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가짜 일 30 줄여야 활기 생긴다"…김정관 "세금 내는 국민 시선이 기준"

오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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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 조직의 야근 문화와 보여주기식 업무를 둘러싼 논쟁에 산업통상자원부가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세금으로 급여를 받는 공무원의 일하는 방식을 국민 시선에서 다시 보자는 문제 제기가 산업 행정 혁신 논의에 불을 붙이는 모양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8일 내년도 업무보고에 포함된 이른바 가짜 일 30 줄이기 프로젝트와 관련해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 국민이 봤을 때 뭐라고 할 것인지가 기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날 저녁 세종에서 열린 산업부 기자단 송년간담회에서 관련 질의에 이렇게 답하며 공직 사회 전반의 업무 관행을 겨냥했다.

앞서 김 장관은 17일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된 산업부 업무보고에서 가짜 일 30 줄이기를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고, 이 발언을 들은 이재명 대통령은 "정말 재미있는 아이템 같다", "좋은 생각"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대통령이 직접 호응하면서 부처 내부 혁신 과제가 국정 전반의 행정 개혁 의제로 확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 장관은 공무원 야근 관행을 거론하며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 있다면 야근해야겠지만 장관이 퇴근을 안 해서, 국장이 퇴근을 안 해서 안 간다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자녀에게 이런 부끄러운 얘기는 안 해야 한다"고 덧붙이며 상명하복식 불필요 야근을 줄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김 장관 취임 직후 조직 혁신 과제 발굴을 위해 조직혁신팀 TF를 꾸려 무기명으로 아이디어를 수렴하고 있다. 보여주기식 행사를 지양하고 회의·보고 관행을 손질하는 방식으로 가짜 일 줄이기를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장관은 대통령 업무보고 자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말을 많이 하지 않고 줄이고, 임팩트 있는 한마디를 던지기 위해 고심했다"며 "가짜 일을 30 만 줄여도 활기 있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대외 경제 현안과 관련해 김 장관은 미국 내 투자를 지원하기 위해 2천억달러 규모로 조성되는 한미전략수출기금 운용 방향도 언급했다. 그는 "경제부총리 리더십 아래에서 이뤄질 것"이라며 거시경제 컨트롤타워 중심의 운용 원칙을 분명히 했다. 이어 "중요한 재원이 외환보유고 수익"이라며 "함부로 쓰지 않을 프로젝트를 잘 조율하고 원칙을 정해서 투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환보유액을 재원으로 하는 만큼 수익성과 안정성을 모두 고려한 엄격한 심사 체계를 마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수출 금융 측면에서 한국무역보험공사의 역할 재정립도 예고했다. 김 장관은 "최근 자동차 부품 수출과 관련해 한국무역보험공사와 하나은행과 5천억원 내외의 상품을 만들었는데, 이는 전통적 의미에서 무보의 역할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무보에 새로운 형태의 수출 금융을 더 많이 만들고, 지역 수출 기업 지원을 했으면 한다고 주문했다"고 전해 무역보험공사를 혁신적 수출 금융 플랫폼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조직 개편 구상도 제시했다. 기존 에너지 기능이 기후에너지환경부로 이관된 이후 산업부의 역할이 축소됐다는 지적을 의식한 듯, 김 장관은 산업부 조직과 기능을 다시 강화하겠다고 못 박았다. 그는 경제 안보 기능 강화를 위해 산업자원안보실을 신설하고, 제조 현장의 인공지능 전환을 담당할 산업AI전담국을 새로 두겠다고 말했다. 또 대미 통상을 전담하는 한미통상협력과를 기존 조직에서 분리해 독립시키겠다고 밝혀, 공급망 재편과 미중 경쟁 속 한미 경제 협력을 전면에 내세우겠다는 방침을 드러냈다.

 

수출 성과에 대한 평가도 내놨다. 산업부는 올해 연말께 한국 수출이 7천억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수출은 2024년 6천836억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지만 당시 목표였던 7천억달러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는 미국 관세 영향에도 반도체 수출 호조가 이어지면서 역대 최초로 7천억달러 수출 달성이 유력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공직 사회의 업무 관행 혁신과 수출 구조·조직 개편 논의가 맞물리면서 산업부의 행보는 내년 국정 운영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정부는 가짜 일 줄이기와 조직 재편 과제를 토대로 수출 7천억달러 이후의 성장 전략을 다듬겠다는 방침이고, 국회는 한미전략수출기금 조성과 산업자원안보실 등 신설 조직의 법적 근거와 예산을 둘러싼 논의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오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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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관#산업통상자원부#한미전략수출기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