 신경세포 보호 효과를 기대하는 연구가 확대됐다. 노보 노디스크가 알츠하이머 환자를 별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임상에 나선 배경도 이 같은 기전 가설에 기반을 두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주사제가 아닌 경구 제형을 사용해 약물 접근성을 높이고 장기 복용 순응도를 끌어올리는 전략을 병행했다.
다만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의 난이도를 감안하면, 일부 바이오마커 개선에도 불구하고 최종 임상 효능을 입증하지 못한 결과는 현재의 기전 이해와 임상 설계 한계를 다시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기존 항아밀로이드 항체들이 뇌 속 아밀로이드 제거 효과를 증명하면서도, 실제 인지 저하 속도 감소 폭이 제한적이었던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세마글루티드 역시 신경 보호 효과의 강도가 충분하지 않거나, 치료 개입 시점이 이미 너무 늦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시장 측면에서 보면 노보 노디스크의 전략 수정은 불가피하다. 회사는 위고비와 오젬픽으로 대표되는 세마글루티드 계열 약물을 통해 비만과 제2형 당뇨병 시장에서 매출과 점유율을 크게 끌어올렸다. 이후 심혈관 질환, 신장 질환, 알츠하이머병 등으로 적응증을 확장해 포트폴리오 리스크를 분산하고 수명을 연장하는 전략을 추진해 왔다. 이번 결과로 치매 영역의 확장 속도는 늦어질 수밖에 없으며, 임상 3상 근거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허가 신청 가능성도 상당 부분 약화됐다.
경쟁 구도에서 보면, 알츠하이머병 치료 시장은 여전히 항체 기반 질환 조절 약물이 주도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유럽에서는 아밀로이드 표적 항체들이 순차적으로 승인되며, 초기 환자층을 중심으로 상용화가 본격화되는 상황이다. 그에 비해 세마글루티드처럼 대사 조절을 통한 간접적 신경 보호 기전을 내세운 약물들은 아직 임상적 효과를 명확히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비만과 대사질환 관리 자체가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을 낮추는 인자로 거론되는 만큼, 예방 관점의 장기 코호트 연구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올 여지도 남아 있다.
이번 시험에서 세마글루티드의 안전성과 내약성은 이전 비만·당뇨 임상에서 확인된 수준과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알츠하이머 환자 대상 투여군에서도 기존에 알려진 소화기계 이상반응과 체중 감소가 주된 부작용으로 보고됐으며, 중대한 신경계 안전성 문제는 부각되지 않았다. 노보 노디스크는 안전성 프로파일이 기존 데이터와 일관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현재 승인된 제2형 당뇨병과 비만, 그 밖의 대사성 동반 질환 영역에서는 세마글루티드의 임상적 이점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설명했다.
노보 노디스크 최고과학책임자 겸 연구개발 부사장 마틴 홀스트 랑게는 알츠하이머병 분야의 미충족 수요를 언급하며, 성공 가능성이 낮더라도 기전 가설과 축적된 데이터를 토대로 세마글루티드의 잠재력을 검증할 책임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세마글루티드가 알츠하이머 진행을 늦추는 효능을 입증하는 데 실패했지만, 대사질환 환자에게 제공하는 이점은 여전히 크다고 강조했다. 회사는 이번 1차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evoke와 evoke+의 1년 연장 기간을 전체 연구 대상 집단에서 관찰된 효능 패턴에 맞춰 중단할 계획이다.
정책과 규제 측면에서는, 이번 결과가 규제 당국의 척도 설정에도 간접적 메시지를 던진다. 최근 승인된 알츠하이머 치료제들은 대부분 명확한 질병 표지자 개선과 더불어, 인지 기능 저하 속도 감소를 통계적으로 뒷받침하는 데이터를 요구받았다. 세마글루티드와 같이 비전통적 기전을 내세우는 약물도 결국 인지 기능과 일상생활 능력 개선이라는 임상 지표에서 설득력 있는 차이를 보여야 한다는 기준이 재확인된 셈이다. 알츠하이머 임상 설계에서 바이오마커와 실제 임상 증상 간의 연계성을 어떻게 설정할지에 대한 논쟁도 계속될 전망이다.
두 임상시험의 보다 상세한 결과는 다음 달 3일 미국 알츠하이머 임상시험 컨퍼런스에서 첫 공개될 예정이다. 이후 내년 3월 알츠하이머 및 파킨슨병 컨퍼런스에서는 하위 분석과 추가 데이터가 제시되며, 환자군 특성별 차이와 바이오마커 변화 해석에 대한 논의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비만이나 당뇨를 동반한 알츠하이머 환자 집단에서의 반응 차이, 장기 체중 감소와 인지 기능 변화 간 상관성 등은 향후 연구 설계를 좌우할 변수로 거론된다.
업계에서는 세마글루티드의 알츠하이머 임상 실패가 곧 GLP-1 계열 전체의 신경계 적응증 가능성을 부정하는 신호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제형과 용량, 투여 시기, 병용 요법 등 다양한 조합이 여전히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자원 배분 측면에서 글로벌 제약사들이 비만과 대사질환이라는 확실한 수익원이 있는 영역에 연구개발 투자를 더욱 집중할 가능성도 있다. 산업계와 연구계는 세부 데이터 공개 이후, 대사 조절 기반 치매 치료 전략을 어떻게 조정할지 방향을 가다듬게 될 전망이다. 결국 산업계는 세마글루티드의 알츠하이머 확장 전략 좌초가 향후 신경계 파이프라인 재편에 어떤 영향을 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