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1인 1표제 졸속 처리 안 돼"…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 리더십 공방 확산

오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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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헌당규 개정을 둘러싼 갈등이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당내 비판 세력 사이에서 격돌했다. 정청래 대표가 강하게 밀어붙여온 대의원·권리당원 1인 1표제 도입을 두고 절차적 정당성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중앙위원회 일정까지 연기되는 파열음으로 번졌다.  

 

더불어민주당은 11월 24일 국회에서 당무위원회를 열어 대의원과 권리당원에게 각각 1표씩을 부여하는 내용의 당헌당규 개정안을 의결했다. 1인 1표제는 정당 대의 민주주의 강화와 당원 주권 확대를 명분으로 추진돼 왔다. 그러나 최종 관문인 중앙위원회 의결을 앞두고 반대와 우려가 분출하면서, 중앙위원회 개최 일자는 당초 11월 28일에서 12월 5일로 미뤄졌다.  

조승래 사무총장은 당무위 직후 브리핑에서 "1인 1표제 도입 등 당헌당규 개정에 대해 대체로 동의가 됐으나 일부 우려가 있기 때문에 보완책을 더 논의하기 위해 중앙위를 28일에서 12월 5일로 연기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의견을 더 듣고 보완책을 구체화하자는 데 공감대가 형성됨에 따라 정 대표가 중앙위 일정 수정안을 직접 발의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당무위 회의장에서는 1인 1표제 도입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추진 과정과 절차를 놓고 격론이 이어졌다. 회의장 밖에서는 고성이 들릴 정도로 긴장감이 높았다고 당 관계자들은 전했다. 숙의 과정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지적과 함께, 소외 지역 당원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문제 제기가 잇따랐다.  

 

조 사무총장은 "다른 의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그런 것을 다 수용해서 논의 시간을 더 갖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무위 내부에서는 정청래 대표가 내세운 당원 주권 시대 공약이 사실상 대표직 재선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의혹과, 경북 등 당세가 약한 지역의 당심을 반영할 보완책이 미비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정청래 대표 측은 1인 1표제가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시기부터 추진해온 개혁 과제라는 점을 강조하며 방어에 나섰다. 정 대표 측 관계자들은 개정안이 특정 개인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당원 참여 확대라는 큰 틀의 개혁 작업이라는 점을 부각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당내 일각의 반대 기류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 모습이다.  

 

갈등의 불씨는 지도부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튀어나왔다. 이언주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원칙에 대한 찬반보다 절차의 정당성과 민주성 확보가 실제 논란의 핵심"이라고 지적하며 개정 추진 과정을 정면으로 문제 삼았다.  

 

이 최고위원은 "중요 제도를 충분한 숙의 과정 없이 단 며칠 만에 밀어붙이기 식으로 하는 게 맞느냐"며 "대통령 순방 중 이렇게 이의가 많은 안건을 밀어붙여 당원들을 분열시킬 필요가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청래 대표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 같은 발언을 한 뒤 회의장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당내 반발은 당원 차원으로도 확산되는 양상이다. 일부 당원들은 "정 대표에 대한 불신이 폭발하고 있다"며 당헌당규 개정안 의결 무효 확인 가처분 소송 제기를 위한 연판장을 돌리고 있다.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정 대표 지도력에 대한 비판과, 개정안 처리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혼재해 표출되고 있다.  

 

국회의원들도 우려를 표했다. 전날 강득구 의원과 윤종군 의원은 현행 안이 졸속 추진이라고 주장하며 제동을 걸었다. 친명계 한 초선 의원은 통화에서 "정 대표가 취임 후 그동안 보여준 모습이 당원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며 "1인 1표제가 이재명 대표 때부터 추진됐다고는 하나 그때는 설득의 리더십이 있었고, 지금 정 대표의 리더십이 부족한 게 문제"라고 말했다. 제도 자체보다는 추진 방식과 리더십 부재가 갈등의 핵심이라는 진단이다.  

 

정청래 대표 측은 진화에 나섰다. 정 대표 측 관계자들은 별도 태스크포스 구성을 통해 대의원 역할과 전략 지역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하며 "정 대표의 사심 정치와는 거리가 있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중앙위 일정을 연기한 결정 역시 비판을 일정 부분 받아들인 조치라는 해석이 지도부 안팎에서 나온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1인 1표'만 졸속으로 처리한다는 식의 말 때문에 오해가 더 생기고 심지어 '정청래 재선용' 음모론이 등장하며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헌당규 개정안에 대의원과 전략 지역에 대한 보완 내용이 담겨 있다"며 "개정안을 통과시킨 뒤 대의원 역할 정립 TF에서 더 좋은 방안을 논의하자"고 강조했다.  

 

정청래 대표 비서실장인 한민수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1인 1표제는 민주당의 이어달리기로 이 대통령의 대표 시절에도 꾸준히 추진돼 왔다"며 "일정에 대한 비판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8월 전당대회 이후 연내 처리를 위해 충분히 논의해 왔다"고 항변했다.  

 

원내소통수석부대표 박상혁 의원도 다른 라디오 인터뷰에서 "오래전부터터 논의돼 왔고 TF를 통해 더 보완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인 1표제에 거듭 반대 의견을 내고 있는 이언주 최고위원을 겨냥해 "최근에 입당하시다 보니…"라고 말하며 이 최고위원의 문제 제기를 견제했다.  

 

당헌당규 개정안을 둘러싼 반대론은 주로 친명계 일부 의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지만, 당내 주류가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단계는 아니라는 관측도 존재한다. 친명계이자 당 전략기획위원장인 이해식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당원 주권 강화는 당연지사로, 1인 1표제는 할 때가 됐다"며 "당세가 취약한 전략 지역에 대한 보완은 TF에서 다뤄야 한다"고 적어 기본 취지에는 힘을 실었다.  

 

현재까지 최고위원회의와 당무위원회를 통과한 만큼 1인 1표제 도입을 향한 흐름은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중앙위원회 개최가 연기된 만큼, 향후 보완 논의 과정과 정청래 대표의 설득 방식에 따라 표결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당내 일각에서는 "추이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중앙위에서 부결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민주당 지도부는 향후 일주일 동안 대의원 역할 정립과 전략 지역 배려 방안 등을 둘러싼 보완책을 마련하는 한편, 당원과 의원들을 상대로 한 설득 작업에 나설 계획이다. 내달 5일 열릴 중앙위원회에서 1인 1표제 개정안이 어떻게 처리되느냐에 따라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과 당내 권력 구도에도 적잖은 파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오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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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더불어민주당#이언주